겟세마네 동산에서 간절히 기도하시는 예수(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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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 예수 논구 시리즈

I. 십자가를 앞두고 고뇌에 빠진 예수

김영한 박사

감람산 아래 있는 겟세마네 동산은 예수가 즐겨 찾아가셔서 기도하시는 처소 중의 하나였다. 예수는 밤이 깊어진 후 자리에서 일어나 제자들을 데리고 겟세마네 동산으로 가신다(마 26:36). 이날 밤 아홉 제자를 동산 어구에 남겨두고 예수는 베드로, 요한, 야고보만 데리고 좀 더 깊이 들어 가서 기도하신다: “그들이 겟세마네라 하는 곳에 이르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기도할 동안에 너희는 여기 앉아 있으라”(막 14:32). 감람산은 올리브를 짜는 곳으로 예수는 자신의 진액을 다 짜시면서 다가오는 십자가 죽음에 대한 준비를 하셨다.

예수는 세 수제자들보다 더 깊숙이 들어가 기도하셨다: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고 가실새(막 14:33a). 예수는 슬퍼하신다: “심히 놀라시며 슬퍼하사”(막 14:33a), “고민하고 슬퍼하사”(마 26:37). 예수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신다: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깨어 있으라”(막 14:34). “내 마음이 매우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마 26:38). 다가오는 십자가의 죽음을 앞두고 예수는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신다. 히브리서 저자는 예수의 감란산에서의 예수 기도를 다음같이 묘사하고 있다: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건하심으로 말미암아 들으심을 얻었느니라”(히 5:7). 여기서 예수는 마지막 외로움, 다가오는 십자가에 달리심과 고통과 죽음을 직면하면서 인간으로서의 모든 고난을 체험하셨다. 우리는 여기서 나사렛 예수의 인간적인 측면을 발견한다. 십자가 죽음의 세례를 받는다는 것은 인간으로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난관이다. 피흘리는 고통과 죽음의 관문을 통과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예수는 여태까지 하나님에 대항하는 인간의 불순종인 죄와 대결해야 했다. 하나님으로부터 독립하려는 인간 속에 있는 자율성의 의지, 이 죄의 세력은 마지막 극복되어야 할 원수이다. 예수는 인간성 안에 있는 이 원죄의 뿌리와 대결해야 했던 것이다.

2. 예수 안에 있는 두 의지: 단의론은 이단교리

비잔틴의 수사요 칼케돈 신앙의 고백자 막시무스(Maximus the Confessor(c. 580–662)는 예수의 인격 안에 인간적 의지와 신적의 의지가 있다고 보았다. 이는 이중 인격이라는 정신 분열이 아니라 성육신하신 예수의 인간성과 신성의 이원성이다. 칼케돈 공의회 후 마지막 이단교리였던 단의론(單意論)(Monotheletismus)은 한 인격 안에 하나의 의지만이 있을 수 있다고 보았다. 그러므로 단의론자들은 예수 인격 안에 있는 의지의 이원성을 거부하였다. 이는 교회사에서 이단으로 정죄받았다. 막시무스는 이 단의론에 대한 결정적인 반대자다. 예수의 인격 안에 인성에 따른 인간적 의지를 훼손하지 않으면서 신성에 따른 신적 의지가 있다. 인간적 의지는 신적 의지에 동의함으로써 인간적 인격을 파괴하지 않고 오히려 완성한다.

3. 인간 죄의 비참을 체험하신 예수

20세기 영국의 복음주의 신학자요 목회자인 제임스 스튜어트(James S. Stewart, 1896-1990)는 예수가 고민한 이유란 죽음을 두려워해서가 아니라 인간의 죄의 비참함 때문이라고 해석한다: “예수의 괴로움은 그의 죽음을 무서워해서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많은 순교자들이 예수를 본받아 도리어 노래를 부르며 그 마지막 잔을 두려움 없이 맞이했다. 예수로 하여금 이렇게 안타깝게 부르짖게 한 것은 죽음이 아니라 죄였다. 모든 세상의 수치와 모든 인간의 짐이 죄 없이 결박당하신 주님으로 하여금 그 참담을 맛보게 했다. 죄의 차디찬 공포, 그 지긋지긋한 모습, 하나님께 대한 인간의 반역, 이것들이 그를 괴롭혔다.” 스튜어트의 해석은 올바른 해석이다. 죽음은 두려운 것이긴 하나 죄의 결과가 가져온 것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본래 인간을 죽도록 창조한 것은 아니었다. 하나님에 대한 반역, 원죄로 인하여 그 벌로 죽음이 온 것이다. 죄의 제거는 죽음의 제거로 이어지는 것이다. 예수께서 율법을 온전히 순종하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써 인간이 수렁에 빠져 있는 죄의 문제를 해결하시고자 하신 것이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에서 다음같이 증언하고 있다: “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네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이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고후 15:55-56). 사망은 모든 인간에게 무섭고 두려운 것이다. 사망은 죄의 권능인 율법으로 율법을 어기는 인간들을 치명적으로 쏘고 있는 것이다. (계속)

김영한(기독교학술원장, 샬롬나비상임대표, 숭실대 기독교학대학원 설립원장,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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