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우리에게 불을 지나게 하심으로 그분의 능력뿐 아니라 임재를 체험하게 하신다. 괴로움 속에서 우리와 함께 계심으로 그분의 돌보심을 보여주신다. 고난 없는 삶을 만들어주는 요술램프의 지니가 아니라, 우리를 사랑하사 관계로 부르시는 하나님으로서 그렇게 하신다. 가장 힘겨운 상황에서도, 우리는 ‘그리 아니하실지라도’를 선언할 기회를 갖는다. 한 손에는 우리를 구원하실 수 있는 하나님에 대한 확신을, 다른 손에는 그분이 그리 하지 않으실지라도 여전히 섬기리라는 결심을 들고서 말이다. ‘그리 아니하실지라도’는 믿음과 불확실함 모두에 대한 선언이다. 예측 불가능하고 어려운 세상 속에서 우리 삶에 관심을 두시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소망을 표현하는 방법이다. 비록 하나님이 항상 우리 환경을 바꾸지는 않으실지라도, 그분의 임재는 불 속에서 우리를 변화시킬 것이다.
미첼 리 –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갈라디아서를 바탕으로 아브라함의 땅 약속에 대한 바울의 해석에 대해 주목할 만한 연구가 여태 전혀 없었다는 사실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바울이 갈라디아서 3장 6, 8, 9, 14, 15-18, 26-29절, 4장 21, 25-31절에서 아브라함의 이야기를 언급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땅 상속에 대한 관심이 부족하다는 것은 기대를 벗어난다. 아브라함의 약속에 적어도 가나안 땅, 아브라함 자손이 번성, 이방인의 복이 포함된다는 것은 논란의 여지가 없다. 학자들 대부분 바울이 아브라함에게 약속된 대가족과 이방인의 복에 관심이 있다는 데 동의한다는 점을 감안할 때, 특히 바울이 절정을 이루는 진술에서 갈라디아 교인을 상속자로 묘사하면서도 땅 상속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것은 다소 뜻밖이다. 갈라디아서에서 땅 주제를 논의하는 소수 학자도 바울이 땅에 대한 약속을 포기하거나 영적으로 해석한다고 주장한다.
이소 매콜리 – 하나님 아들의 상속을 나눔
하나님의 은혜는 싸워서 이기는 것이 아니라 아름다운 덕을 세우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정의를 실현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하나님을 적대하는 악한 자들과 싸우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향한 하나님의 아픈 마음, 그분의 눈물을 볼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모든 일을 하며 손해보는 억울함이 아니라 깊은 곳에서 샘솟는 기쁨과 감사를 고백하는 것이 은혜입니다. 우리가 오늘도 하나님의 진정한 은혜를 누릴 수 있다는 것은 말로 할 수 없는 커다란 특권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의무를 다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특권을 누리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을 존중하면 네 가지가 보일 것입니다. 내가 서 있는 곳에서 ‘하나님’이 보이고, 기도하는 ‘내’가 보이고, 내가 살아가는 ‘세상’이 보이죠. 그러면 ‘사명’이 보이지 않을까요? 하나님 앞에서 보이는 나는 참 부끄러운 존재죠. 그래서 회개할 수밖에 없습니다. 세상이 보이면 세상을 생각하고 기도하고 배려할 수밖에 없습니다. 기도의 능력은 우리를 사명으로 인도하는 힘입니다.
김병삼 – 모든 날이 은혜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