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체성 정치와 크리스천 정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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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천이 본 젠더(마지막 회)
민성길 명예교수

한 개인은 여러 정체성을 가진다. 예를 들어 필자는 “남자로서 민씨 성을 가지고 있고, 의사이며, 대한민국 국민으로 한국인이며, 크리스천이다”라는 정체성들을 가지고 있다.

우리 크리스천들은 크리스천 정체성을 가진다. 성경에 크리스천이라는 용어가 처음 사용된 것은, 사도행전 11:26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에서 알 수 있다.

그런데 요즘 정치에 “정체성 정치”(identity politics)라는 것이 있다. 정체성 정치는, 여성운동, 노동자 운동, 흑인 인권운동, LGBT인권운동, 약소민족 운동 등에서 보는 바이다. 이는 특정한 정체성을 가진 집단이 정치·사회·경제적으로 “억압받고 있다”는 주장에 기반한다. 따라서 그들이 주장하는 바는, 이들을 억압에서 해방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생각은 현대 서구 사회에서 막강한 정치적 이데올로기로 발전되어 왔다.

이런 정체성 정치 집단들은 서로 동맹 또는 연대를 형성하고 있다. 예를 들면 노동자 운동과 급진 페미니즘과 LGBTQ+ 운동은 서로 연대하고 있다. 이들을 모두 포괄하여 소위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 PC), 워키즘(wokism) 이라고도 부른다. 전체적으로 이들은 진보적이며 좌파에 속하며, 그 근원은 “해방”의 막시즘이다.

문제는 2010년대 중반 이후 일부 정체성 정치가 극단화되어가는 경향을 보이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어 미국의 경우 백인이 학살당하고 있다(white genocide)는 음모론과 흑인인권을 위한 “흑인 생명이 중요하다”(Black Lives Matter, BLM) 운동은 폭력화되어 왔다. 집단의 정치적 또는 문화적 반달리즘이다.

정체성 정치는 하나의 유사종교 같다. 기독교는 희생당하신 예수 그리스도에 의한 구원을 강조하는데 비해, 정체성 정치에서는 한 피해자 집단의 불만은 다른 집단이 댓가를 치름으로 해소되게 되어 있다. 예를 들면 현재 정체성 정치는 백인 이성애 남자를 희생양으로 삼고 있다.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금지법은 다수의 신앙의 자유와 언론의 자유를 희생시킨다. 심지어 “전통”을 식민주의와 자본주의에 연계해서 없애버려야 하는 “악”으로 규정하고 있다, 전통을 없애려는 활동을 캔슬(cancel) 문화라 한다. 결국, 우리가 현재 서구에서 목격하고 있듯이, 정체성 정치는 기독교에 기초하는 클래식한 문명을 쇠퇴시키고 있다. 그렇다고 막시즘의 유토피아가 오고 있는가? 오히려 성적 타락, 성병, 마약, 자살 같은 생명 파괴가 증가하고 있다.

요즘 우리가 특별한 관심을 가지는 정체성 정치는 “성정치”(sex politics)이다. 성정치는 20세기 초 빌헬름 라이히가 시작하였고, 20세기 중반에 성혁명으로 본격화되었고, 최근 21세기에 페미니스트들과 LGBTQI+옹호자들과 막시스트 엘리트 활동가들이 서로 연대하여 확대 추진되고 있다. 그 정치적 이념은 젠더이데올로기이며, 이는 주로 젠더주류화 정책을 통해 추진된다. 차별금지법 제정이 성정치의 정책 중의 하나이다.

성정치의 문제는 전통적인 가부장적 “이성애 규범”(heteronormativity)에 대해 근본적 파괴를 시도한다는 것이다. 그 근거는 과학이 아니라 사회적 구성이론이다. 즉 여론에 따른 인위적인 것이다.

그런데, 우리 크리스천들은 신앙생활만 잘 하면 되지, 정치에 관심을 가질 이유가 있는가? 필자는 있다고 본다. 단 크리스천은 어떤 정체성 정치가 성경 말씀에 부합하는지를 분별하여야 하고, 최소한 투표에 참여하여야 한다고 본다.

크리스천의 신념에 반하는 정치 이데올로기가 있을까? 그것은 명백히 공산주의 또는 막시즘, 그리고 전체주의이다. 막시즘은 기독교는 물론 모든 종교를 거부한다. 정체성 정치나 성정치는 “억압으로부터의 해방“이라는 막시즘에 기초하고 있으며, 그 배후에는 유물론과 진화론이 있다. 그들은 모든 인간을 억제자와 피해지로 양분하고, 평등을 이루기 위해서는, 혁명을 요구하며, 부를 악마화하고 피해받음을 영광스럽게 만든다. 그렇게 하는 것이 “사회적” 정의라고 한다. 막시즘은 파시즘을 반대한다고 하지만, 구소련이나 공산당의 중국, 북한 등에서 보듯 전체주의로 변할 위험이 크다.

반면 크리스천이 지향하여야 할, 현재로서는 최선의 정치는, 서유럽 기독교 국가들과 특히 신생 미국에서 발달한, 기독교에 기초한 “자유 민주주의”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지금 그 막시스트 성정치가 복음주의 교회에도 침투하고 있다.

수많은 크리스천들이 기독교적 세계관이 견고하지 못해, 성경적 정의를 막시스트 사회(주의)적 정의와 혼동한다. 막시스트들이 주장하는 정의는 평등(equity), 부의 재분배, 그리고 국가통제이다. 그러나 성경이 교훈하는 정의는 공평함(fairness)과 공의((公義 righteousness)이다. 하나님께서는 크리스천들이 가난하고 주변화된 사람들을 돌보아야 한다고 명령하신다. 그러면서도 하나님께서는 레위기 19:15에서 “너희는 재판할 때에 불의를 행하지 말며 가난한 자의 편을 들지 말며 세력 있는 자라고 두둔하지 말고 공의로(fairly) 사람을 재판할지며,”라고 명령하신다.

성경이 교훈하는 바는 공의이며, 강제된 평등이 아니다. 예수님의 달란트 비유는 평등한 분배가 아니라 비생산적인 사람을 징계하고 책무에 충실한 사람에게 상을 주신다는 의미이다. 하나님의 정의는, 성공한 사람을 끌어내리는 것이 아니라, 억압된 사람을 끌어 올려 위엄을 회복하고 번성하게끔 역량을 갖추게 해주는 것이다.

정체성 정치와 관련하여 성경이 가르치시는 바는, 모든 인간은 개개인이 하나님에 의해 하나님의 이미지에 따라 평등하게 창조된, 더없이 귀중한 위엄과 가치를 지난 존재라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결혼과 가족이 건강한 사회의 기본 조건임을 믿으며, 열심히 일함으로 가난에서 벗어나기를 지원하며, 공정한 경쟁을 지지하는 것이다. 특히 성정치에 있어, 성경은 명백히 일부일처제 결혼과 가족간의 사랑을 교훈하고 계신다. 성정치를 통해, 프리섹스와 LGBTQ+와 낙태를 옹호하는 것은 모두 생명을 훼손하는 행동으로 성경에 위배되며, 그래서 하나님 보시기에 죄이다. 그런데 막시즘이나 정체성 정치는 인간의 “사회적 수단”을 하나님 위에 둔다.

성소수자 차별에 대해서는, 크리스천은 LGBTQ+“사람”을 차별하지 않는다. 예수님의 가르침은 서로 사랑하라는 것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크리스천이 그들을 사랑하는 방법은, 그들이 LGBTQ+ 행동을 그만두거나 돌이키고, 창조주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오도록 돕는 것이다. 더구나 LGBTQ+ 행동이 과거 트라우마 때문이라는 이론, 즉 “적대적 소아기 경험” 이론에 따르면, 어린이들에게 트라우마를 가한 모든 사람들의 악행에 대해 회개해야 한다.

우리 크리스천들은, 최근 전개되고 있는 정체성 정치 운동에 자극받아, 뜻밖에도, 죄와 회개와 공의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을 깨닫게 된다. 이로써 우리는 오히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원초적 정체성과 진정한 하나님의 섭리가 무엇인지 새삼 발견하게 된다. 어쩌면 감사할 일이다. 그래서 우리는 국가 정치와 교회를 위해 기도하여야 한다. 우리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로마서 8:28)라는 말씀을 믿는다.

(지금까지 이 칼럼을 읽어 주신 것에 대해 감사합니다. 기쁜 성탄절에 하나님의 큰 은총이 내리시기를 기도합니다. 민성길 올림)

민성길(연세대 명예교수, 연세카리스가족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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