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고통은 가난이나 질병으로 인해 받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어떤 경우는 인간의 생활방법 이나 정신을 혼란케 하여 갈등을 불러 일으키고, 심지어 그것이 전쟁까지 야기하여 파멸과 죽음에 이르게 하여 고통당하는 그런 경우도 있다. 정치적으로는 마르크스 사상이 대표적인 예가 되고, 문화적으로는 강대국들이 쓰다 버린 3류 문화 유입이 그렇고, 종교, 특히 기독교적으로는 사이비 이단들의 출현이 바로 적절한 예가 된다. 인간이 자유를 부르짖고, 자유를 말하지만, 그런 사상이나, 문화, 그리고 종교 이단들은 그러한 자유의 가치를 오용하여 인간의 정신을 혼미케 하므로 바른 인간으로 살지 못하게 하는 폐악을 조장한다.
이와는 반대로, 인간정신을 바로 세워 안정된 질서를 유지하게 하는 사람들이나 단체도 있다. 대표적인 것 중의 하나가 한국에 대한 미국 선교사들이라 할 수 있다. 한국 기독교 교회는 서구, 특히 미국으로부터 받은 정신적, 또는 영적, 나아가 생활향상의 수혜를 많이 받았다. 선교사들이 들어와 매우 합리적 성격을 띤 기독교를 전수하고, 학교를 세워 현대식 교육을 하고, 이런 교육을 받은 한국인들이 서구 미국이나 유럽에 유학을 하여 세계정신과 어깨를 나란히, 대등하게 할 수 있게 되었는데, 이는 바로 기독교 선교사들 영향 때문이라 할 수 있다.
기독교 교회 목사, 신학자를 포함하여 사회에는 지금도 반미를 외치는 자들이 많지만, 즉, 한국 민주화 운동의 결정적 시기에 미국이 독재자들을 옹호하거나 상황과 처지를 내버려두어 국민들이 어려움을 당한 것 때문에 반심을 갖게 되었기 때문이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사의 큰 틀에서 보면 미국이나 미국 선교사들의 도움과 헌신이 오늘 우리가 잘 살게 된 원인 중의 핵심이 된다는 사실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국가 헌법, 자유와 민주주의의 가치, 인간존엄에 대한 정신, 종교적 품위 등은 모두 미국과 기독교 선교사들이 전해준 가치들이라 할 수 있다.
이와 연관하여, 또 하나 한국교회가 미국으로부터 받은 신앙정신 가운데 하나는 추수감사절이다. 추수감사절의 유래는 영국의 청교도들이 신앙의 자유를 찾아 미 대륙 플리머스에 도착하였는데, 새 대륙에서의 정착은 매우 어려웠다. 추위와 굶주림 때문에 이민자 절반이 묵숨을 잃었으니 얼마나 힘들었었겠는가. 다행이 원주민 인디안들의 도움으로 첫해 농사를 짓고, 추수한 후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인디안들을 불러 함께 식사를 나눈 것이 추수감사절 유래인 것은 잘 알고 있는 일이다. 그들이 하나님께 감사드린 것이 전통이 되어 이것을 한국 기독교인들이 받아들여 추수감사절로 지키는 것이다. 분명한 것은 이 추수감사절은 문화 행사가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서 신앙행위라는 것이다.
그런데, 최근 어느 목사가 영국의 추수절과 부르진스(청바지) 데이를 추수절기로 지킨다 한다. 영국의 그 절기는 미국처럼 하나님께 감사하는 Thanksgiving이 아닌 Harvest 개념이다. 그래서 영국에서는 Harvest Day, 또는 Harvest Sunday라 부른다. 물론, 감사의 의미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들은 추수로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절기가 아닌 그냥 추수절로 지키는 것이다.
문제는 기독교인들에게 추수감사절이면 됐지 무엇이 부족하여, 또는 무엇하러 영국의 추수절까지 끌어들여 교회행사로 하는가 하는 것이다. 추수를 문화행사 수준으로 하려면 한국 고유의 추석이면 만족하고도 남을 텐데, 다른 나라 영국의 추수절을 한국에서 지키려 하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또, 추수절에 청바지를 입고 한다는데, 청바지는 왜 입나? 청바지는 미국 서부의 카우보이들이 다루기 힘든 소들을 몰고 다닌 때 질긴, 그리고 두터운 옷이 필요하여 아무 때나 오래 막입을 수 있어 입는 옷이다. 그런 청바지를 입고 추수절을 지킨다? 세상말로 완전 포퍼먼스다. 한국 문화 족보에 없는 쇼(Performance)일 뿐이다.
우리가 외국문화를 받아들일 때는, 특히 기독교 교회에서는 심오한 분석이나 비평이 있어야 한다. 동양문화의 사라짐의 원인 중의 하나가 서양이 폐기 처분한 3류 문화를 사대주의 문화정신 때문에 무조건 받아들여 서구문화에 지배당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런 입장에서 보면 질서안정과 인간정신 발전에 도움이 되는 문화나 풍습들을 잘 선별하여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다.
가치 없는 풍습으로서 그 현상의 대표적인 것 중의 하나가 할로윈이다. 할로윈(Halloween) 데이는 미국이나 영국에서 행하는 일종의 마귀, 악령을 쫒아내는 풍습으로 미국은 매년 10월 31일에 행한다. 죽음에서 되살아 난 악령들이 집에 못들어 오도록 큰 호박에 속을 파 내고, 눈과 코, 그리고 입을 구멍을 뚫어 만들고, 그 호박안에 촛불을 켜두어 공포스럽게 하여 귀신들이나 악령이 못들어 오도록 하는 풍습이다. 또한 아이들이 악령의 모습의 가면이나 옷을 입은 채 어두운 밤에 집집마다 다니며 캔디나 초콜렛을 얻기도 한다. 이런 복장으로 알지도 못하는 집의 대문을 두드렸다가 총맞아 죽는 사건이 해마다 몇 건씩 나기도 한다. 아이들에게는 추억거리가 될 수 있겠지만, 기독교 전통 교리와 신앙에는 거리가 멀어 조심성이 요구된다.
이런 것이 한국에 슬며시 들어와 한국 고유의 문화행사로 되어 가고 있다. 무슨 의미가 있는지,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알지도 못하고, 거의 무조건적으로 받아들여 젊은이나 아이들이 행하는 것이다. 외국인들이 활동하는 서울의 이태원을 통해, 외국인들의 왕래를 통해, 그리고 미국같은 해외에 유학을 다녀 온 사람들이, 또 그들의 자녀들에 의해, 여기에 장사꾼들의 상술에 의해 활성화 되어져 가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한국에 없던 할로윈이 그렇게 활성화 되어가고 있다. 동성애도 이런 과정과 경로를 통해 행해지고 있지 않는가.
어느 목사가 시도하는 영국의 추수절(Harvest Sunday) 모방 행동은 미국의 3류 문화 할로윈 데이를 한국에 퍼뜨리는 것처럼 포퍼먼스가 되지 않을까 우려스럽다. 한국교회가 추수감사절을 지키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로서의 신앙 때문이다. 하나님에 대한 감사의 내용이 명확하게 나타나 있지 않는 추수절과는 다른 것이다. 그런 절기를 기독교인들은 지킬 필요가 없다. 어쨌든, 이런 영국 전통인 추수절 행사는 “뭘 또 이런 것을”하는 의문과, 그에 따른 혼란을 야기한다.
새로운 외국의 문화행사를 도입할 때 목사들이 전통을 해치지 않도록 신중을 기해야 할 일이다. 오랫동안 전해 내려 오는 신앙적 전통을 중시하여 오히려 성도들이 안정 속에서 신앙 하나 붙잡고 사회생활을 할 수 있도록 안내를 잘 해주어야 할 책임과 의무가 있음을 인식하고 조심스럽게 목회해야 한다. 교회 절기에 하나님께 감사하는 신앙이 빠진 이런 행동(포퍼먼스)을 하므로 기독교 사회 문화의 혼란을 야기 해서는 안 될 것 같다.
#양기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