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과 주님께 최고의 선물은?

오피니언·칼럼
칼럼
신성욱 교수(아신대 설교학)
신성욱 교수

우리가 하나님께 선물을 바칠 수 있을까? ‘창조주 하나님께 죄많고 부족한 우리가 어떻게 선물을 바칠 수 있을까’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라틴어 성경을 최초로 번역한 제롬(Zerome)이란 주석가가 있었다. 그 제롬에 관해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가 하나 있다. 어느 날 제롬이 하나님을 향해 기도를 드리면서 최고의 선물을 하나님께 드리고 싶다는 마음을 올려드렸다. 그때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

“하늘과 땅의 모든 것이 전부 내 것인데 네가 내게 무엇을 주겠다는 것이냐?” 그러자 제롬이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하나님, 제가 번역하는 라틴어 성경이 완성되면 저는 그것을 하나님께 드리고 싶습니다.” 그 대답을 들으신 하나님이 다시 말씀하셨다. “네가 정말로 나에게 최고의 선물을 주고 싶으냐. 내가 너에게 진정으로 받고 싶은 최고의 선물이 있다. 그것은 너의 고통이요 너의 눈물이요 너의 슬픔이다. 너의 고통을 내게 달라. 너의 눈물과 슬픔을 내게 달라. 그것이 너에게 받고 싶은 최고의 선물이다.”

눈물 나올 정도로 감동적인 말씀이다. 자식을 낳아 키우는 부모가 되어보면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아주 잘 이해하게 된다. 부모가 자식으로부터 받는 최고의 선물은 무엇일까? 용돈? 해외여행? 출세 성공? 다 좋은 선물이겠지만, 부모에게 최고의 선물은 따로 있다. 부모가 되어보면 안다. 부모는 자식이 잘 되길 바란다. 때문에 자식에게 좋은 일이 일어나면 누구보다 기뻐하는 것이 부모다.

하지만 부모는 자식이 잘 되는 것보다 고난으로 인해 슬퍼하고 눈물지을 때 도움이 되어주기를 가장 원하고 바란다. 부모에게 최고의 선물은 바로 그것들이다. 우리 하나님도 마찬가지임을 제롬을 통해 확인해볼 수 있다.

‘모래 위의 두 발자국’(Footprints in the Sand)이란 시가 하나 있다. 이것은 이동원 목사가 젊은 시절 한국어로 번역하여 기독교 잡지에 게재함으로써 널리 퍼진 메리 스티븐슨(Mary Stevensen)의 시이다. 원문을 직접 번역해서 여기 소개한다.

“어느 날 밤 나는 꿈을 꾸었네.
하늘을 가로질러 문득 지나온 삶의 순간들이
번개처럼 스쳐 지나간 꿈 말이네.
그 펼쳐진 장면에서 나는
모래 위에 두 짝의 발자국을 보았네.
한 짝은 내 발자국, 또 한 짝은 주님 발자국.
생의 마지막 순간 내 앞에 펼쳐진 장면에서
나는 모래 위의 발자국을 보았네.
내 삶의 무수한 길에
오직 한 짝의 발자국만 찍혀 있음을 보았네.
그때가 내 삶에서 가장 침울하고 슬플 때였음을 알았다네.
나는 의아해서 주님께 물어보았네.
‘주님 제게 이렇게 말씀하지 않으셨나요?’
‘네가 나를 따르기로 결심했다면 늘 나와 함께 걷게 될 것이야!’
‘그런데 주님, 한 짝의 발자국만 찍혀 있을 때가
제 삶에서 가장 어렵고 힘들 때였음을 봅니다.
주님 왜 제가 주님을 그토록 필요로 할 때 저를 떠나 계시고 혼자 걷게 하셨는지 이해할 수가 없네요.’
그때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네.
‘사랑하는 내 아들아,
나는 너를 사랑하고 너를 결코 떠난 적이 없단다.
시험과 역경으로 네가 고통스러워할 때,
너는 오직 한 짝의 발자국만 보지 않느냐.
그러나 그 발자국은 네 것이 아니라
내가 너를 업고 걸어갔던 바로 그때 내 발자국이란다.’”

너무도 성경적이고 감동적인 시이다. 그런데 시간이 지난 다음 이 시의 주인공이 다시 꿈속에서 모래사장에 있는 또 다른 발자국을 보게 된다. 자신의 어렵고 힘든 시기에 여전히 발자국은 하나밖에 없었다. 예수님의 발자국이 분명했다. 그런데 이게 어찌 된 일인가?

그 발자국은 지그재그로 흐트러져 있었다. 그래서 그는 예수님께 다시 물어보았다. “예수님, 힘든 저를 업고 도우시느라 얼마나 고생이 많으셨어요? 저로 인해 정말 힘드셨지요? 죄송해요.”

그러자 예수님께서 이렇게 대답하셨다. “얘야, 아니란다. 저땐 힘들어서 그런 게 아니라 내가 너를 업고 춤을 추며 걷다 보니 발자국이 저 모양이란다. ‘모래 위의 두 발자국 2탄’이다. 유머가 섞인 감동적인 시로 업그레이드된 것이다.

살다 보면 어려운 일을 당할 때가 많다. 삶의 고난과 시험 중에서 주님조차 침묵을 지키고 계실 때 우리는 낙심과 절망에 빠지게 된다. 주님이 살아 계신다면 지금 내가 당하고 있는 아픔과 고통을 다 아실 텐데, 어째서 침묵하시는지 이해가 가지 않을 때가 많다. 한 말씀만 해주셔도 큰 힘이 될 텐데, 그러지 않을 때가 많은 주님의 모습을 보면 답답하고 섭섭하기 그지없다.

하지만 그 어떤 순간에도 주님은 우리와 함께하시고, 견딜 수 없는 때에는 우리를 업고 걸으심을 기억해야 한다. 자녀가 의지하고 기댈 최고의 대상이 있다면 부모이다. 부모에게 있어서 최고의 선물과 최대의 보람은 무엇일까? 사랑하는 자식이 어려울 때 도와주는 것이다. 그 무엇보다 불가능의 상황에 있는 자녀를 도와주는 일은 최고의 선물과 기쁨일 것이다.그런데 인간 부모는 자식의 어려움이 무엇이든 항상 도와줄 수 없는 한계가 있다.

자식이 어려움에 빠져 헤어나지 못할 때 도울 능력이 없어 부르짖는 부모의 모습을 볼 때가 종종 있다. 하지만 하나님이나 주님에겐 한계나 불가능이 없다. 그분은 힘겹고 괴로운 성도들을 돌보시고 위로하실 때 제일 기뻐하신다. 춤을 덩실덩실 추실 정도로 말이다. 그게 바로 하나님이나 주님과 우리의 관계이기 때문이다. 어떤 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그런 하나님과 주님을 날마다 신뢰하고 순종하면서 힘차게 승리하는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

#신성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