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마태복음 11:28)
짐과 수고를 율법의 예식에 국한시키려는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뜻을 매우 좁게 제한하는 것이다. 우리는 율법이 참을 수 없이 짐스럽고 예배드리는 자들의 영혼을 어쩔 줄 모르게 만든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그의 손을 모든 환란을 당한 자들에게 뻗치실 때, 또한 그의 제자들과 복음을 무시하는 자들을 구별하신다.
인생은 온갖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비틀걸음으로 나그네 길을 가는 연약한 존재이다. 갈대와 같이 연약한 영혼에게 위로를 주는 책들 중에 한 권이 토마스 아 켐피스(Thomas a Kempis, 1380-1472)의 <그리스도를 본받아>(De Imitatione Christi, c. 1384)이다.
“오직 신(神)을 사랑하고 신을 섬기는 일 말고는 모든 것이 헛되다. 멸망할 것을 구하여 현세(現世)의 생명에 마음을 빼앗겨서는 안 된다. 그러기 위하여 자기의 일생을 그리스도와 합치시키도록 하지 않으면 안 된다.”(제1권 제1장)
“내적(內的)인 사람은 다른 모든 일을 생각하기에 앞서 자기를 반성한다” (제2권 제5장). “모든 벗들 가운데서 예수를 가장 마지막 친구로 삼으라” (제2권 제8장). “아아 나의 영혼이여 기뻐하여라. 그리고 이렇게도 귀한 선물과 더할 나위 없이 큰 위로를 이 눈물의 골짜기에 남겨주신 신에게 감사하라.”(제3권 제3장)
위에 인용한 것과 같은 일상 생화에 관한 명상(冥想)이 있는가 하면, 죽음의 자세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자신의 죽음을 언제나 눈앞에 두고, 매일 죽을 마음의 준비를 게을리하지 않는 사람은 복된 사람이다.”(제1권 제23장)
그리스의 한 철인(哲人)이며 에세이스트인 몽테뉴는 “철학은 죽음을 연습하는 학문이다” 하였고, 중세(中世) 수도사(修道士)들은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죽음을 잊지 말라” 하고 인삿말을 주고 받았다.
특히 제4권 ‘내적(內的) 생명의 위안’ 부분의 표현 수법은 색다르다. 신실한 영혼과 그리스도 사이에 주고받는 대화 형식인 것이다.
그리스도 “나의 아들아, 너는 아직도 신을 사랑하는 자로서 굳은 믿음을 지닌 현명한 사람이라고 말할 수 없다.”
신도(信徒) “왜그렇습니까, 내 주여”
그리스도 “너는 하찮은 고생 때문에 네가 시작한 일을 중단하고, 너무나 굶주린 듯이 위안을 탐내기 때문이다.”
예로부터 <그리스도를 본받아>가 경건한 그리스도인들에게 널리 읽힌 것은 깊은 신비성, 보편적인평신도성, 지적(知的) 예술성이그 이유이며, 또한 엄격한 자기 비판에서 출발하여 극기(克己)의 투쟁을 겪은 후 그리스도와의 교제 속에서 궁극적인 평안을 발견하는 영적(靈的) 순례자의 명상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주목할 것은 그 표현의 보편성이다. 이는 그리스도께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 모두 예외 없이 다 포함시키셨다는 것. 누구도 그 자신을 악한 의심으로 닫지 말아야 한다. 주목할 것은 그러한 사람들은 숫자가 적다는 것이다. 이는 멸망하는 수많은 셀 수 없는 다수의 사람들 중에, 그들이 멸망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 자들은 매우 적기 때문이다. 그가 약속하는 구원은 유일하게 평화를 우리에게 주는 값없는 죄의 용서이다. (계속)
김희보 목사는
예장 통합총회 용천노회 은퇴 목사로, 중앙대 국문과와 장신대 신학대학원(M.div.)을 졸업하고, 샌프란시스코 신학교에서 목회학박사(D.Min.)와 명예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월간 「기독교사상」 편집주간, 한국기독공보 편집국장, 서울장신대 명예학장을 역임했다. 주요 저서로는 「한국문학과 기독교(현대사상사)」, 「그림으로 보는 세계사(3권)」, 「지(知)의 세계사(리좀사)」, 「세계사 다이제스트100」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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