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교회 향한 닉 부이치치 목사의 ‘쓴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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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지없는 인생’(Life Without Limbs) 대표인 호주의 닉 부이치치 목사가 서구의 교회들이 본질을 잃은 채 사교 모임으로 전락했다고 쓴소리를 해 화제다. 최근 미국 크리스천포스트(CP)와의 인터뷰에서 “서구 교회가 컨트리클럽이나 사교 모임처럼 변질되고 있다”라고 한 건데 한국교회 또한 새겨들어야 할 지적이다.

닉 부이치치 목사는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가 점점 세속화돼 가는 원인을 2000년대 초반 미국교회가 젊은 세대를 교회로 이끌기 위해 선택한 접근 방식에 문제가 있다고 진단했다. 젊은이들을 교회로 끌어들이기 위해 오락과 재미 등 엔터테인먼트적 요소에 무게를 두다 보니 본질에 소홀해져 복음으로부터 멀어지게 됐다는 것이다.

그는 교회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사회적 증거로 ‘중독’과 ‘자살’ 증가를 꼽았다. 이런 세상에서 다음 세대를 양육하는 것이야말로 교회 본연의 사명인데 그러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음 세대를 제자로 양성하지 않거나 책임을 지지 않는 결과를 보고 있다”라며 “미국교회의 경우, 청소년 담당 목사들이 베이비시터로 여겨지고, 내가 방문한 교회의 95%는 컨트리클럽이나 사교 모임처럼 느껴진다”라고 말했다.

그는 또 “오늘날 Z세대는 욕설, F라는 단어 사용, 난잡한 성관계를 하며, 모두가 그것을 알고 있지만, 아무도 실제로 누구에게 책임을 묻지 않는다”라며 청소년들의 심각한 윤리적 일탈을 예로 들었다. 이를 “책임감 없는 교육의 결과”라고 단정하면서 Z세대가 직면한 문제에 드리운 암울한 현실을 직시했다.

미디어 중독과 관련해 “청소년들이 화면에 소비하는 시간이 하루에 7시간 30분”이라며 그것이 성적 착취, 낙태 등과 연결되는 점에 대해 특히 우려했다. 그러면서 “미국에서 발생한 2천5백만 건의 낙태 중 많은 수가 정기적으로 교회에 참석한 여성들에 의해 자행되는 현실을 지적했다.

부이치치 목사는 미국 대선 결과에 대해 다른 방향의 해석을 내놓기도 했다. 보수 기독교인이 지지한 트럼프가 승리한 후 교인들이 기도와 금식을 하는 횟수가 줄어든 것을 “안일함의 결과”라며 “교회가 회개하지 않으면 영적 권위와 하나님의 보호를 잃을 위험이 있다”라고 충고했다.

그의 이런 지적은 보수 기독교인들이 지지한 트럼프가 미국교회가 원하는 해결사가 될 것으로 기대하는 이들에겐 불편하게 들릴 수 있다. 하지만 미국 내 보수 기독교인들이 트럼프 대통령 당선자를 구세주라도 되는 양 여기며 정작 성도로서의 본분인 기도와 금식을 소홀히 하는 것에 대한 따끔한 일침으로 해석된다.

그런데 사실 미국의 복음주의 지도자들이 트럼프를 진실한 기독교 신앙인으로 인정해 그를 지지했다고 보긴 어렵다. 그가 전통적인 보수정당인 공화당의 대선 후보이고 대통령 재임시 낙태법 폐지에 힘을 실어주는 등 기독교 관련 이슈에 좀 더 근접한 후보라는 점에서 최선이 아닌 차선을 선택한 측면이 없지 않다고 본다.

팔과 다리가 없는 지체장애인으로 태어나 온갖 주위의 편견과 냉대를 딛고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하는 복음 전도자로 부름받은 그가 CP와의 인터뷰에서 서구 교회의 상황에 우려하며 경각심을 불러일으킨 건 한국교회에도 경종이 될만하다. 한국교회야말로 서구 교회의 전철을 그대로 따라가는 중이기 때문이다.

미국교회와 한국교회는 여러 가지 유사점이 있다. 미국은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영국에서 미국으로 건너간 복음주의 신앙인들의 영적 유산이 18세기 초에서 20세기까지 4차에 걸친 영적 대각성 운동으로 이어지며 오늘 미국교회의 근간이 됐다. 그런가 하면 미국교회가 140년 전 파송한 선교사들에 의해 시작된 한국교회도 일제 강점기 평양에서 영적 대각성운동이 일어나 오늘의 한국교회 부흥의 모체가 된 것이다.

미국교회와 유사점이 많은 한국교회에 지난 2000년대부터 다양한 시도들이 열풍처럼 몰아닥쳤다. 미국교회에서 유행하는 이른바 ‘열린 예배’도 그중 하나일 것이다. 전통적인 예배의 틀에서 벗어나 드라마, 무용, CCM 밴드 등과 결합한 이런 예배 방식은 대부분 미국교회로부터 들어온 것들이다.

문제는 예배에 동원되는 이런 시도와 요소들이 간혹 예배의 본질을 망각하는 결과로 나타나고 있는 점이다. 예배란 성도가 하나님께 마음과 몸을 온전히 드리는 행위인데 내가 감동을 받고, 은혜에 심취하는 용도로 바뀌면서 예배의 주체가 뒤바뀌는 현상이 벌어지는 것이다. 그건 곧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가 사람들의 친교와 사귐으로 전락하는 걸 의미한다.

한국교회는 기록적인 부흥 성장에도 신앙의 질적 성숙이 뒷받침되지 못하면서 사회로부터 점점 괴리되고 있다. 이것이 수적 감소 못지않게 한국교회가 시급히 극복해야 할 당면과제임을 부인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닉 부이치치 목사의 경고를 가슴 깊이 새겨야 할 것이다. 한국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인가, 아니면 컨트리클럽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