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WEA 서울총회, ‘결자해지’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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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WEA 서울총회 개최를 위한 조직위원회가 지난 15일 출범했다. WEA 서울총회는 종교다원주의·혼합주의 논란의 중심에 있는 WEA 지도부가 극비리에 사랑의교회에 호스트를 맡아줄 것을 요청해 성사된 것으로 알려졌으나 WEA 지도부를 향한 한국 교계의 비판 여론이 심상치 않아 내년 총회까지 순항할 수 있을지 장담하기 어렵다.

이날 조직위 출범식은 내년 10월로 예정된 WEA 서울총회 개최 사실을 처음 공식적으로 발표하는 자리였다. 하지만 그런 의미보다는 WEA 현 지도부에 대해 교계에 널리 퍼진 여러 소문과 의혹을 진화하려는 데 비중이 더 커보였다. WEA 서울총회 유치를 사실상 주도해 온 사랑의교회 오정현 목사는 이 자리에서 “서구교회에 빚을 진 한국교회가 앞으로 100년간 서구교회에 빚을 갚아야할 때”라며 WEA 서울총회가 마치 그 빚을 갚는 일환인양 의미를 부여했다.

그런데 이날 조직위 출범식은 이전에 WEA 총회를 개최한 다른 나라들에선 볼 수 없었던 장면이 눈에 띄었다. 우선 서울총회 개최를 처음 공식적으로 발표하는 자리에 WEA 의장과 사무총장 등 기구를 대표하는 인사가 참석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슈마허 사무총장은 종교다원주의 논란으로 최근 사퇴해 어쩔 수 없었다 하더라도 사무총장직을 겸직하고 있는 국제이사회 굿윌 샤나 의장도 참석치 않아 호스트만의 잔치로 비쳐졌다.

이날 출범식은 사실 느닷없고 뜬금없다는 게 솔직한 심정이다. WEA 샤나 의장의 ‘신사도운동’ 논란과 슈마허 사무총장의 종교다원주의 행적 등 지도부의 잇단 일탈 행동으로 한국교회의 불신을 사고 있는 WEA가 근본적인 문제에 대한 변화 노력이나 해명 한마디 없이 어느 날 갑자기 서울의 대형교회와 손잡고 총회를 개최한다고 발표했기 때문이다. 그런 일련의 과정을 선의로 해석하기엔 풀리지 않는 의문점이 한둘이 아니다.

지난 9월 인천 송도에서 개최된 제4차 로잔대회는 비정기적인 국제행사지만 복음주의권을 대표하는 대규모 국제 행사였다. 그런데 끝나자마자 내년에 WEA 총회를 한국에서 열겠다는 의도부터가 석연치 않다. 출범식에서 김상복 목사(할렐루야교회 원로)는 기자의 질문에 “한국교회는 WEA 안에 오피셜 멤버가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서울총회 개최를) 한국교회가 모여서 결정한 게 아니라 WEA가 요청해 호스트 역할을 맡기로 한 것”이라고 내막을 밝혔다.

여기서 드는 의구심은 누가 사랑의교회에 호스트를 부탁했고, 그 부탁을 한 사람이 WEA 총회 개최지 결정의 전권을 쥔 인물인가 하는 점이다. 취재에 의하면 WEA 전 사무총장인 에프라임 텐데로와 최근 사무총장직을 사임한 토마스 슈마허가 지난해 2월부터 올해 9월까지 줄기차게 방한해 처음 여의도순복음교회 이영훈 목사에게 의사 타진을 했다가 거절당하자 사랑의교회를 찾아가 오정현 목사를 만나 같은 요청을 했고, 이를 오 목사가 수락하면서 급물살을 타게 된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한국을 여러 차례 방문해 초대형교회를 찾아다니며 총회 개최에 따른 재정지원과 장소 제공을 요청한 두 사람은 WEA 사무총장으로 재직하다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물러난 공통점을 가진 인물이다. 두 사람 다 로마 교황청을 방문해 교황에게 머리를 조아리는 등 복음주의연맹의 책임자로서 해선 안 될 일탈 행위를 한 전력이 있다.

이런 사람들이 한국의 초대형교회를 찾아다니며 총회를 서울에서 개최하려한 저의가 무엇이든 간에 두 사람 다 총회 개최지 결정의 전권을 쥐기엔 매우 심각한 결격사유를 지녔다는 건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이런 사람들의 일탈 행위가 반복되면서 WEA가 오늘날 WCC와 동격으로 취급되는 지경에 이르게 된 건데 이런 문제에 대해 한국교회 내에서 공개적인 논의 한번 없이 덜컥 호스트를 자임하고 나선 것도 도의적으로나 정서적으로 수긍이 안 되는 부분이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조직위 신학분과위원 김재성 박사는 WEA의 현 리더십에 대해 우려하는 속내를 그대로 드러냈다. 국제이사회 굿윌 샤나 의장의 ‘신사도운동’ 의혹을 철저히 검증하겠다고 한 게 바로 그 부분이다. 김 박사는 WEA 전 사무총장 슈마허에 대해선 “WCC인지 WEA인지 모를 정도로 문서를 많이 발표하고 활동하고 다녔다. 그에 대한 문제는 여러분이 의심하고 있는 것과 같다”고 지적했다.

김 박사의 말대로라면 WEA 현 지도부는 복음적 노선에서 이탈해 한국교회가 받아들이기 어려운 수준이란 뜻으로 해석된다. 그렇다면 WEA 지도부가 이처럼 심각한 중병에 걸린 사실을 몰랐다는 것인가. 만약 인지하고도 이들을 만나 내년 서울 총회 개최를 약속하고 공식 출범식까지 열었다면 이를 단순히 무모한 결정이라고 할 수만은 없을 것이다.

WEA는 일부 리더십의 종교다원주의·혼합주의 논란과 친 가톨릭·이슬람에 경도된 일탈 행위로 한국교회로부터 우려를 사고 있지만 기본적으로 복음주의 신앙노선을 표방하고 이를 지키기 위해 노력해 온 세계적인 복음기구인 건 틀림없는 사실이다. 지금도 대륙 지역별 위원회가 복음의 순수성을 지키면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는 점에서 인적 청산이 이루어지면 얼마든지 정상궤도로 회복할 수 있다.

문제는 복음주의 정신과 가치를 헌신짝처럼 내버린 일부 인사들에 의해 WEA의 위상이 끝없이 추락하고 있는데 이들이 여전히 활개치도록 한국교회가 판을 깔아주고 있다는 점이다. 한기총 등이 총회 개최보다 WEA 지도부 인사들에 대한 숱한 의혹과 문제를 해소하는 게 급선무라며 제동을 걸고 나선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WEA 지도부의 문제는 내년에 한국에서 총회를 개최한다고 덮어질 성질의 것이 아니다. 문제가 된 리더십이 교체되지 않은 과도기적 시점에서 한국교회가 총회 호스트를 자임하고 나선 것 또한 적절치 않다. 지금 이 문제로 한국교회에 또다시 혼란과 분열의 먹구름이 드리워지고 있다. 결자해지(結者解之), 더 늦기 전에 결단을 내릴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