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사와 존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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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우 목사(세인트하우스평택)
세인트하우스 평택 정재우 목사 ©세인트하우스 평택

엊그제 그토록 정겨웠던 어르신 한 분이 세상을 떠나셨다. 정정하게 90세를 넘겼지만 그렇게 가실 줄은 몰랐다. 요양원에서 쓸쓸히 혼자 죽음을 맞이하셨다고 한다. 자녀 손들이 얼마나 보고 싶었을까. 마지막 순간에. 장례식장을 찾아 가 온 가족들을 모아놓고 고별기도를 드렸다. 그들도 얼마나 무거운 마음이었을까.

몇 해 전 어떤 어르신은 임종을 앞두고 자기 집에서 자녀 다섯 남매와 손주들을 다 모아놓고 고별인사를 나누었다. 평소에 소원한대로 필자가 임종예배를 인도하는 가운데 찬송하고 있을 때 영혼이 떠나셨다. 매우 평온하게 주무시는 듯 편한 표정으로 작별했었다.

최근 언론에서 한 해 고독사를 맞이하는 경우가 4,000 건이 넘는다고 한다. 친혈육이 없어서 쓸쓸히 떠나는 분들도 있지만 가족이 있어도 요양원이나 요양병원에서 혼자 임종을 맞게 되는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다고 한다. 이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게 최후를 맞이하는 게 당연지사가 되었다.

하지만 필자의 생각은 다르다. 고독사와 존엄사를 다시 생각해본다. 불가피한 경우에는 고독사를 맞이할 수도 있겠지만 누구나 원하는 건 아니다. 가족들과 마지막 인사를 나누고 친구들과 작별인사도 나누고 포근하게 잠들고 싶다. 존엄하게 그 순간을 맞이하고 싶다.

최근 극장에서 본 영화 <룸 넥스트 도어>는 사랑과 우정, 삶과 죽음에 대한 진실하고 내밀한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베스트셀러 작가인 잉그리드가 친구이자 잡지사 동료였던 종군기자 마사와 재회하며 그의 임종을 앞두고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마사는 미혼모로 딸 하나를 키우며 워킹 맘으로 살았다. 딸은 장성한 후 불편한 관계였던 엄마를 떠났다. 어느 날 말기 암을 판정받았다. 고민 후 생명 연장을 위한 치료를 거부한다. 그리고 딸을 부르지 않고 절친 잉그리드를 불러 곁을 지켜달라고 요구한다.

사정을 알고 달려온 친구와 마지막을 의미 있게 나누며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임종을 맞이한다. 사회적 제도가 인정하지 않지만 자신이 결정한 존엄한 방식을 선택한다. 우아하게 정장으로 차려입고 빠알간 루주를 바르고 양지 바른 테라스 안락의자에 누워 자신의 방법대로 죽음을 맞이한다. 우리에게 충격을 주면서…

우리는 이미 조성된 문화에 순응하며 고독사의 길로 가고 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누구나 동일한 소망은 존엄사를 원한다. 존엄한 죽음으로 가는 길은 무엇일까? 어떻게 죽음을 당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맞이할 수 있을까?

의사이면서 죽음에 관한 연구를 한 아툴 가완디(Atul Gawande)는 그의 저서 <어떻게 죽을 것인가(Being Mottal )>에서 현대 의학이 놓치고 있는 삶의 마지막 순간으로 가는 길을 안내해 준다. 사람은 누구나 혼자 설 수 없는 순간이 찾아온다. 모든 것은 결국 허물어지게 마련이다. 치료만이 전부가 아니기에 마지막까지 가치 있는 삶을 살고 싶어 한다. 인간다운 마무리를 위해 준비하고 두렵지만 꼭 나눠야 하는 이야기를 나누어야 한다 그리고 누구나 끝이 있다는 것을 용기 있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고독사회를 넘어 더 성숙해 지려면 고독사를 최대한 줄여나갈 방도를 찾아야 하겠다. 제도 개선뿐만 아니라 가장 가까운 가족이나 친구, 교회 공동체 같은 동질 그룹이 이를 보듬는 역할을 감당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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