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그리스도인을 돕는 것은 그를 그리스도께 인도하는 것 못지않게 중요하고도 흥미진진하다. 만약 어떤 여성이 임신 기간에는 공들여 영양 관리를 하고 태아에게 큰 관심을 기울이다가 출산 후에는 아기가 영양실조에 걸릴 정도로 무관심하게 방치한다고 생각해보자. 이것은 매우 끔찍한 이야기이지만, 사실 이것보다 더 심각한 비극이 교회 안에서 일어나고 있다. 대부분의 전도 활동이 한 사람의 비그리스도인이 회심하고 교회에 등록하는 지점에서 끝나 버리고 마는 것이다. 우리는 믿지 않는 친구가 복음을 듣고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나면 더 이상 그의 영적 상태에 신경을 쓰지 않는다. 그렇게 되면 그 친구는 정상적인 영적 성장의 과정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신앙을 저버리거나 영적인 문제에 무관심한 사람이 될 가능성이 크다.
마이클 그리피스 – 새로운 신자를 격려하려면
구원에 관한 교리로서 갈라디아서와 로마서는 각기 다른 사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즉 로마서는 논증적인 접근임에 반해 갈라디아서는 변증적으로 접근합니다. 로마서는 로마에 있는 교회에게 구원에 대한 바른 지식을 전하고자 하였으나 갈라디아서는 이미 바울에 의해서 복음이 전하여진 곳에 율법주의로 말미암아 복음이 왜곡되고 변질되는 위기 가운데 기록된 서신이기 때문입니다. 다소 격앙된 표현들은 이러한 위기 상황을 잘 드러내고 있습니다. 갈라디아서를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구조를 이해할 때에 보다 선명해집니다. 갈라디아서는 서론과 결론을 제외하면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뉩니다. 첫 번째 부분은 1장11절-2장이며, ‘바울의 행적’을 바탕으로 기록되었으며 바울이 전한 복음의 신적 기원을 통하여 이신칭의의 교리를 전합니다. 전혀 복음에 외인이었던 사도 바울의 부르심과 두 번의 예루살렘 방문, 게바 책망 사건입니다. 특별히 두 번의 예루살렘 방문 중에 그가 가졌던 예루살렘의 사도들과의 관계는 복음의 신적인 기원을 잘 증거합니다.
임경묵 – 갈라디아서
로마서 10장 4절 “그리스도는 율법을 끝내시고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가져다 주신다”(NEB)를 생각해 보자. 이것은 일반적인 번역이지만 잘못된 번역이다. 이 번역자처럼 대부분의 신학자들은 이 구절을 예슈아가 토라를 끝내셨다는 것으로 이해한다. 그러나 “끝내셨다”(end)라고 번역된 그리스어 단어는 텔로스(telos)이다. 그리스어 텔로스의 일반적인 의미는 “종료”가 아니라 “목표, 목적, 완성”이다. 물론 이 구절에서 사용된 “끝내셨다”도 바로 이 의미이다. 메시아는 토라를 끝내지 않으셨고 지금도 그렇다. 오히려 메시아를 향한 관심과 믿음은 토라가 지향하는 목표이자 목적이며, (율법주의로 토라를 준수하려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진정한 믿음으로 토라를 준수하는 것의 논리적인 결론이자 결과이며 완성이다. 복음의 메시지는 유대인과 이방인 모두를 위한 것이지만 메시아 신앙은 유대적 맥락을 가지고 있다. 유대인들이 더 이상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라는 대체신학의 잘못된 전제를 받아들인다고 하더라도 기독교가 유대적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기독교를 다르게 이해해 보려는 시도는 하나님의 메시지를 왜곡시킬 뿐이다.
데이비드 H. 스턴 – 복음의 유대성 회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