Ⅳ. 네덜란드 왕국
카이퍼가 활동하던 당시 네덜란드 국가는 왕이 통치하는 왕국이었다. 카이퍼는 네덜란드 국가의 정치적 주권이 오랑녀(Oranje) 왕가에 위임되었다고 주장하는데, 모든 주권이 하나님 한 분의 것이라고 간주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상의 모든 주권은 위임된 것에 불과하다.
각국에서처럼 우리나라에서도 정치적 주권의 권위가 작동한다. 주권적 정치 권위는 무엇이 정당하고 무엇이 부당할지를 우리나라에 한정하는 [일이요], 부당한 것과 싸우고 정당한 것을 유지하는 [일로써] 필요하다면 무력 동원도 [가능하다]. 국외에서는 대표자로서 그리고 민족의 이름으로 활동하는 [일이요], 또한 네덜란드 국민의 삶과 국민의 인간적인 삶이 번창할 수 있도록 국내의 환경과 조건을 지속하고 향상하며 확대하기를 추구하는 [일이다]. 하나님으로부터 흘러나온 정치적 주권은 지금 누구에게 있는가? 하나님의 은혜에 속한 이 최고 권력은?... 주권이 법에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나이팅게일이 자신의 노래 속에 있다고 말하는 것만큼이나 불합리하다. 왜냐하면 반드시 바로 주권자가 법을 제공해야 하기 때문이다. 어디엔가 있어야만 하는 주권은 오랑여 가문 외에는 그 발에 꼭 맞는 다른 처소가 없다.
여기서 카이퍼는 네덜란드 왕국의 주권이 법(de wet)에 속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거친 국민의 희망”(de wilde volkshoop)이나 유권자들(de kiezers)나 내각(het Ministerie)이나 국회(Staten-Generaal)에도 속하지 않는다고 단언한다. 카이퍼에 따르면 네덜란드는 왕이 통치하는 왕국이고 따라서 네덜란드 국가의 주권은 오직 오랑여 왕가만의 것이다. 이러한 주권은 정당한 것과 부당한 것을 구분하고 정당한 것을 유지하고 부당한 것을 억제하기 위해 자신의 모든 권력을 동원할 수 있어야 한다. 정의를 구현하는 것이 주권을 가진 국가의 임무다. 국가의 대외적인 주권 행사는 외국으로부터 국가와 국민을 보호함으로써 정의를 구현한다.
1813년에는 프랑스 군대가 네덜란드를 떠났고 빌름 1세(Willem I)가 주권군주가 되었다. 그는 1815년에 네덜란드 연합 왕국(Verenigd Koninkrijk der Nederlanden), 즉 오늘날 북부의 네덜란드와 남부의 벨기에 지역 모두를 통치하는 초대 왕이 되었다. 흐룬은 이 연합 왕국을 발흥(opkomst. 1815~1821)과 부흥(bloei. 1821~1827)과 몰락(ondergang. 1827~1830)이라는 세 시기로 나누어 설명한다. 1830년에는 벨기에가 8월 혁명을 통해 네덜란드로부터 독립하여 입헌 군주제(constitutionele monarchie) 국가로 새롭게 탄생한다. 독립기념일은 1830년 8월 5일이지만 런던조약에 서약함으로써 독립을 승인 받은 것은 1839년이다.
1793년에 프랑스에 합병된 남부의 벨기에 지역이 1813년에는 북부의 네덜란드와 함께 프랑스로부터 독립함으로써 네덜란드와 벨기에는 1793년 이전처럼 하나로 통합되어 네덜란드 연합 왕국을 이루었다. 그래서 새로운 헌법이 필요했는데, 이것이 “1814년의 헌법”(de Grondwet van 1814)이다. 이 헌법 조항에 따르면 “네덜란드 연합국의 주권은 오랑녀-나사우의 군주에게 위임되었고 위임되어 있으며 그의 법적 후손들이 세습하여 소유한다.” 이뿐만 아니라 1815년과 1848년의 개정 헌법 조항을 근거로 카이퍼는 오랑녀 왕가를 “유일한 권리자이며 유일하게 자격을 갖춘 자”(de eenig rechthebbende en alleen verkiesbare)로 인정하고 네덜란드를 그가 통치하는 왕국으로 정당화한다.
카이퍼는 “오랑여의 주권”(de souvereiniteit van Oranje) 즉 오랑여 왕가에 의한 통치를 “우리의 역사 속에서 하나님의 인도하심 아래 뿌리 내려진 것”으로 인정한다. “여기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말할 수 있고 말해야 하는 것은 위대한 사람들의 등장이 다른 무엇보다 영이신 아버지의 직접적인 능력행위이기 때문이다.” 카이퍼는 오랑여 왕가에서 연속적으로 배출된 출중한 왕들을 언급하면서 이런 일이 자신의 주권적 권리(zijn souverein gezag)를 이 땅에 세우시려는 “하나님의 섭리”(de Voorzienigheid Gods)라고 주장한다. 내부의 계획적이고도 체계적인 심각한 저항에도 불구하고 오랑여 왕가는 어떤 “의도나 음모 없이 출생의 자연스러운 과정을 통해 총독권의 세습[자리]까지 오르게 된 것이다.
오랑여 왕가의 주권은 하나님으로부터 위임 받은 것이므로 무소불위의 절대 권력이 아니다. “절대 권위”(Absoluut gezag) 즉 “절대적인 의미의 주권이란 상위의 권위가 없는 그런 권위뿐이다.” 즉 언제나 명령하기만 하고 어디에도 복종하지 않으며 현계도 경쟁도 없는 권위, “숨쉬는 모든 것 위에 있는 유일한” 권위를 의미한다. 카이퍼에 따르면 이런 절대 권위를 소유한 절대 주권자는 전지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 한 분뿐이시다. 그러므로 “어떤 재능이나 이름이나 힘을 가진 인간도 결코 그런 권력을 소유하지도 소유할 수도 없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어떤 군주도 자기 백성 위에 [군림하는] 정당하게 참으로 절대 주권자일 수는 없다.”
네덜란드 국가의 주권에 대한 카이퍼의 정의는 반혁명당 강령 제2조에 잘 나타난다: “주권적 권위의 원천은 국민의지에서도, 법에서도 아닌, 오직 하나님 안에서만 발견된다. 따라서 한 편으로 국민주권의 원리는 거부된다. 반면에 다른 한 편으로 오랑여의 주권은 우리의 역사 속에서 하나님의 인도하심 아래 뿌리내린 것으로 존중된다. 또한 [그것은] 사람들에 의해 1813년부터 네덜란드 정부에서 발전한 것이며 헌법을 통해 그와 같은 것으로 승인되었다.” 하나님만이 무소불위의 절대 권력자이시다. 군주가 자신에게 맡겨진 권력을 절대 권력처럼 남용하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카이퍼는 입헌군주제(constitutioneele koningschap)를 선호한다.
Ⅴ. 국가와 정부
네덜란드 왕국은 기독교 국가(Christelijke natie)다. 기독교 국가의 정부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해야 하는 “하나님의 종”(dienaresse Gods)이라는 것이 카이퍼의 입장이다. 카이퍼는 ‘정부’를 의미하는 네덜란드어 ‘오퍼르헤이트’(overheid)가 ‘마히스트라아트’(magistraat)라 불리는 라틴어 표현에서 온 것으로 해설하는데, 정부란 일종의 “위계질서”(een hiërarchie)가 아니라, 명령할 권리와 복종을 요구할 권리를 가진 국가 권력, 즉 우리가 마땅히 존중해야 하는 “우리 위에 세워진 권력”(een over ons gestelde macht)을 의미한다.
카이퍼에 따르면, 정부의 권위(gezag) 즉 권력(macht)은 심지어 “공화정치형태를 가진”(met republikeinschen regeeringsvorm) 국가들에서 “선출된 대통령”(de gekozen president)이라 할지라도 자신을 선출한 사람들이 아닌 “하나님에게서 빌려온 권력”(aan God ontleende macht)이다. 카이퍼는 “국가”(de Staat)를 “하나의 도덕적 유기체”(een zedelijk organisme)로 정의한다. 국가는 일종의 협동조합과 같은 공동의 연합체라는 의미다. 따라서 “동일한 국가에서 함께 사는 것은 일종의 조합, 즉 먼저 동의하여 조건에 따라 연합함으로써 국가를 형성하는 모든 독립적인 개인들인 참여자들의 협회가 된다.”
유기체로서 국가는 사실상 공동생활 즉 사회공동체를 의미한다. “유기체란 각각의 살아 있는 대상을 형성하는데, 유기체의 특징은 그것을 구성하는 [요소들], 즉 인식되기도 전에 모든 부분들과 지체들과 관절들과 마디들이 이미 싹에 존재하지만 스스로 성장해가면서 전체의 힘이 나타나 점진적으로 확고한 형태를 갖추는 것이다.” 유기체는 주위 환경과 무관하게 정해진 자신의 목적대로 자기 자신을 실현할 수 있는 힘을 스스로 가지고 있다. 그 목적이 “고상하고 숭고하며 거룩한 것”(het edele en hooge en heilige)이라면 그 유기체는 “도덕적”(zedelijk)인데, 이것이 바로 국가다. 국가의 목적은 하나님의 선을 이루는 것이다.
유기체로서 국가는 유기체로서 “인간의 마음”(het menschelijk hart)에 비유된다. 마음은 모든 부분들의 전체가 “하나의 목적”(een éénig doel), 즉 “법에 순종하는 것”(te gehoorzamen aan wetten)을 향하게 된다. 그러므로 “인간의 마음은 하나의 도덕적 유기체다... 그러므로 그와 같이 이제 우리에게는 국가 또한 하나의 유기체다... 국가 안에서 확고하게 표현되는 국가적 삶이란 일종의 결합이 아니라 하나뿐인 살아 있는 전체라고 우리는 확신한다.” 유기체로서 국가가 “도덕적인 목적”(een zedelijk doel)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결코 정적일 수 없고 반드시 동적이어야 한다.
국가는 국가로 존재하기 위해 있는 것이 아니다. 국가는 “목적 자체”(Selbstzweck)가 아니다. 즉 국가는 존재이유(bestaansrede)를 가지고 있지 않다. “국가의 삶”(staatsleven)은 단지 더 높은 질서의 “공동생활”(gemeenschapsleven)을 준비하는 수단일 뿐이다. 그 생활은 이미 싹이 나고 언젠가 “하나님의 왕국에서”(in het Koninkrijk Gods) 충분히 영광스럽게 나타나게 될 것이다. “그 왕국에서는 조화가 완성될 것이요, 자유로운 개성의 가장 부요한 발전과 가장 친밀하게 연결된 공동생활의 가장 영광스러운 발전 사이의 다툼은 하나님을 경배함으로 완전하고도 보편적으로 제거될 것이다.”
하나님 왕국이 완전히 도래할 때까지 지상 나라는 모든 것이 불완전하고 불균등할 수밖에 없다. 이런 점에서 지상 국가는 종말론적이다. 하나님 나라를 준비하고 그 나라의 도래에 기여 하는 것이 국가의 역할이다. 그러므로 국가는 공동생활의 더 높은 형태를 제공하는 사명과 각 개인에게 그의 개성을 최대한 개발하도록 각 방면의 힘을 제공하는 사명을 다해야 한다. 도덕적 유기체로서 국가를 설명하면서 아주 바람직한 생활형편에 도달한, “헌법 아래 통치되는 나라들”(onder de constitutioneel geregeerde landen)이 있다고 언급하지만 그런 나라에서도 국가의 삶이 이상적으로 발전하지는 못했다고 평가한다.
카이퍼에 따르면 국가(Staat)를 도덕적 유기체로 인정한다는 것은 저절로 정부(overheid)를 우리 위에 권한을 가진 권력(rechtens macht)으로 인정한다는 것이다. 카이퍼는 잎(blad)을 지배하는 잔가지(twijg)와 잔가지를 지배하는 큰 가지(tak), 그리고 큰 가지를 지배하는 나무줄기(stam)의 예를 통해 국가와 정부를 구분한다. 또한 말(paard)을 예로 들면서 뇌(hersenen)와 신경(zenuwen)이 머리(kop)를 지배하고 머리는 아름다운 몸 전체의 모든 근육(spieren)을 지배한다고 주장하고, 우리 자신의 몸에 비유하면서 “마음과 머리가 우리 개인(인격) 전체를 우리의 의지대로 인도한다.”고 주장한다.
이 세 가지 비유 모두 국가와 정부가 자연의 지배구조와 통치원리에 부합한다는 사실을 전제로 국가가 전체라면 정부는 그 전체의 최상위 지배층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아주 좋은 사회 즉 “국민의 삶이 아주 잘 작동하는 유기체”(het rijkbewerktuigde organisme van het volksleven)라 해도 그 속에는 “영향력이 거의 없는”(bijn invloedlooze) 지체들이 있는가 하면, “영향력이 많은”(invloedrijke) 지체들과 “훨씬 더 영향력이 많은”(invloedrijker) 지체들도 있는 반면에 “그런 사람들 위에 훨씬 막강한 구성원들”(boven die weêr nóg machtiger leden)이 있는 것은 당연하다. “이것 없이 국가는 유기체로 존재할 수 없고 두 가지[도 없다]. 즉 [그것은] 도덕적 유기체인 국가와 이것의 머리에 권력을 가진 정부인데. 그와 같이 그 둘은 상호 배제 불가능하고, 국가의 존재로부터 분리 불가능한 근본진리들이다.”
카이퍼에 따르면 정부는 국가의 “지배권을 실행하기”(heerschapij te voeren) 위한 기관이다. 따라서 정부는 “봉사하는 권력이 아니라 지배하는 권력”(een heerschende, niet een bedienende macht)의 주체다. 여기서 정부의 지배권력과 대조적인 봉사권력은 교회의 통치원리를 의미한다. 두 권력은 국가질서를 위한 정부의 강제성과 영적 질서를 위한 교회의 자발성을 각각 대변한다. 정부의 소명은 “명령권과 강제권을 가지고”(met bevelende autoriteit en dwinged gezag) 업무를 수행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정부형태는, 심지어 독재적이고 폭압적인 [정부]조차도, 언제나 완전한 무정부상태보다 훨씬 낫다.”
카이퍼는 혁명을 무정부상태(regeeringloosheid)의 원인으로 규정한다. 궁전 광장에서 화염병과 돌로 무장한 폭력적 혁명이든, 내각과 의회에서 구호와 사상으로 무장한 비폭력적 혁명이든 혁명은 반드시 무정부상태를 유발하기 때문이다. 카이퍼가 통치보다 관리를 더 중시하는 정치 세태를 개탄한 이유는 “통치하는 것은 관리하는 것과 완전히 다르기” 때문이다. 그는 정부를 가정의 머리인 아버지에 비유한다. 머리가 통치권(heerschappij)으로 질서를 확립할 때 그 유기체는 건강하고 행복하다는 것이다. 카이퍼에 따르면 정부는 통치권을 가진 통치자이지만 관리자에는 그런 통치권이 없기 때문에 질서를 유지하기 어렵다.
카이퍼에게 국가적인 유기체를 다스리는 정부의 통치권은 하나님으로부터 위임 받은 주권을 의미하며 그의 영역주권 개념과 연결된다. 이런 점에서 그는 “사회적 기관들”(de sociale organen)과 “가족-유기체”(het familie-organisme)라는 개념을 사용한다. 통치권과 짝을 이루는 개념은 복종의 의무이다. 카이퍼는 그것을 “하나님의 직접적인 권위에 복종하는 것”(het zwichten voor de onmiddellijke autoriteit Gods) 즉 “의무명령”(plichtsbesef)으로 간주한다. “그러므로 잊지 마시라, ‘의무명령을 잠재우는 것’이 국가 생명의 통로[를 위협하는] 다른 수 많은 악인들의 어머니로 나타나는 악이라는 사실을!”
카이퍼는 의무명령인 “거룩한 ‘당위’”(het heilige ‘moeten’)와 “더욱 거룩한 ‘불가’”(het heiliger ‘niet mogen’)가 희미할수록 “국민발전”(volksontwikkeling)이 “도덕적 궤도”(zedelijk spoor)를 이탈할 가능성이 높다고 경고한다. 통치권이 약화되면 의무명령도 역시 약화될 수밖에 없다. 카이퍼는 혁명의 영향으로 약화되고 잃어버린 정부의 권위(gezag; autoriteit) 즉 통치권이 회복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통치권의 회복은 “독재를 수용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정확히 독재를 끝장내기 위한 것이다.” 부모 없는 가정에서 형제가 형제를, 정부 없는 국가에서 시민이 동료 시민을 지배하려고 할 때 독재와 혁명이 발생한다.
카이퍼는 정당독재와 통치권 오용에 대해서도 비판한다. “거룩한 통치권은 상당히 거룩하지 못한 정당독재로 타락하고 우리 위에 세워진 권력의 통치권은 도덕적 삶을 증진하기는커녕 국민성을 망가뜨리고 시민들을 서로 대립하게 하며 원망과 증오의 불을 품게 한다.” 이것은 정부가 모든 국민을 “동등함의 권리와 조건으로”(naar recht op conditie van gelijkheid) 대하지 않기 때문에, 또한 스스로 “하나님의 종”(dienaresse Gods)이라는 인식이 없기 때문에 발생한다. 정부는 “그분 아래 [있다는] 조건으로 우리 위에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와 함께 저 한 분에게 복종[해야]하는데, 그분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모든 사람 가운데 유일하게 법을 집행하신 권리를 스스로 취하시며 다른 사람에게 주실 수도 있는 분이시다.”
정부 인사들, 정치인들은 다른 사람들과 똑 같은 “보통 사람들”(gewone menschen)이다. 카이퍼는 심지어 왕(koning)조차 보통 사람들보다 결코 선하지도 높지도 않은 “인간으로, 그래서 죄인으로”(als mensch, en dus als zondaar) 언급한다. 국민과 시민처럼 군주들(vorsten en prinsen)도 “하나님의 거룩한 법”(Gods heilige wet)을 지켜야 한다. “심지어 지상에서 가장 막강한 권능자일지라도 인간으로서 자기 개인과 관련해서는 순종해야 하고, 결코 명령할 수 없다.” 하나님만이 절대 명령자이시다. 하나님처럼 명령만 하고 순종의 의무와 책임 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