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의한 체제를 전복시키는 예언자적 상상력

[신간] 남은 자들을 위한 요한계시록
도서 「남은 자들을 위한 요한계시록」

요한계시록은 두 도시, 바벨론과 새 예루살렘이 벌이는 전투를 기록하고 있다. 마침내 바벨론은 패배하고 새 예루살렘이 승리할 것이다. 이 놀라운 진실을 믿으려면 상상력이 필요하다. 외딴 섬에 유배된 불온한 1세기 반체제 인사 요한의 입장에서 보면, 강성한 제국 로마가 한낱 식민지인 예루살렘에게 패한다는 건 상상하기 어렵다. 그러나 그것이 바로 당대를 향한 요한계시록의 메시지였으며, 오늘 이 시대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 또한 불의한 세상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신실하게 따를 수 있는 놀라운 비전을 발견할 것이다.

저자 스캇 맥나이트 교수(노던 신학교 신약학)와 코디 매칫 작가는 요한계시록이 어떤 성서인지 탐구하고 연구하며 본 도서를 집필했다. 두 저자는 교회, 특히 복음주의 진영을 향해 요한계시록의 진면목을 보여 준다. 요한계시록은 불의한 체제에 대항하는 제자도를 요구한다. 오늘날의 바벨론에 거주하면서도 그것에 저항하는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라고 도전한다.

저자는 책 속에서 “요한계시록은 특정한 시간을 예측하는 신묘막측한 비서가 아니라 특정 시대를 넘어서는 신학이다. 장차 있을 일을 못 박은 예언서로 이 책이 둔갑하는 순간, 시대를 초월한 메시지는 이 책에서 종적을 감춘다. 시대를 넘어 비극의 틀에 갇힌 역사와 그것의 반복적인 속성은 요한계시록이 그려 낸 바벨론을 끊임없이 현실로 소환한다. 그런데도 교황이 적그리스도이고 러시아나 유럽 연합은 곡과 마곡이며 국가 형태로 이스라엘이 거듭나리라는 예언을 남발한다. 이것은 우리 세계의 바벨론에 맞서 ‘분별력을 갖춘 제자’, ‘불의한 체제에 대항하는 제자’가 되라는 요한계시록의 요구를 묵살하는 짓이다”고 했다.

이어 “상상력은 눌린 자, 낙망한 자, 방랑자, 갈망하는 자도 위로한다. 요한계시록에서 범람하는 숱한 상징과 이미지들을 오감으로 체험한다면, 아무리 더딜지라도 용기를 잃지 않고 절망이 가득히 내린 설원 한가운데를 저벅저벅 걸어갈 것이다. 만주의 주,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을 더욱 굳건히 신뢰할 것이다. 어떤 독재자나 폭군이 와서 삶의 자리를 짓밟아도 우리는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요한계시록은 판타지나 픽션의 세계와 꽤 비슷하다 할지라도 판타지나 픽션이라고 못박을 수는 없다. 그러한 상상력에 힘입어 요한은 나아감과 멈춤, 새로운 나아감과 더 많은 멈춤으로 가득 찬 텍스트를 생산했다. 요한은 자신의 묵시록을 통한 여정에서 상상력을 자극하여 우리를 불의한 체제에 저항하는 제자로 형성시킨다”고 했다.

그러면서 “거듭 강조하지만, 요한계시록을 읽는 수많은 방법 중에서 사자가 어린양임을 모르는 경우는 없지만 어린양이 이 책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무심코 지나치곤 한다. 그런 해석 방식을 따르면 어린양이란 아마겟돈의 요란하고 피비린내 나는 전투에서 칼을 움켜쥔 채 승리한 사자와 다를 바 없다. 이러한 기독론은 이 일이 ‘언제 일어날지, 어디서 일어날지, 누가 적그리스도가 될지’를 두고 억측하기 십상이다. 그렇게 요한계시록을 심각하게 왜곡하고 만다. 이 사자는 (우리가 곧 보겠지만) 선혈이 낭자한 전장에서 칼 대신 비폭력의 무기, 하나님의 말씀으로 승리하는 어린양이다”고 했다.

끝으로 저자는 “요한계시록은 이 세상에서 어린양의 편에 설 것을 요구한다. 이 책을 잘 읽으려면 ‘하나님의 정치’(theo-politics)라는 관점으로 생각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즉, 요한계시록은 한결같이 제자도의 공공성을 이야기한다는 말이다. 요한계시록은 자신이 창조한 이 세상을 하나님이 어떻게 바라보시는지 ‘계시’하면서, 용과 야수들과 바벨론을 분별하는 법을 함께 보여 준다. 사회 참여에 나선다면서 하나님을 사적인 삶의 언저리에 남겨 둔다면 요한계시록을 현실에서 구현하지 못한다. 이 책은 하나님의 정치만이 유일한 정치라고 말한다. 엘리자베스 피오렌자가 거듭 일깨워 주듯이, 요한계시록은 정의를 부르짖는 사회정치적 상황 속에 직접 속해 있을 때만 우리에게 적절한 신학적-윤리적 답을 내어 줄 것이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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