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과 기독교적 반응: 과거의 교훈과 현재의 성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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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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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이언 해리스 박사. ©https://avenirleadership.org/

미국 크리스천데일리인터내셔널(CDI)는 브라이언 해리스 박사의 기고글인 ‘역사에서 자살의 고뇌가 어떻게 처리되었는지를 통해 배울 수 있는 것들’(What we can learn from how the anguish of suicide was handled in history)을 27일(현지시간) 개제했다.

해리스 박사는 컨설팅 회사인 Avenir Leadership Institute를 이끌고 있으며 이 단체는 전 세계에 필요한 리더 양성을 하고 있다. 다음은 기고글 전문.

자살이라는 비극

자살처럼 비극적인 일이 또 있을까? 자살은 그 자체로 끔찍하며, 자살에 이르게 하는 고통은 엄청나다. 자살을 선택하는 이유는 개인마다 매우 다르다. 깨진 관계, 극복하기 어려운 중독, 건강 위기, 만성적 우울증, 경제적 붕괴, 공공 망신, 사랑하는 사람의 상실, 오랜 절망, 정신 건강 문제, 혹은 뇌의 화학적 불균형까지 이유는 다양하며 모두 가슴 아픈 이야기들이다.

자살은 삶을 끝내는 개인에게 비극이지만, 남겨진 사람들에게는 더욱 무거운 짐을 남긴다. 이처럼 무거운 짐을 지고 있는 유족들에게 교회가 가장 사랑과 지원을 보여야 할 시점에서, 역사는 종종 반대로 작용했다고 말한다. 오히려 교회의 태도가 남겨진 사람들의 짐을 더욱 무겁게 했던 사례들이 많다.

역사적 관점: 자살에 대한 초기 반응

1. 로마 시대의 자살관

기독교가 등장하기 전 로마 시대에는 자살이 실용적이고 실리적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몇몇 집단에서는 금지되었는데, 이는 주로 경제적 이유 때문이었다.

노예: 구매 후 6개월 이내에 자살하면 구매자는 판매자에게 환불을 요구할 수 있었다.
죄인: 재판을 기다리던 죄인이 자살하면, 국가가 유죄 판결 후 재산을 몰수할 기회를 잃게 되었다.
군인: 군인이 자살하면 배신자로 간주되었고, 이는 국가와 군대를 포기한 행위로 여겨졌다.

반면, 명예를 지키기 위한 자살은 애국적이고 권위를 유지하는 행위로 간주되었다. 스토아 철학자들은 자살을 현실이 견딜 수 없을 때 취할 수 있는 논리적이고 자유로운 선택으로 보았다. 당시에는 자살 윤리에 대한 깊은 고민이 많지 않았다.

2. 초기 기독교와 아우구스티누스의 영향

5세기에 접어들어, 기독교 신학자 아우구스티누스는 자살을 강하게 반대했다. 그는 그의 저서‘신의 도성(The City of God)’에서 자살이 출애굽기 20장 13절의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을 어기는 행위라고 주장했다. 그는 자살은 스스로를 죽이는 행위로, 여전히 살인에 해당한다고 보았다.

3. 중세 시대: 죄와 범죄로서의 자살

6세기경, 자살은 단순히 죄로 여겨진 것이 아니라, 범죄로 간주되기 시작했다. 자살이 범죄로 간주되었기 때문에, 국가가 자살자의 재산을 몰수할 수 있었고, 이는 남겨진 유족들을 경제적으로 더 큰 어려움에 빠뜨렸다.

자살을 죄로 보는 이유 중 하나는 삶이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라는 믿음 때문이었다. 이를 거부하는 것은 신성 모독으로 여겨졌다. 또 다른 이유는 하나님만이 생명과 죽음의 주관자라는 믿음에 어긋난다는 점이었습니다.

4. 토마스 아퀴나스의 기여

13세기 신학자 토마스 아퀴나스는 자살이 하나님에 대한 죄일 뿐만 아니라 회개가 불가능한 죄라고 강조했다. 자살은 삶에서 죽음으로 넘어가는 최종적이고 돌이킬 수 없는 행위였기 때문이다.

5. 교회 관행과 유족에 대한 잔혹성

교회의 자살에 대한 비난은 다양한 방식으로 드러났다. 가장 일반적으로, 자살한 사람들은 기독교적 장례식을 거부당했으며 성지(교회에서 축성된 땅)에 묻히지 못했다. 일부 지역에서는 장례식이 허용되었지만, 밤중에만 진행되어 거의 아무도 참석하지 못했다.

더욱 기괴하고 비인간적인 관행도 있었다. 일부 지역에서는 자살한 사람의 심장에 말뚝을 박고 십자로에 묻었다.

말뚝: 유령이 몸에서 빠져나와 남은 사람들을 괴롭히는 것을 막는다고 여겼다.
십자로: 십자가 모양의 도로에서 유령이 사람들에게 해를 입히지 못하도록 한다는 미신적 믿음이 있었다.

현대 교회의 변화와 회복

1983년, 로마 가톨릭 교회는 자살한 사람들에게 기독교적 장례식을 허용하기 시작했다. 1990년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심각한 심리적 고통이나 두려움이 자살 결정을 약화시킬 수 있다는 점을 인정했다.

이러한 변화는 환영받을 만하지만, 이전 수세기 동안 교회가 자살자와 그 가족들에게 가한 고통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잔혹했다. 단지 교리적 원칙을 고수하기 위해 남겨진 사람들의 상처를 더 깊게 만든 이 역사는 우리가 반성해야 할 부분이다.

우리가 배울 수 있는 점

교회는 종종 인간의 기쁨, 고통, 혼란으로부터 단절된 신학을 추구했을 때 깊이 비인간적이었다. 물론 생명은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며, 이를 소중히 여겨야 한다. 하지만, 인간의 고통과 복잡성을 고려하지 않은 교리는 냉혹할 수 있다.

목회적 신학의 중요성

교회는 삶의 혼란 속에서도 신앙을 향해 나아가는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수록, 신앙이 진정으로 체계적이지 않을 때가 많음을 깨닫게 되다. 삶은 종종 혼란스럽고, 때로는 모든 것이 올바르게 흘러갔을 때가 아니라, 오히려 그렇지 않았을 때 하나님을 발견하게 된다
.
 결론: 자비와 공감으로 나아가기

교회는 진리를 실행하려 할 때, 그 진리가 인간의 고통을 더 깊게 만들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세상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삶의 복잡성을 열어두며, 질문을 억누르지 않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 무엇보다도, 친절과 공감을 잊지 않는 교회가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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