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자와 신학자는 존귀한 동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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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기성 박사(웨슬리언교회지도자협의회 대표회장)

양기성 박사

한국 기독교의 교회가 숫자적으로 점점 감소추세에 있다. 이는 한국 교회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현상이기에 한국교회 및 목회자들만의 문제가 아닌 것이긴 하지만, 어쨌든 감소 추세에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여러 다른 이유들과 더불어 교회와 목회자들에 대한 불신이 있기 때문에 그런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먼저, 신학자들은 무엇하는 사람들인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 그리고 성경을 중심으로 하여 해석하고, 변증하여 이를 이론으로 정립하는 사람들이다. 문제는 성경 정신의 입장을 떠나 세속학문적 차원에서 연구하고 가르치는 학자들이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얼마나 큰 폐해를 가져 오는지 알아야 한다. 성경의 교리를 배경으로 하지 않는 사람은 아무리 목사가 되어 신학교에서 가르친다 해도 그는 철학자일 뿐이지 신학자는 아니라 할 수 있다.

어느 종교인이 연구한 것인데 일본은 왜 기독교 인구가 1%정도 밖에 안되는가에 대한 언급을 들은 예가 있다. 일본은 1920년대 초 복음주의 신학으로 교인들이 점점 증가추세에 있었는데, 자유주의 신학자들이 성경의 복음내용과는 본질면에서 좀 다르게 가르쳐 어느 것이 더 확실한 것인지에 대한 회의감을 갖게 하였다. 이에, 신학자, 목사들, 그리고 교회를 불신하게 되어 더 이상 발전할 수 없었다 한다. 물론, 일본에 기독교 교회가 성장하지 못한 데에는 정치적인 요인같은 다른 중요한 원인들도 다수 존재하지만, 지금 말한대로, 자유주의 신학이 들어와 성경의 본질적 교리와는 다르게 가르치는 바람에 불신을 얻게 되어 오늘날과 같은 상황에 이르게 되었다 했다. 신학자들이 바로 서야 하는 이유를 알게 하는 일이다.

신학자들이라 하는 사람들의 일부는 일반 학문의 영향을 받아 성경정신보다 다른 학문의 가르침을 중심으로 성경이나, 기독교 교회를 이해한다. 이런 현상은 비록 기독교 교회뿐만이 아니라, 타종교, 즉 불교나, 이슬람같은 종교도 동일한 현상들을 가지고 있다. 분파, 종파, 교파같은 것이 1차적 예가 되고, 같은 종파 내에서도 이념이나 학문성향에 따라 중심 교리를 떠나 자신들의 주장을 설파하여 여러 갈래의 이론을 만들어 낸다. 그러므로, 모든 종교가 그 종교 내에서 똑같은 사상이나, 똑같은 방법론으로 그 기능을 유지하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질로부터 왜곡이나 변질되지 않도록 끝없는 중심잡기가 필요하다. 신학자들은 이런 사명을 가지고 연구하고 가르치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아니하여 오히려 왜곡 해석하여 믿지 못하게 하거나 혼돈을 주는 잘못을 하고 있는 것이다.

학문적 이론정립 및 해석이 중심이지만, 목회자 사명의 면모도 갖추어야 한다. 인간의 삶의 문제에도 현실적인 대답을 줄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학자라 하여 책상에만 붙어있어 현실적 삶에 대해서는 깜깜한 생각들을 하고 사는데, 이는 훌륭한 신학자라 할 수 없다. 목회자들도 신학자들과 같은 사명을 가진 사람들이나, 성경을 바탕으로 한 신학자들의 이론을 생활현장에 실행하는 사람들이다. 목회자들도 복음 아닌 다른 복음을 가지고 설교한다거나, 사람 하나하나의 영혼돌보기 영역에 벗어나 있으면 그 역시 교회의 목회자라기보다는 사업경영자, 집단관리자, 또는 사람유지하는 인사관리자에 지나지 않는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내 양을 먹이라, 내 양을 치라” 유언같은 말씀을 하셨는데, 사람 관리하고, 건물 유지하고, 소위, 교단을 만들어 교단에서 지도자 노롯하느라 이 말씀을 잘 실천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큰 교회 담임목사는 그 조직에서 특별한 일을 하는 사람들 몇 명에 둘러쌓여 있다. 그 몇몇만이 담임목사를 만날 수 있다. 그러다 보니 대부분의 소위 큰 교회 목사들이 스스로 제왕적이라 착각하는 것 같은데, 이것이 한국교회 및 목회자 불신을 불러오는 이유 중에 하나다. 성도들이 말은 안 해도 목회자들의 행동을 다 파악하고 평가하고 있다.

어느 교회든 정신적, 영적으로 상담해 주어야 할 성도들이 있다. 성도들은 책임자(담임목사)로부터 책임있는 말을 듣고 싶어한다. 그런데,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담임목사를 만나 영적 상담받기가 어렵다. 그러니 상담받아야 할 사람들이 어디를 찾아 가는가? 1대 1 상담할 수 있는 점장이, 무속인들을 찾아가는 것이다. 과학이나 지성이 최고조로 발달한 문명사회 한국인데, 점장이 무당, 역술인들이 한국인들의 정신세계를 이끌어 가고 있다니 비극이 아닐 수 없다. 지금 이 시대는 구약의 이스라엘 아합왕 때와 어찌 그리 같은지. 필자는 지난 여러 차례 글을 통해 “아합왕과 그의 처 이세벨이 왕궁에서 바알이나 아세라의 우상을 불러들여 제의식을 행했던 시대와 유사하다. 이들을 처단했던 불의 선지자 엘리야 같은 일을 해야 하는 목회자들이 되어야 한다”고 여러 차례 강조한 바 있다. 목회자 모두 엘리야가 되어야 교회가 살 수 있다.

뿐만 아니다. 동성애자들이 이상한 몸짓으로 거리를 활보해도 종교의 자유니 차별금지니 해서 목회자들이 아무런 말도 못하고 대책을 세우지도 못하고 있다. 이는 성경은 말할 것도 없고, 사회 문화, 인류학적으로도 잘못된 일임에도 침묵으로 일관한다. 기독교교회로서 영향력을 전혀 행사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또 다른 문제는 일단 목회를 시작하면 공부를 안 한다는 것이다. 사회에서는 시대사조들이나 학문들이 예상치 못한 분야까지, 즉 인간이 신이되겠다는 야심찬 연구까지 하고 있는데, 목회자들은 내 교회, 내 성도로 울타리치고 그 안에서 자신들 만이 즐길 수 있는 행사에만 관심 갖는다. 신학, 과학, 철학, 각 종 인문학 도서들이 매일 쏟아져 나오는데, 목회자들은 이런 일에 깜깜하다. 세상 돌아가는 것을 잘 모르고 15세기 상황의 설교만 한다. 그리고, 설교 잘했다고 스스로 위안하며, 그에 만족해 하고 있다. 세상을 읽을 줄 아는 학자들이나 목회자들이 되어야 한다. 도전적인 세속문화나 철학 사조들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겨나가기 위해서는 눈 부릅뜨고 신학자는 신학자로서, 목회자는 목회자로서의 사명을 잘 이행해 나가야 한다. 사실, 두 그룹 곧 목회자와 신학자는 서로 분리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성취(렘33:2)하시는 창조주 하나님의 사역을 위해서 특별히 택함받은 존귀한 동반자 임을 알아야 한다.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저희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 것같이 저희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요한복음 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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