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으로 읽는 구약 선지서(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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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덕준 교수(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 구약신학)

2. "심판을 통해 드러내신 은혜"(이사야 1:2-9)

박덕준 교수(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 구약신학)

이사야서는 주전 8세기 말 남왕국 유다 백성의 심각한 영적 상태와 이에 대한 여호와 하나님의 계획을 다루고 있다. 특히 1:1-2:5은 책 전체의 서론으로서, 이미 죄악으로 더렵혀진 언약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을 소개한다. 그 첫째 단락인 1:2-9은 이미 하나님의 엄중한 징계를 통해 피폐해진 유다와 예루살렘의 참혹상을 소개한다.

본문 5-8절은 당시의 상황을 두 가지로 제시한다. 먼저, 그들의 땅은 이방나라의 침입을 받아 초토화되었다. 그들의 땅은 황폐해졌고 성읍들은 불에 탔고 그들이 가꾼 농토는 이방인들의 소유가 되었다. 유다의 견고한 성읍들은 파괴되어, 마치 추수 후에 외롭게 남아 있는 포도원의 망대나 참외밭의 원두막 같이 서 있다. 둘째로, 그 피폐함은 흠씬 두드려 맞아 쓰러져 있는 아이의 모습에 비유된다. 그 아이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성한 곳 없이 상하고 터지고 멍든 자국이 선명한데 아직 치료도 받지 못한 채 쓰러져 있다. 다수의 주석가에 의하면, 이 묘사들은 이사야 36-37장에 기록된 사건 즉 앗시리아의 산헤립 왕이 유다에 쳐들어와 온 땅을 짓밟고 폐허로 만든 사건(주전 701년)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비록 여호와께서 히스기야 왕의 간절한 기도에 응답하시고 자기 백성을 향한 긍휼을 버리지 않으셨기에 그들을 기적적으로 구원하셨지만, 패역한 언약 백성에게 엄중한 경고를 내리신 것이다.

언약 백성이 범한 죄악은 언약의 하나님 여호와를 버리고 언약을 배반한 것이다. 2-4절은 이 죄악을 아들이 아버지께 저지른 극심한 패역으로 표현한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아들 삼아 정성을 다해 양육했는데, 정작 이스라엘은 여호와를 거역했다는 것이다. 그들을 향한 아버지 여호와의 진노가 얼마나 크면 자기 아들을 "범죄한 나라, 허물 진 백성, 행악의 종자, 행위가 부패한 자식"이라고 부르겠는가(사 30:9; 57:3 참조)! 그런데 본문은 더 심각한 문제를 제기한다. 바로 어리석음과 무감각이다. 집에서 기르는 가축들(소, 나귀)은 주인을 알아보는데, 정작 여호와의 백성은 자기 언약의 하나님을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아니, 5절에 의하면, 그들은 여호와의 엄중한 징계를 받고도 여전히 패역을 거듭하고 있다.

그런데 본문은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내리신 처벌에 놀라운 은혜가 담겨있다고 말한다. 분명코 그들은 소돔과 고모라처럼 극심한 죄악을 저질렀는데(1:10 참조), 여호와께서는 그들을 온전히 멸하시지 않고 생존자를 남겨두셨다는 것이다(9절). 이 점은 여호와의 징계를 언급하고 있는 5-6절의 내용을 통해서도 암시된다. 신명기 21:18-21에 의하면, 부모에게 끝까지 패역한 아들은 재판을 통해 그 죄를 확정하고 나서 성읍의 모든 사람들이 돌로 쳐 죽이는 것이 마땅하다. 그러나 여호와께서는 패역한 언약 백성을 위하여("우리를 위하여") 남은 자를 두시면서, 그들에 대한 사랑과 기대를 접지 않으셨다는 것이다.

이사야 1:2-9은 누가복음 15:11-32에 소개된 비유를 떠오르게 한다. 팀 켈러(Keller)가 "탕부의 비유"라고 부르는 이 단락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사랑을 베푸는 한 아버지를 소개한다. 한 아들이 있었는데, 그가 버젓이 살아계신 아버지께 유산을 요구하고는 그 돈을 받고 집을 나가 허랑방탕하게 살다가, 그 돈을 다 탕진하고 나서야 집으로 돌아온다. 그런데 그의 아버지는 아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다가, 거지같은 꼴을 하고 돌아오는 아들을 멀리서 보고,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고 제일 좋은 옷을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살진 송아지를 잡아 잔치를 벌인다. 바로 이 이야기는 구제 불능한 죄인들에게 "허랑방탕한" 사랑을 베푸시는 하나님의 은혜의 본질을 깨우쳐준다.

죄로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를 위해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시고 그를 십자가에 내어주심으로 우리의 죄를 대속하신 하나님, 또한 부활하신 예수 안에서 우리를 의롭다 하신 하나님은 참으로 "허랑방탕한" 은혜를 베푸시는 아버지이시다. 아니, 그 크신 은혜로 구원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죄악에 빠져드는 우리를 여전히 포기하지 않으시고, 때로 징계를 통해 우리로 깨닫고 돌아오기를 기대하시는 분이 우리 아버지 하나님이시다(히 12:7-8 참조). 비록 우리가 죄악이 가득한 세상 속에서 살아가지만, 크신 긍휼로 구원받은 "남은 자"로서 우리 아버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녀들이 되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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