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말씀인 성경과 함께 시간을 보내지 않고 영적으로 성장하기란 불가능하다. 주일에 말씀을 듣고 주중에 간간이 듣는 것으로는 부족하므로, 매일 스스로 말씀을 먹어야 한다. 하지만 매일 말씀 앞으로 나아가는 일은 쉽지 않다. 이때 그리스도인은 경건한 목회자들이나 저자들의 저작을 통해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마틴 로이드 존스는 그중에서도 가장 탁월한 인물이다.
로이드 존스는 영국에서 가장 촉망받는 의사였다. 그러나 의사로 활동하던 초기에 ‘더 고귀한 부르심’, 곧 ‘영혼의 치료자’가 되라는 부르심을 받고 의료계를 떠났다. 그는 인간의 상태를 꿰뚫는 진단을 내리고, 그 유일하고도 충분한 해답으로서 복음을 설득력 있게 선포했다. 30년간 런던 웨스트민스터 채플의 강단을 지켰던 그는 복음적인 교리를 담대히 선포한, 20세기 최고의 설교자로 기억되고 있다.
이 책은 그리스도인들을 매일 경건의 자리로 이끌고자 로이드 존스의 여러 저서 가운데서 발췌·편집한 묵상집으로, 여러분의 영혼을 자라게 하는 말씀의 양식을 전해 준다.
저자는 책 속에서 “그렇다면 믿음과 이성의 문제를 어떻게 보아야 할까? 믿음은 단순한 이성이 아니다. 그러나 이성과 반대되는 것도 아니다. 믿음은 비이성적이거나 비합리적인 것이 아니다. 사람들은 이의를 제기한다. ‘아, 그건 비합리적인 가르침이네요. 당신은 금방 믿음은 이성의 문제가 아니라고 했잖습니까? 그렇다면 당연히 이성에 반대되는 것 아닙니까?’ 아니, 그렇지 않다. 믿음은 이성이 아니지만, 그렇다고 이성에 반대되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무엇인가? 믿음은 이성을 넘어서는 것이다. 이것은 이성으로 도달할 수 있는 범위는 이성만으로는 충분치 않다는 사실을 깨닫는 데까지이며, 거기서부터는 오직 계시에 굴복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것이 믿음이다. 믿음은 계시를 받아들이는 것이다”고 했다.
그러면서 “십자가의 가장 놀라운 점은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바울이 로마 사람들에게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고 말한 것도 놀랄 일이 아니다. 어떻게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볼 수 있을까? 현대인들은 인간들이 그 아들을 거부하고 죽였음에도 하나님은 여전히 그들을 사랑하시며 ‘괜찮다. 너희를 용서한다. 내 아들에게 이런 짓을 저질렀지만 용서한다’라고 말씀하신다는 식의 주장을 펴고 있음을 안다. 물론 부분적으로는 맞는 말이다. 그러나 극히 부분적으로만 그렇다.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말이 아니다. 하나님은 아들의 죽음을 옆에서 구경만 하고 있지 않았다. 그러나 현대인들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하늘에서 모든 것을 굽어보시는 하나님이 사람들의 손에 아들이 죽는 것을 보시고서도 ;괜찮다. 너희를 용서한다‘라고 말씀하신다는 식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을 십자가로 끌고 간 장본인은 우리가 아니다. 하나님이시다. 이것은 하나님이 미리 아시고 작정하신 사건이었다”고 했다.
끝으로 저자는 “그렇다면 어떻게 스스로 사랑하게 만들 수 있을까? 이 진리를 떠올리면 된다.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다시 말해서 우리가 밟아야 할 절차는 이것이다. 화가 나고 마음이 어지럽고 당황스러우며 적개심이 생길 때, 내가 해야 할 첫 번째 일은 나 자신부터 돌아보는 것이다. 그러면 절반의 승리는 거둔 것이다. 이런 종류의 문제에서 발생하는 모든 어려움은 항상 자신은 돌아보지 않고 남의 탓만 하는 데 있음을 우리는 경험을 통해 아주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나를 먼저 돌아볼 때 발견하게 되는 것이 무엇인가? ‘하나님이 이같이 나를 사랑하셨은즉.’이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