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혐오·모욕성 발언이 국회의원 특권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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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3일 국회에서 열린 안창호 인권위원장 후보자 청문회에서 ‘무자격’ ‘탈레반주의자’ 등 폭언과 함께 인권 침해성 발언을 해 논란을 야기한 국회의원들을 징계해달라는 진정이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에 접수됐다. 진정을 제기한 박모 씨 등은 해당 의원들이 안 후보자에게 한 발언이 기독교와 기독교인을 모독한 것이라며, 인권위가 국회의장에게 징계를 권고해 달라고 했다.

박모 씨 등 8인의 이름으로 접수된 진정의 대상으로 지목된 사람은 더불어민주당 김성회·고민정 의원과 개혁신당 천하람 의원이다. 이들이 국회 청문회장에서 한 발언들이 후보자의 종교적 신념을 비웃고 기독교와 기독교인을 폄하했다는 내용이다.

김성회 의원은 청문회 당시 ‘진화론’과 ‘창조론’을 함께 교육해야 한다고 한 안 후보자의 과거 발언을 끄집어냈다. 안 후보자가 “(창조론은)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셨다는 것인데, 반면 진화론은 과학적 증명이 없다고 생각한다”라고 하자 “근본주의적 종교관을 가진 후보자는 사퇴하는 게 맞다”라고 하고는 갑자기 안 후보자를 향해 “무자격, 보수 기독교, 탈레반주의자!”라고 외쳤다.

TV로 이 청문회 실황을 지켜보던 교계는 경악했다. 한기총과 수기총 등 교계 단체는 김 의원의 발언이 “한국교회와 1천만 성도를 조롱한 막말”이라고 비판하면서 사과와 함께 의원직 사퇴를 요구했다.

교계의 반발이 거세자 김 의원이 자세를 낮췄다. 지난달 21일 경기도 고양시 소재 성은숲속교회에서 열린 지역 목회자 모임에 참석해 자신의 표현이 과했음을 사과한 것이다. 김 의원은 이 자리에서 국회 인권위원장 국정감사 시 (안 위원장에게) 직접 사과하겠다고도 했다.

고민정 의원은 청문회에서 안 후보자에게 ‘차별금지법’에 대한 찬반 의사를 묻고 반대한다고 하자 “성경에서 예수님이 간음한 여인을 어떻게 하라시더냐, 돌을 던지시라더냐”라면서 안 후보자의 견해를 편파적이고 혐오적인 발언이라고 몰아세웠다. 또 “후보자께서는 헌법보다, 국회보다, 법보다 성경 말씀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실 것”이라며 비아냥대기까지 했다. 교계에선 고 의원이 21대 때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발의한 의원 중 한 사람이란 점에서 이에 반대하는 후보자의 기독교 신앙까지 조롱했다는 격앙된 반응이 나왔다.

개혁신당 천하람 의원은 안 후보자가 “창조론을 믿는다”라고 하자 “빅뱅이론에 관해서 ‘창조론’을 믿는다는 게 한국말입니까?”라고 했다. 안 후보자의 견해를 비꼬고 조롱하는 투의 표현이다. 이어 “이분은 종교적 신념이 굉장히 강하다. 저도 종교가 있지만, 특정 종교에 대해 이 정도로 강력한 신념을 갖고 계신 분이 다른 직책도 아니고 국가인권위원장을 맡는다는 것은 굉장히 위험한 일’이라고 했다.

종교적 신념이 강한 사람은 공직을 맡아선 안 된다는 천 의원의 발언은 이 분이 ‘종교의 자유’가 헌법에 보장된 대한민국의 국회의원이 맞나 싶을 정도로 위험하고 차별적이다. 종교심을 드러내는 사람은 어떤 공직도 맡아선 안 된다는 논리인데 이런 생각을 국회의원이 입에 담는 자체가 자신의 수준을 드러낸 것이라 할 수 있다.

개인의 신앙과 국가인권위장 직은 아무런 상관이 없다. 안 후보자가 ‘창조론’을 믿든 ‘진화론’ 신봉자이든 인권위 업무와는 별개다. 인권은 하나님이 피조물인 인간에게만 부여한 특별하고도 고유한 권리라는 점에서 천부 인권적 신념을 가진 후보자가 인권위원장을 맡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지 조롱거리일 수 없다.

안 후보자는 전직 대법관으로 대한민국 법치 수호에 공헌한 분이다. 또 교회 장로로 훌륭한 신앙 인덕을 쌓았다. 청문회에서 개인의 신앙관까지 문제 삼는 이런 의원들의 의식 수준이야말로 대한민국 인권 향상에 걸림돌이 되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국회에서 모욕성 발언으로 진정이 접수된 3인의 국회의원은 인권위 조사 결과에 따라 적절한 징계 수위가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인권위가 어떤 결정을 내릴지 모르지만, 해당 의원들이 ‘본회의 등에서 모욕성 발언을 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한 국회법 제146조를 위반한 것으로 판단되면 국회의장에게 해당 의원들에 대한 징계를 권고할 수 있다.

국회의원에겐 직무상 행한 발언과 표결에 대해 국회 밖에서 책임을 지지 않는 ‘면책 특권’이 있다. 이는 국회의원이 자유롭게 직무를 수행하는 것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다. 하지만 국회 내에서 일어난 일에 대한 징계 권고는 국회의원 면책 특권 예외사항이다.

최근 국정감사장에서 의원들이 증인들을 불러놓고 창피를 주거나 모욕성 발언을 하는 사례가 자주 있어 국민으로부터 빈축을 사고 있다. 증인은 어떤 사안에 대해 의혹을 해소하기 위해 참고인 신분으로 국회에 소환된 것이지 범법자가 아니다. 그런데도 위원 중에는 무턱대고 증인을 겁박하거나 고함을 치는 등 고압적인 자세로 일관해 국회의원이 조선시대 ‘사또’ 흉내를 내고 있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다.

국회의원은 국민을 대리하는 사람이다. 스스로 국민의 대표라면서 함부로 말하는 걸 당연시 하는 건 국민을 욕보이는 짓이다. 어느 국민이 의원에게 차별과 혐오, 조롱성 발언을 마구 해도 좋다고 했나. 이건 의원의 특권이기 전에 인격과 의식 수준의 문제다. 입에서 나온다고 다 말이 아니다. 무차별적인 혐오 발언을 일삼는 의원들에게는 반드시 국민의 따끔한 경고가 뒤따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