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복음을 바로 알고 믿을 때, 비로소 우리는 “그러므로 형제들아”에 이어지는 복음의 생활, 거룩하게 변화된 삶을 살 수 있게 된다. 직분적 은사는 교회의 기초를 세우고, 실천적 은사는 교회의 덕을 세우며, 신령한 은사는 교회를 강건하게 세운다. 모두 교회를 세우는 것이다. 예수님은 세상 어디에서든 우리를 ‘화평케 하는 자(peace maker, 마 5:9)’로 부르셨다. 바울 역시 우리를 향해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목(화평)하라”라고 권면한다. 십자가 속량을 믿는 자에게 성령으로 말미암는 하나님 사랑이 부은 바 되어(롬 5:5) 이웃 사랑으로 나타나게 된다. 그 사랑으로 인하여 모든 것이 살아나고, 세상은 사랑으로 가득하게 된다. 주를 믿는 우리가 주를 위하여 약한 형제를 배려하고 주의 교회를 세워 가는 모습은 또 얼마나 아름다울까? 그것이 오늘 누리는 하나님 나라다(눅 17:21). 그 안에 성령으로 인한 의와 평강, 희락이 있다.
김석년 – 로마서 365: 매일 복음 묵상 3
하나님을 부른다는 것은 하나님이 자신에게 와달라는 내용으로 기도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 내용을 마음속에 담아서 하나님, 주님, 성령님, 예수님, 아버지 등의 이름으로 부르는 것이다. 통성으로 하든 묵상으로 하든 상관없다. 처음에는 조용한 목소리로 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그러나 소리를 내기 힘든 환경이라면 묵상으로 기도하면 된다. 그러나 전심으로 해야 한다. 정신집중은 육체를 긴장시켜야 한다. 그러므로 아랫배에 힘을 주고 쥐어짜듯이 기도하면 정신집중이 잘 된다. 그러나 이 기도를 해 보신 분들은 잘 아시겠지만, 처음에는 집중이 잘 되는 듯하다가 시간이 지나면 집중이 되지 않고 허공을 맴도는 듯한 느낌을 받기 일쑤이다. 그래서 요령이 있다면 하나님을 부르는 목적을 문장으로 기도하는 것이다. ‘아버지 내게 와주세요, 나는 하나님이 필요합니다. 아버지와 내가 하나가 되도록 해 주세요, 아버지는 나의 왕입니다. 하나님은 나의 주인입니다. 주님은 나의 하나님입니다. 나는 당신의 소유입니다. 나는 당신의 것입니다’ 등의 내용을 여러 번 반복하면서 돌아가며 기도하는 것이다. 이렇게 문장으로 기도하면 그냥 하나님을 부르는 것보다 구체적인 느낌을 받는다.
신상래 – 나는 이렇게 기도해서 하나님을 만났다
우리는 서로 사랑했나요? 용서했나요? 우는 자와 함께 울어 주었나요? 세상의 신음에 귀를 기울였나요? 배고픈 자를 먹여주고 헐벗은 자를 입혀 주었나요? 모든 일에 감사했나요? 항상 기뻐했나요? 늘 기도했나요? 그런데도 주님은 지난 한 해 동안 우리를 지켜 주시고, 은혜를 베푸시고, 밝은 얼굴빛을 비춰 주셨습니다. 주님의 너그러우심과 은혜에 감사하며, 해야 했지만 못한 것들을 하나씩 되짚어보며 회복합니다. 우리가 마땅히 되어야 할 모습을 되찾읍시다. 기도하며 깨어 주님 오심을 기다리는 준비는 이런 것입니다. 주님 오심을 기다리는 사람은 지난날을 돌아봅니다.
주학산 – 2024 대림절 묵상집: 주님을 기다리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