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눈 반란과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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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우 목사(세인트하우스평택)
세인트하우스 평택 정재우 목사 ©세인트하우스 평택

겨울로 가는 길목에서 첫눈 대란을 만났다. 아직 가을 단풍 채색이 마감되기도 전에 급하게 겨울이 덮친 모양새이다. 12월을 맞이하기 전에 들이닥친 폭설. 반가워하기엔 지나칠 정도의 많은 적설량이 숱한 피해와 고통을 안겨주었다.

필자가 살고 있는 평택은 39cm, 인접한 도시 안성은 50cm 적설로 수백억 원의 피해를 입었다. 비닐하우스 농작물 재배 농가의 피해가 여태껏 속출하고 있다. 축산 농장에도 지붕이 무너져 가축들이 폐사 당했다. 오산의 어느 교회 예배당은 지붕이 내려앉아 예배실을 덮쳤다. 예배시간이 아니어서 천만 다행이었다.

이번 폭설을 기후행동 단체는 규정하기를 “자연의 반란”이라고 했다. 그동안 지구의 탄소 감축에 실패한 결과로 온난화가 지속되어 찾아온 기후재난이라는 말이다. 계절도 아랑곳하지 않고 급습하듯 찾아온 첫눈은 자연의 반란이다. 이를 톡톡히 몸으로 겪은 것이다.

유튜브에 올라온 캐나다 킹스턴 교통공사 직원의 서울 탐방기를 보고서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이 직원은 세계 최고를 자랑하는 서울의 교통 시스템을 현장에서 확인하고 배우려고 공식적인 절차를 밟아 서울시를 방문했다. 먼저 지하철과 시내버스 환승 시스템을 보며 놀랐다고 했다. 킹스턴은 그런 시스템이 없어서 시민들은 이중으로 교통비를 부담한다고 했다.

시내버스 정류장에서 본 디지털 모니터에는 버스들이 도착하는 시간을 제때 알려주고 있어 시민들이 편리하게 승하차 시간을 예상하고 이용하는 걸 보고 놀랐단다.

그러나 그. 직원은 서울 방문 이틀째 되는 날 갑작스러운 폭설을 맞은 서울 시내를 지켜보면서 이런 대란에는 속수무책일 거라 생각했다. 서울도 별 도리가 없으리라 짐작했다. 그런데 폭설에도 불구하고 평상시처럼 교통이 원활하게 돌아가고 있는 걸 목격했다. 어떻게 이럴 수가? 그는 현장을 직접 찾아가 확인해 보았다.

새벽 2시경 교통통제실에는 기상예보를 듣고 비상대책반이 나서서 비상대기조를 가동해 교통대란이 예상되는 곳곳에 제설차량과 도로정비팀을 투입했다. 새벽 5시경에는 환경미화원들과 시청직원들이 일찍 나와서 출근길 인도의 눈들을 치우기 시작했다. 드디어 출근시간인 7시경에는 지하철 역사 출입구와 시내버스 정류장 주변은 눈이 치워져 있어 보행자들이 평소처럼 출근하는 진풍경을 보며 다시 놀라고 말았다.

유심히 살펴본 그 직원은 거리의 상점마다 주인들이 새벽 6 시 경에 나와서 자기 집 앞 마당 눈을 치우는 걸 보았다. 동네 어르신들이 나와서 정류장 주변과 골목길의 눈을 치우는 걸 보며 감탄했다. 출근하는 보행자들이 상점 주인이나 어르신들을 보며 감사하다는 인사를 하고 자나 가는 걸 보면서 그는 깨달았다고 했다.

서울시의 교통통제 시스템과 첨단장비도 세계적이지만 이를 움직이는 건 훈훈한 사람들의 마음이라는 걸 알았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자발적으로 움직이는 시민들의 행동은 그들의 따뜻한 마음에서 나온다는 걸 안 것이었다. 시민들이 평소에 교통 불편 제보를 해오면 통계를 내어 수시로 교통 시스템을 바꾸어 온 것이 오늘의 세계적 교통 시스템을 갖추게 된 비결이라는 점도 그는 발견했다.

자연의 반란은 피할 수 없지만 대도시를 마비시킬 수 없는 건 결국 훈훈한 사람들의 마음이었다. 117년 만의 첫눈 반란으로 고통을 겪었지만 우리는 귀한 교훈을 얻었다. 준비된 시민의식과 훈훈한 마음이 있다면 얼마든지 헤쳐 나갈 수 있음을. 그리고 사후 피해복구도 그런 마음으로 능히 해결해 나가리라는 믿음을 가지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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