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복음주의실천신학회(회장 신성욱 교수)가 최근 경기도 용인 소재 남서울비전교회(담임 최요한 목사)에서 ‘인문학과 실천신학의 만남’이라는 주제로 제47회 정기학술대회를 개최했다. 이날 주제발표에는 이정일 목사(문학연구공간상상 대표)가 ‘인문학과 실천신학의 만남(어떤 변화와 경쟁에도 우리를 살아남게 할 힘은 무엇인가?)’라는 주제로 발제했다.
이정일 목사는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이 2010년 발매 중단을 선언했다. 세계적으로 가장 권위 있는 백과사전이 244년의 역사를 뒤로하고 왜 사라져야 했는가”라며 “이것은 우리가 어떤 시대를 살고 있는가를 보여준다. 역사에서 지식의 총량은 100년마다 두 배씩 증가했다. 그 주기가 점점 빨라져서 2030년이 되면 지식의 총량은 3일마다 두 배씩 늘어나게 된다. 한번 배운 지식으로 평생 먹고사는 시대는 끝났다”고 했다.
이어 “이제 과거의 지식은 유효하지 않다. 인공지능의 시대가 도래했기에 세상의 변화를 빠르게 읽고 대응하는 게 중요해졌다”며 “문제는 내가 그저 챗GPT를 쓰는 소비자로 살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이야기나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크리에이터(creator)가 될 것인가이다. 크리에이터의 삶을 살지 못한다면 무엇을 하든 남이 만들어준 세상에서 살아가게 된다. 크리에이터의 삶을 살아가도록 하라고 인문학은 강조한다”고 했다.
◆ “한 분야의 시각만 가지고는 문제 해결할 수 없어”
이 목사는 “이제 한 분야의 시각만 가지고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지성과 감성(인성과 영성)에서 경쟁력을 가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라며 “지금 MZ 세대의 관심사는 요약하면 성장과 전문성이다. 사실 이 두 가지만 갖추면 지금 세상에서 자신이 서 있는 위치를 가늠할 수 있다”고 했다.
더불어 “디지털은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거둬갔다. 이제 시공간의 구분은 의미가 없다. 모든 유행의 주기가 짧아졌고, 콘텐츠도 빠르게 소비된 후 휘발한다”며 “쇼핑은 온라인에서 이뤄지고 있고 배달이 일상화되었다. 코로나19를 겪으며 온라인 예배가 익숙해졌고 이런 흐름은 바뀌지 않을 것이다. 이런 변화는 삶에도 이어져 개인이 미디어이고 브랜드가 되었다. 나만이 들려줄 수 있는 이야기가 필요해진 것”이라고 했다.
◆ 이야기에서 자극받고 느끼고 생각하고 변하다
그는 “1939년 「분노의 포도」가 출간되었을 때 순식간에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놀라운 건 경제대공황으로 한끼 식사도 고민하던 사람들이 책을 샀다는 것”이라며 “소설은 독자들을 격하게 감정 이입하게 할 정도로 흡입력이 있었다. 85년 전 독자들은 작중 인물에게 일어나는 일이 마치 자신에게 일어난 듯이 반응했는데, 놀라운 건 지금 독자들도 과거의 독자들처럼 자극받고 느끼고 생각하고 변한다는 것”이라고 했다.
이어 “나와 나를 둘러싼 세상을 이해하는 최고의 방법은 이야기로 생각하는 것”이라며 “어른이 된다는 건 현실과 순수함 중 하나를 선택하는 일이라는 걸 「호밀밭의 파수꾼」이 말하고, 삶이 왜 모순되고 버거운지를 양귀자의 「모순」이 말한다. 이런 이야기를 읽게 되면 어떤 경험이 내면에서 생겨난다. 그런 경험을 공유하고 다음 세대로 전하려고 이야기가 만들어졌다. 이야기 덕분에 우리는 삶을 조급하지 않게 보게 된다”고 덧붙였다.
◆ 주기적인 사고 전환 필요
이 목사는 “우리는 변화와 혁신을 말하나 실제론 전통과 경험에 의존해서 살 때가 많다. 우주왕복선의 추진 로켓이 근사해 보이지만 이게 로마 시대 전차를 끌던 말 두 마리의 엉덩이 폭에 맞춰 설계되었다고 한다”며 “고정관념은 대를 이어서 전해지면서 우리의 시선을 자꾸 익숙한 것에 묶으려 한다. 새로운 걸 받아들이려면 기존의 것을 놓아야 하고, 비범한 걸 찾아내려면 전혀 다른 것을 해본 엉뚱함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또한 “쉽고 단순한 일이 좋고, 사는 게 지루하고 삶에 재미가 없고, 호기심과 유연함이 사라졌다면 긴장해야 한다. 그건 뇌가 굳기 시작한 징후이기 때문”이라며 “낯선 환경과 마주하고, 인간적으로 자극받고, 새로운 생각이 담긴 책을 읽지 않으면, 생각에도 때 같은 게 생긴다. 깨끗하게 생각하려면 옷을 갈아입듯 주기적으로 사고 전환을 해야한다. 새로운 시선에 자극받고 재충전하여야 한다는 뜻”이라고 했다.
◆ “우리는 재구성한 세상 살아가”
그는 “재구성을 IT도 보여준다. 1973년 인터넷의 시작을 보면서 스티브 잡스는 모든 가정마다 컴퓨터가 있는 세상을 상상했다. 그런 큰 그림이 그려지니 지금 무엇이 부족한지가 보였다. 이것이 잡스가 애플을 시작한 동기”라며 “그가 휴대폰을 만능기기로 바꾼 것도 놀랍다. 휴대전화를 통화로만 쓸 때 잡스는 카메라와 녹음기, TV 시청, 은행거래 등이 가능한 걸 상상했고 우리는 그가 재구성한 세상을 살아간다”고 했다.
더불어 “아브라함은 자신의 후손들이 지구 밖을 여행할 정도로 진보한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어쩌면 그런 일이 우리에게 일어날지 모른다”며 “앞으로 몇 년 뒤면 지식의 양이 3일마다 두 배가 된다. 우리는 점점 인공지능에 의존할 것이고 영화 ‘터미네이터’가 현실이 될 수도 있다. 실수를 막으려면 지식이 늘어날수록 사고를 확장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 사고의 확장 일어나야
이 목사는 “사고의 확장이 필요하나 문제는 이게 저절로 생기지 않는다는 사실”이라며 “어린 시절의 일이 기억난다면 이유가 있다. 지금은 기억나지 않아도 당시의 어린 나는 판단했을 것이다. 그게 사고 확장의 시작이다.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걸 ‘왜 그렇지?’라고 반문할 때가 있다.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으나 실제론 아무도 동의하지 않았다는 걸 인지할 때이다. 이게 자기 인식의 순간이고 사고가 확장되는 순간”이라고 했다.
이어 “소설을 읽는 내내 우리는 이런 연습을 한다. 작가가 툭툭 던지는 복선들, 대화들, 문장들을 처음엔 잘 간파하지 못한다”며 “하지만 완독 후 다시 첫 페이지로 돌아오면 갑자기 하나둘씩 보이기 시작한다. 인물과 사건, 대사와 장면, 복선과 상징이 연결되면서 숨은 그림이 나타난다. 이때 우리는 경이로움을 느끼고 그 즉시 뇌에 신호를 보낸다. 내가 느끼는 감각이 섬세할수록 전두엽은 더 빠르게 반응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인간이 가진 독창성은 바로 전두엽이 하는 일이다. 전두엽은 뇌 앞쪽에 있으며 인지 기능을 총괄한다. 즉 미래를 계획하고 예측하며 현재의 문제를 과거의 경험에 비추어 해결한다”며 “전두엽은 근육처럼 쓰면 쓸수록 활성화되고, 독특한 건 답을 보지 않고 문제를 풀려고 애쓸 때 크게 활성화된다는 사실이다. 전두엽을 활성화하는 데 갈등 암시 상징 복선이 뒤얽힌 서사인 소설은 효과가 매우 크다”고 했다.
◆ 능력보다 상황을 빠르게 해석하는 힘 중요
그는 “지금은 백세시대이고 한 가지 일만 하며 사는 시대는 끝났다. 미래학자들의 예측에 의하면 지금 초등학생 이하는 직종이 다른 직업을 적어도 7~8번 바꾸게 될 것이라고 한다. 이제 우리는 원하지 않아도 낯설고 다양한 일을 할 수밖에 없다”며 “앞으론 시대의 변화가 너무 빨라져서 새로운 분야를 빠르게 이해하는 힘이 필요하다. 이런 세상을 살아가려면 능력보다 상황을 빠르게 해석하는 힘이 중요하다”고 했다.
아울러 “읽고 해석하는 능력이 전 세대에 걸쳐 퇴보하고 있다. 정보 사용 능력은 최상위권인데 해석 능력은 형편없다”며 “투수가 확실한 결정구를 던지듯 우리도 능숙하게 다룰 수 있는 나만의 연장, 나만의 무기가 있어야 한다”고 했다.
한편, 이어서 자유발표 순서가 진행됐다. 자유발표에는 ▲이승진 교수(합신대)가 ‘언약 해석학에 따른 성경해석과 강해설교를 위한 원리화’ ▲최창국 교수(백석대)가 ‘체화된 자아(인격)로서 몸과 영적 생명-삶의 상호성’ ▲김대혁 교수(총신대)가 ‘옥한흠 목사의 로마서 설교 분석: 저자의 의도성과 청중 맥락화의 관점에서’ ▲최승근 교수(장신대)가 ‘세례의 다양한 모델’ ▲장유정 교수(침신대)가 ‘기독교적 가르침의 실제: 초등과학 교육과정 재구성’ ▲이재형 교수(침신대)가 ‘히브리서 10:1-18의 구조적, 문학적 분석을 통한 본문이 이끄는 설교로의 적용’이라는 주제로 각각 발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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