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영화 마니아이자 선택적 드라마 애호가이다. 부산국제영화제를 찾아가고 전주국제영화제에도 달려가 보았다. 은퇴 후에는 작정하고 시간을 내어 TV 드라마를 선택적으로 시청해 보았다. 대부분 감동적이고 여운이 오래가는 작품이었지만 때론 시간 낭비한 것 같아 속이 상한 적도 있다.
지난 주간에 한 편의 영화를 보았고 매주 방영하는 한 편의 드라마에 계속 심취하고 있다. 한 마디로 이 작품들을 평한다면 “영혼을 맑게 하는 착한 영화”였고, “마음을 밝아지게 하는 드라마”였다. 이렇게 영화나 드라마 평을 해본 적이 없었지만 두 작품은 이런 평가를 받을만하다.
영화 <청설>은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20대 청춘 이야기이다. 여주인공은 수영선수인 여동생을 돕기 위해 청춘을 걸고 있다. 여동생은 청각장애인이면서 비장애인이 주로 출전하는 올림픽 출전권을 얻기 위해 언니의 돌봄을 받으며 10년을 훈련에 집중했다.
우연히 수영장에 도시락 배달 온 남자 주인공과 여주인공이 만난다. 동생과 수화하는 걸 보고 자신이 배워둔 수화로 여주인공과 대화를 트면서 썸이 시작되었다. 수화는 속마음을 표현하는 도구가 되어 친밀해져 갔다. 정상인이 수화로 다가오는 데에 여주인공은 마음이 열렸다. 밝은 표정과 동생을 돌보는 착한 마음이 남자주인공에게 꽂혔다.
갑작스러운 화재로 인해 동생이 올림픽 출전권 대회에 나가기 어려워지면서 잠시 혼란이 찾아왔지만 회복된다. 부모님 도시락 가게 알바 취업 면접에 온 여주인공이 자기소개를 정상적인 말로 하자 모두 놀라고 만다. 여주인공은 원래 청각 장애인이 아니었지만 부모님과 여동생이 청각장애인이라서 자신도 어릴 적부터 수화로 소통했던 것이다.
TV 드라마 <조립식 가족>은 제목부터 흥미로웠다. 도대체 이런 가족이란 무엇일까? 매주 횟수를 거듭하면서 마음이 맑아지고 세상이 훈훈하게 느껴졌다. 주인공 세 사람은 전혀 혈육적 관계가 아니지만 세상 누구보다 서로를 아끼고 때로 투닥투닥 다투면서 청소년기를 보낸다. 그들만의 힘들고 아픈 가족사는 서로 알고 있지만 끌어안고 진한 가족관계를 누리며 살아간다.
여주인공은 유아기에 엄마를 여의고 아버지가 키웠다. 그러다가 한 오빠는 같은 유아기에 엄마가 여주인공 아버지에게 맡겨두고 사라져 버렸다. 그러나 친자식처럼 거두어 잘 키웠다. 또 다른 한 오빠는 엄마가 집을 나가버려 아버지랑 살고 있는데 아파트 위층에 이사와 한 가족으로 살았다.
아빠들은 마치 엄마와 아빠처럼 공동으로 그들을 돌보았다. 여동생을 끔찍이 여기는 오빠들로 인해 다른 남자 친구들이 접근을 할 수 없었다. 콩닥콩닥 볶으며 행복한 삶을 누리는 그들을 바라보며 이런 가족도 가능하다는 생각을 갖게 했다.
비혼 주의자와 싱글족이 늘어가고 있다. 돌싱이나 동거형 가족도 늘어가는 추세이다. 다양한 형태의 가족들이 공존하고 있다. 전통적인 가족 형태를 지켜나가는 일도 중요하지만 다양한 가족들의 탄생을 소홀히 여기지 말자. 그들도 어려운 과정을 거쳐 가족으로 형성되었다면 이런 이웃까지 품어주는 사회가 정상적이지 않겠는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세상이 갈수록 각박해져 가고 가족과 이웃 관계도 갈수록 친밀감이 떨어지는 것을 본다. 하지만 어디에선 가는 깊은 산골 옹달샘처럼 순도 높은 청정 샘물이 솟아나 흙탕물 세상을 정화시킨다고 본다. 이런 신선한 이야기가 있어 조금 빗나간 우리들의 마음과 혼탁해진 영혼을 씻기고 밝혀주는 것 같다. 영화와 드라마가, 또 다른 장르의 예술이 이런 역할을 하기에 흐뭇하다.
영화 비평가 로버트 존스톤은 <영화와 영성>이라는 저서에서 “영화는 당신이 ‘보도록’ 도와준다. 영화는 관객을 위해 삶에 초점을 맞추며, 그렇지 않으면 얻을 수 없는 다양한 경험을 우리에게 제공한다”라고 했다. 우리를 찾아오는 착한 영화와 맑은 드라마가 있어 삶의 새로운 방식을 이해하고 세상을 더 아름답게 가꾸며 살아갈 위로를 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