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과 명상(1)] 천로역정-버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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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가는 길
김희보 목사

[말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요 14:6). 주해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천당 가는 길을 알려는 도마의 질문에 대하여, 주 예수님는 천당 가는 길보다 아버지께로 가는 길을 가리켜 주신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천당이 하나님 중심한 곳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하나님 외에 별도로 천당을 생각하려는 이원론적(二元論的) 사상으로 흐른다. 그것은 잘못된 사상이다. 하나님을 떠난 독립적인 선(善)이나 진리나 행복이란 있을 수 없다.

인생은 길 가는 나그네이다. 나그네에게 중요한 것은 이정표(里程標)이다. 이정표에 중요한 것은 아름다운 장식이거나 그 재료가 귀금속인가 아닌가 하는 재료가 아니다. 올바르게 앞 길을 가리키고 있는가 하는 것다. 인생의 올바른 이정표ㅡ그것은 바로 십자가이다.

*영국의 청교도 작가 버니언(John Bunyan, 1628-88)의 우의(寓意)소설 <천로역정(天路歷程)>(The Pilgrim’s Progress, 1678)은 그리스도인이 나그네의 본향(本鄕)인 하늘나라로 가는 역정(歷程)을 묘사한 작품이다.

주인공 ‘크리스천’은 등에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방황하다가 ‘전도자(傳道者)’의 가르침을 받고, 지금까지 살고 있던 ‘장망시(將亡市)’[장차망할 도시]를 떠나 ‘좁은 문’을 향하여 길을 떠난다. 가족들이 말렸으나 그는 귀를 막고 “생명! 생명! 영원한 생명!” 하고 외쳤다.

중도에 방해를 받으며 크리스천은 ‘좁은 문’에 이르렀다. 문 위에는 다음 말씀이 새겨져 있었다. “문을 두드리라. 또한 열어 주실 것이다” (마 7:7).

‘인자(仁慈)’가 나와 크리스천에게 앞으로 가야 할 길을 가르쳐 주었다. 그 길은 그리스도에 의하여 완성된 곧고 가느다란 길이었다. 그 길을 걸어 십자가 앞에 이르자 크리스천을 괴롭게 하던 무거운 ‘죄의 짐’이 그의 등에서 굴러 떨어졌다.

크리스천이 앞길은 험준하기 이를 데 없었다. 주석자(註釋者)의 집, 절망의 늪, 간난산(艱難山)을 힘겹게 지나 ‘뉘우침의 골짜기’에 이르렀다. 그를 기다리는 악마 아폴리온과 한바탕 싸우고, 온갖 사치품을 팔고 사는 ‘虛榮(허영)의 저자’ Vanity Fair를 지나, 예루살렘을 통과하여 요단강을 건너 목적하는 하늘나라에 도착한다.

크리스천은 도중에 동행이 된 ‘소망’과 함께 마침내 천국 문에 이르렀다. 문 위에는 황금 글자로 다음말씀이 새겨져 있었다. “자기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은 복이 있나니 이는 그들이 생명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도성(都城)에 들어갈 권세를 받으려 함이로다” (계 22:14).

크리스천과 ‘소망’은 천국 문을 들어섰다. 하늘 나라는 태양과 같이 빛나는 곳이었다. 거리는 황금으로 깔렸다. 머리에 관을 쓰고 손에 종려나무 가지와 거문고를 든 수많은 사람들이 한 목소리로 노래하였다. “보좌에 앉으신 이와 어린 양에게 찬송과 존귀와 영광과 권능을 세세토록 돌릴지어다” (계5:13).

*성서 다음으로 많은 언어로 번역되었고, 또한 성서 다음으로 많이 읽히고 있는 베스트셀러 <천로역정>의 원제목은 “이 세상에서 오는 세상에 이르는 순례자의 길”이다. 한자권(漢字圈)에서 “하늘나라에 거쳐 가는 길”이라는 뜻인 “천로역정”이라고 일컫게 된 것은 영국의 중국 파견선교사 윌리엄 번즈에 의해서이다.

김희보 목사는

예장 통합총회 용천노회 은퇴 목사로, 중앙대 국문과와 장신대 신학대학원(M.div.)을 졸업하고, 샌프란시스코 신학교에서 목회학박사(D.Min.)와 명예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월간 「기독교사상」 편집주간, 한국기독공보 편집국장, 서울장신대 명예학장을 역임했다. 주요 저서로는 「한국문학과 기독교(현대사상사)」, 「그림으로 보는 세계사(3권)」, 「지(知)의 세계사(리좀사)」, 「세계사 다이제스트100」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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