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크리스천포스트(CP)는 존 칩먼 목사의 기고글인 ‘이번 크리스마스에 아이 같은 경이로움을 되찾는 것’(Let's regain our childlike wonder this Christmas)을 4일(현지시간) 개제했다.
칩먼 목사는 현재 캘리포니아주 랜초 산타 마가리타에 있는 더 스피크 워드 기독교 교회에서 담임목사로 재직 중이다. 다음은 기고글 전문.
G.K. 체스터턴은 이렇게 탄식한 적이 있다. “세상은 경이로움의 부족으로 굶주리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경이로움을 느끼는 마음이 부족해서 굶주릴 것이다.” 크리스마스를 아이의 눈으로 경험하며 느끼는 경이로움만큼 큰 기쁨을 주는 것은 많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리는 더 이상 아이가 아니다.
브레넌 매닝은 그의 저서 ‘The Ragamuffin Gospel’에서 우리가 이러한 “경이로움이 없는” 상태에 빠지게 된 원인을 과학과 초자연적인 하나님에 대한 부정으로 돌린다.
그는 책에서 “그리 오래되지 않은 과거에는 천둥 번개가 어른들에게도 두려움을 주며 자신이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 느끼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과학이 하나님의 세상에서 하나님을 점점 밀어내고 있습니다. 기상학에 대해 더 많이 알수록 천둥 번개가 칠 때 기도하려는 마음은 점점 사라집니다. 이제 비행기들은 폭풍 위, 아래, 주변을 날아다니고 위성은 그것을 사진으로 찍어냅니다. 얼마나 수치스러운 일입니까? 만약 천둥 번개가 수치를 느낄 수 있다면 말입니다! 그것이 신현(神顯)에서 성가신 존재로 격하된 것입니다.”라고 했다.
안타깝게도 많은 사람들은 세상이 더 많은 과학, 그리고 더 적은 하나님을 필요로 한다고 생각한다. 마치 인류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단지 더 많은 데이터, 분석, 그리고 더 나은 기술뿐이라는 듯이 말이다. 초자연적인 존재에 대한 믿음은 많은 이들에게 방해물이며 지적 진보의 걸림돌로 여겨진다.
하지만 신적인 경이로움을 거부하고 우주에서 초자연을 제거한 과학자들은 그들이 찾고 있는 질문들에 대한 답을 결코 얻지 못할 것이다. 하나님이 없는 해답 공식 속에서, 그들은 수 세기 동안 답을 찾지 못한 질문들에 대한 해답이 때로는 “무엇”이 아니라 “누구”라는 사실을 절대 깨닫지 못할 것이다.
18세기의 철학자인 사무엘 존슨은 과학이 하나님 없이도 우리가 찾고자 하는 답을 보여줄 수 있다고 오해하며 이렇게 말했다: “경이로움은 단지 무지에 대한 새로움의 효과일 뿐이다.”
그는 우리가 어른으로서 경이로움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 우리가 더 현명해지고, 세련되며, 세상적이고 덜 아이 같아졌다는 증거라고 주장한다. 마치 그것이 좋은 일인 것처럼 말이다. 다른 말로 하면, 그는 이렇게 말한다. “경이로움? 하찮은 감정일 뿐이야!”
예수님의 경이로움
물론 어른이 되면서 아이의 귀에서 동전을 꺼내는 마술과 같은 행위에는 감동하지 않게 되지만, 여전히 우리를 흥분시키는 놀라운 현상은 많다. 그중 가장 놀라운 것은 바로 이 세상에 하나님 자신이 초자연적으로 나타나신 사건이다. “하늘에 있는 것들과 땅에 있는 것들” 모두를 창조하신 분(골로새서 1:16)이 우리 가운데 오신 것이다.
크리스마스는 하나님의 경이로움이 옆으로 밀려나거나 무시되거나 희석될 수 없는 시기이다. 크리스마스는 우리 안의 잃어버린 어린아이 같은 경이로움이 되살아나, 우리의 감각을 가득 채우고 기쁨과 흥분으로 눈이 반짝이는 계절이 되어야 한다.
진정한 소망
예수님의 세상에 오심이 우리 마음속에서 일으켜야 할 경이로움을 되살리고자 성경에서 몇 구절을 인용해 보았다. 이 구절들은 우리가 이 계절에 기념해야 할 분이 누구신지를 상기시켜준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요한복음 1:1, 14).
“이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며” (히브리서 1:3).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는도다” (마가복음 4:41).
“더러운 귀신에게 명하신 즉 나가는도다” (누가복음 4:36).
“열병을 꾸짖으신 즉 열병이 떠나가니라” (누가복음 4:39).
“맹인이 보고 못 듣는 자가 듣고 못 걷는 자가 걷고 나병환자가 깨끗함을 받으며” (누가복음 7:22).
“그가 죽은 자를 명하신 즉 살아나는도다” (요한복음 11:43-44).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빌립보서 2:6-8).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모든 자들로 무릎을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빌립보서 2:9-11).
우리의 어른스러운 무감각과 무관심을 무엇이 초래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우리가 아이였을 때 느꼈던 경이로움과 흥분을 가로막는 그 어떤 것이라도 예수님의 탄생과 삶에 대해 묵상하면 항상 다시 불타오를 수 있다. 과학이든, 아니면 그 어떤 다른 것이든, 이 계절에 기쁨과 경이로움을 느끼지 못하게 하는 방해물에 마음을 빼앗기지 말길 바란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굳어버린 마음을 뚫고 들어오시도록 하셔야 한다. 크리스마스가 가져다주는 진정한 소망에 대해 아이와 같은 경이로움을 다시 느껴보길 바란다. 하나님의 아들의 놀라운 존재에 대해 다시금 감탄하며 즐거워하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