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피적 지성주의는 하나님이 역사에 자신을 계시해 오셨다는 사실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길 거부하고, 복음에 선포된 예수 그리스도를 관념, 신화, 상징, 기억, 형상, 영향력으로 바꾸길 고집하며, 이로써 그분이 하나님이요 인간이신 구주(divine, personal Savior)라는 것을 인정하려 하지 않습니다. 그렇습니다. 이들의 복음은 “살아계신 구주와 전능하신 주께 나오라”는 문제가 아니라 “교회 내부의 영향력으로 나오라”는 문제입니다. 이들은 기독교 선교를 다른 방식으로 생각합니다. 필연적으로 또한 피할 수 없게도, 이들에게 기독교 선교란 세상 사람에게 주 그리스도를 전하는 문제가 아닌 다른 종교들에게 다가가 그 종교를 풍성하게 하는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19세기에 기독교 선교를 생각하는 방식이었습니다.
제임스 패커 – 패커, 기독교에 대한 도전에 답하다
단지 죽지 않고 살려는 몸부림이었는데 이것이 놀랍게도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도구가 되었습니다. 이스라엘과 모압, 이스라엘과 이방인 간의 차별을 금지하려는 하나님의 뜻을 실현했던 것입니다. 더 나아가 다윗과 그리스도로 이어지는 구원사의 연결점이 되었습니다. 우리 운명이나 우리의 일상사는 신의 뜻이 펼쳐지는 무대입니다. 생명을 향한 우리의 분투는 신성합니다. 룻은 모압 이방인이며, 여자이며, 과부이며, 가난한 자입니다. 마을에서 충분히 왕따를 당하고 무시해도 좋을 조건을 모두 갖추고 있습니다. 보아스는 그런 룻을 환대합니다. 환대와 초대는 다릅니다. ‘초대’는 자기가 계획한 시간과 대상이 있고, 자기가 준비한 것으로 대접합니다. 초대는 자기만족이고 그냥 우정의 나눔에 불과합니다. ‘환대’는 불시에 찾아드는 자를, 전혀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맞는 것을 말합니다.
이종철 – 룻기, 환대와 연대의 이야기
사랑이 많으신 아버지시여, 당신은 사랑이심을 보게 하소서. 근심하며 의심하는 마음 없이 당신의 선한 뜻과 친절함을 의심하지 않고 당신의 마음 안에서 모든 선의 원천을 보게 하소서. 당신을 인상 쓰는 아버지로 보지 않고 가장 친절하고 다정한 아버지로 보게 하소서. 당신의 사랑은 다른 사람에게서 사랑을 찾을 필요가 없게 합니다. 당신과 당신의 영광스러운 완전성에 무한히 만족하게 하여 모든 것을 충족시키는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하늘 보좌에서 영원히 당신의 아들을 기뻐하며 영원히 만족하며 쉬실 수 있었지만, 당신의 만족만을 구하지 않으시고 우리의 유익을 위해 당신의 성도들을 사랑하기로 선택하셨습니다. 이것이 친절함과 너그러움이 넘쳐 나는 아버지의 사랑, 당신의 사랑입니다.
팀 체스터 – 기도의 보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