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구약학회(회장 안근조)가 6일 오후 서울 양천구 소재 한사랑교회(담임 황성수 목사)에서 ‘교회 강단을 위한 다니엘서 읽기’라는 주제로 제127차 한국구약학회 송년학술대회를 개최했다. 이날 왕대일 박사(감신대 명예교수)가 발제했다.
◇ 종말론, 신정론(神政論)에 대한 다니엘서의 응답
왕대일 박사는 “다니엘서에 관한 해석은 많다. 신앙공동체의 정서에 따라서 다니엘서 독법의 결이 달라지기는 하지만 다니엘서 본문에 관한 코멘타리나 강해, 다니엘서의 글말을 특정 주제에 맞춰 묻고 불리고 푸는 작업은 참으로 많다”며 “그러나 해석학의 틀에서 교회 강단을 위한 말씀의 대본으로 다니엘서를 배우고 익히는 작업은 많지 않다”고 했다.
이어 “다니엘서 읽기를 회피·무시하거나, 다니엘 이야기를 신앙과 행실의 가치를 드러내는 예화로 삼거나, 다니엘서의 상징을 다가올 미래를 준비시키는 코드로 해독하고자 했기 때문”이라며 “다니엘서를 묵시문학으로 해석하면서도 묵시와 묵시적 사유의 복수성을 간과하기도 했다. 그런 점에서 교회 강단을 위한 다니엘서 읽기는 다니엘서 해석의 새 지평이 된다”며 주목해야 할 다섯 가지 주제에 대해 설명했다.
왕 박사는 “종말론은 신정론(神政論)에 대한 다니엘서의 응답이다. 그런 점에서 다니엘서를 예언서의 한 자락으로 대했던 헬라어 구약성서의 외침에는 땅의 세력에 눌려 힘겹게 지내던 자들에게 ‘그날’이 있음을 고대하면서 오늘을 이겨내게 하였던 소망이 담겨 있다”며 “예루살렘의 패망 이후 오랜 세월 시달려야 했던 포로살이에 눌려 있던 자들에게 다니엘서의 종말론은 해방의 정음(正音), 구원의 복음 이 되었다. 오늘을 견뎌낼 힘을 종말에서 찾았다”고 했다.
◇ 다니엘서, 지혜 텍스트로 읽어야
그는 “히브리어 성경에서 다니엘서는 예언서가 아니라 성문서다. 히브리어 본문에서 다니엘서는 시편, 욥기, 잠언, 룻기, 아가, 전도서, 애가, 에스더, 에스라, 느헤미야, 역대기와 함께 성문서 범주에 든다”며 “히브리어 본문에서 다니엘의 자리는 에스더와 에스라 사이인데 에스더 → 다니엘 → 에스라 → 느헤미야 순으로 배치된 경전의 구도는 다니엘서를 페르시아 시대 유대인 디아스포라 이야기로 읽도록 이끈다”고 했다.
이어 “다니엘 이야기는 요셉 이야기(창 37~50장)와 함께 디아스포라 문헌의 본보기”라며 “디아스포라 글말의 주제는 지혜, 즉 ‘살아가기의 기술’이다. 낯선 시공간에서 소수자로 생존해 가야 했기 때문이다. 다니엘서에서 다니엘은 모든 지혜를 통찰하며 지식에 통달하며 학문에 익숙한 자”라고 덧붙였다.
더불어 “다니엘서의 지혜로운 자들은 암울한 현실에서 ‘어떻게 생존할 것인가’를 가르치고자 한다. 다니엘서의 환상은 묵시로 펼친 우주 괴물 축출의 청사진”이라며 “다니엘서 독자들은 그 청사진을 음미하면서 삶의 위기를 삶의 정화로 씻겨냈다. 환상이 환호성이 되는 공명(共鳴)이 일어났다. 다니엘서를 지혜 텍스트로 읽어가는 감격이 여기에 있다”고 했다.
◇ 다니엘서, ‘역사적 묵시’
왕 박사는 “다니엘서의 또 다른 독법은 다니엘을 묵시로 대하는 시각”이라며 “다니엘서는 역사적 묵시다. 다니엘의 묵시는 하늘로의 여행에는 관심이 없다. 대신 다니엘의 묵시에는 천사가 등장한다”고 했다.
이어 “다니엘서는 하늘과 땅의 소통이 단절되어 있던 시절에 그 어디에서도 하늘의 소식을 전하는 예언자의 외침이 들리지 않던 시절에 하나님 신앙의 지조를 지키다가 죽음에 직면하는 자들이 쏟아지던 시절에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위로를 주는 실체를 천사로 제시한다”고 덧붙였다.
그리고 “다니엘서의 의중에는 역사를 변형시키는 주체는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이라는 신념이 담겨 있다”며 “다니엘서는 마카베오 혁명에 대해서 비판적이다. 하나님께서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구현하실 때까지 하나님의 사람은 인내하면서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자리를 사수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했다.
◇ 다니엘서 해석 위해 ‘수비학’ 이해해야
그는 “다니엘서 해석을 위해서는 다니엘서의 수비학(Numerology)에 대하여 이해해야 한다”며 “흔히 ‘숫자풀이’라고도 불리는 수비학은 다니엘서 해석에서는 일종의 걸림돌이다. 숫자나 기호로 표현된 상징은 묵시적 암호의 대표 수단이지만, 이 암호는 대체로 묵시의 상징을 자의적으로 사사롭게 풀어내는 수수께끼로 작용한다”고 했다.
이어 “다니엘서 본문에서 수비학의 사례에 드는 본문은 크게 셋으로, 다니엘 7장의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단 7:25), 다니엘 8장의 ‘이천삼백 주야’(단 8:14), 다니엘 9장의 칠십이레(단 9:24)”라며 “7, 8, 9장의 숫자들은 다 같이 세상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을 공간적인 차원이 아닌 시간적인 차원에서 찾았다. 땅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을 하늘에서 찾았던 에녹의 묵시록과는 달리 다니엘의 7, 8, 9장의 숫자는 땅의 문제가 해결되는 길을 역사(시간의 연대) 안에서 찾았다. 역사의 흐름을 몇 개의 과정으로 수렴하면서 역사적 과정이란 원래 결정되어 있었다고 보았다”고 했다.
더불어 “다니엘의 묵시에 담긴 숫자 상징은 지난 세월을 복기(復碁 復棋)하려는 묵시적 노력이며, 다니엘의 묵시에 담긴 수비학은 신명기의 인과응보 사상을 수정한다”며 “다니엘의 묵시는 박해받고 있는 경건한 무리에게 역사의 시간표를 되새기게 하는 방식으로 역사의 연대가 이제 곧 막을 내리게 된다고 주지시킨다. 성전의 훼파가 극심해서 유대인의 고통당함이 눈으로 다 볼 수 없을만큼 처절하지만 그 기간은 기껏해야 이제 반 이레밖에 남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니 오늘을 견뎌야 한다. 그러기에 현실을 견뎌내야 한다”고 했다.
◇ 다니엘서, 요한계시록 해석의 마중물
왕 박사는 “구약의 다니엘서는 요한계시록 해석의 마중물이 된다. 다니엘서의 이야기와 묵시는 요한계시록의 상징 숫자, 기호, 표현, 종말론 등을 새겨가는 작업의 교본”이라며 “미래에 대한 기독교인들의 묵상에서 가장 영향을 끼쳤던 두 책은 단연 다니엘서와 요한계시록”이라고 했다.
이어 “요한계시록의 마지막은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계 22:20)이다. 신약에 인용된 아람어 표현에 따르면 ‘마라나타’이다”며 “다니엘의 묵시가 전하는 증언- 종말의 시간(정한 때), 종말의 과정(역사적 결정), 종말의 공간(대혼란과의 싸움)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이라는 기독교 신앙의 케리그마에서 읽어 내야 한다”며 “요한계시록도 마찬가지다. 십자가 부활의 관점에서 벗어나서 요한계시록이 다짐하는 마라나타만을 붙들 때 기독교 신앙은 그릇된 왜곡된 오도된 두려움에 싸인 파루시아 대망주의에 빠지고 만다”고 했다.
아울러 “파루시아의 때가 언제이든 어떻게 임하든 그때까지 십자가와 부활의 주님이 우리와 항상 함께하신다”며 “그 믿음에서 파루시아 마라나타 대망은 복음의 케리그마 안에서 창조적 긍정적 희망적으로 수용될 수 있다”고 했다.
한편, 주제발표 이후에는 패널토론 및 자유토론이 진행됐다. 토론은 이사야 박사(남서울대)를 좌장으로, 리규상 목사(기감)·오세조 목사(루터교)·임시영 목사(예성)·허신욱 목사(예장통합) 등이 패널로 참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