거대한 쓰나미가 우리를 덮쳐 온통 정신을 앗아간 보름 남짓 시간이었다. 권력 최정점에 앉은 자가 그 이상의 자리를 쟁취하려고 광기를 부린 해프닝이었다. 이에 반응하는 여러 행태를 보게 되었다.
피와 땀과 눈물을 먹고 자란 자유와 민주주의, 생명과 평화를 지키려고 저항하는 민중의 물결을 보았다. 정당한 분노를 질서 있고 축제스러운 분위기로 연출하는 당당함.
정치에 결코 무관심하지 않는 신세대 몸짓들을 보았다. 그들을 외눈으로 바라보았던 정치적 시선이 얼마나 그릇되었던가를 보여주었다. 우리 사회 미래의 희망과 가능성을 보았다. 참여 민주주의의 미래 현장을 본 것이다.
끝내 호루라기를 불지 않았던 동류의 집단을 보았다. 때론 쓴소리도 필요하다. 경고의 나팔소리도 있어야 한다. 예언자적 충고도 아끼지 말아야 했다. 하지만 우리를 두 번 실망시킨 부류에 대해 동정심마저 잃었다.
새로운 시위 문화를 창출한 K-컬처 시민정신은 위기를 타개해 나가는 새로운 모델을 제시했다. 외신들의 관심은 두 가지에 초점을 맞췄다. 계엄이라는 반민주주의 세력의 운명과 이에 맞서는 시민들의 평화적 시위 문화였다. 우리는 색다른 선진 문화를 보여주었다.
폭력으로 쟁취하려는 그 어떤 것도 결코 정당화될 수 없다는 걸 보여 주었다. 폭력에 저항하는 힘은 끈질긴 생명력과 같다. 한국 근대사가 이를 말한다. 동학혁명, 의병봉기, 독립운동, 4.19의거, 광주 민주 항쟁, 6월 시민혁명, 촛불시위 등으로 이어온 시민운동사가 있지 않는가?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 소감 강연에서 밝힌 바와 같이 세상은 여전히 폭력성과 존엄성을 지니고 있다. 그래서 잔혹함을 서슴없이 드러내고 생명을 훼손한다. 전쟁과 내란과 착취로 생존을 유린한다. 독재로 다수를 억압한다. 그들만의 욕망을 채우려 발광한다. 세계사는 전쟁사요 폭력으로 점철되어 있다.
그러나 한 편으로 인간은 여리지만 사랑으로 이를 극복하려는 모습을 보여준다. 한강의 작품세계는 이 방향으로 나아가려는 몸부림을 여실하게 드러내 준다. 작은 울림이지만 심장에서 심장으로 흐르는 사랑에 초점을 맞춘다. 희망을 노래한다.
예루살렘 마지막 순례길에 올랐던 예수는 짐작하고 있었다. 작은 나귀를 타고 환호와 환영의 함성 속에 예루살렘을 입성할 때 군중은 그를 메시아로 맞이했었다. 그러나 불과 한 주간도 지나지 않아 군중은 폭도로 변하여 저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외쳤다. 피의 대가를 자신과 후손들에게 돌려도 좋다고 광란했다.
예수는 자신을 위해 어떤 변론이나 변호도 하지 않았다. 묵묵히 십자가에 올랐다. 그리고 십자가위에서 군중들을 위해 기도했다. 저들의 죄를 사하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할 뿐입니다. 사랑의 절정을 실현했다.
사랑은 어디에 있을까?
사랑은 무엇일까?
한강의 문학적 주제이자 철학적, 종교적 주제인 사랑의 실현은 멀리에 있지 않다. 작년 대형 산불이 일어나 몇 달째 숲을 태우던 캘리포니아 산불 현장에서 소방관 한 대원이 구하여 낸 날개에 불이 붙어 날지 못하던 작은 새 하나를 구하는 마음과 행동이 아닐까?
폭력이 난무하는 세상에서 인간을 구원하는 길은 사랑밖에 없으리라. 시국이 어수선하지만 이를 극복하는 힘은 우리 심장에 존재하는 사랑일 터. 응원봉을 들더라도 그 안에 사랑의 불씨를 담게 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