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드시고 천지 만물 중 최고의 영광을 누릴 수 있게 했습니다. 이를 믿는 사람에게는 감사가 가득한 환경과 자랑거리를 주십니다. 10월이 되면 교회 창립 때의 일들이 생각납니다. 척박한 환경이었지만 그때의 추억을 떠올리면 참 감사합니다. 세상 사람들에게는 미련해 보였겠지만 십자가의 도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전 1:18) 바울 사도는 고린도 교회에 편지를 썼습니다. 그들이 잘 되기를 원해서였습니다.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이 끝까지 견고하게 은혜의 자리에 있기를 소원했습니다. 그러나 고린도 교회에 분쟁이 생겼습니다. 바울, 게바, 그리스도 등으로 계보가 나뉘어 하나되지 못했습니다. 그러자 바울은 오직 예수님께 속하여 하나가 되기를 바라며 교훈했습니다.
권태진 – 어둠 속 빛길
우리가 그리스도의 십자가라는 이름으로 말하든 그리스도의 제사장적인 사역으로 말하든, 그 내용 안에는 웨스트민스트 소요리문답에서 말하듯이 두 가지가 내포되어야 합니다. 하나는 단번에 자기 자신을 제물로 바쳐서 하나님의 공의를 충족시킨 것이고, 또 하나는 우리를 위해 계속 중보기도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을 줄여서 말하면, 자신을 드린 희생적 죽음과 그에 근거하여 하나님 앞에서 대언하시는 것입니다. 바로 이 부분에서 그리스도 같은 이가 없고, 이 부분에서 그리스도는 유일무이합니다. 우리는 이것이 얼마나 크고 중한 사실이며, 죄 있는 우리를 자유케 하는 일인지, 또 우리를 얼마나 기쁘고 복 되게 하는 것인지 알아야 합니다. 자신의 죄 문제가 해결되는 중한 가치와 기쁨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전할 자격이 없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내 죄를 해결하기 위해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키셨다는 것은 죄인에게 가장 기쁜 소식입니다.
박순용 – 복음의 다섯 꼭짓점
‘나는 성령의 열매를 맺고 있는가?’라는 질문은 ‘나는 삶 가운데서 그리스도와 같은 태도를 보이고 있는가?’와 똑같은 질문이다. 내 성향은 사랑·희락·화평·오래 참음·자비·양선·충성·온유·절제를 입증하는가? 또한 이는 ‘나는 지금 여기서 그리스도 안에서의 삶을 살고 있는가?’와 똑같은 질문이기도 하다. 이는 가장 근본적인 질문이다. 이는 우리의 작고 보잘것없는 삶에 빛을 비추어 준다. 물론 이런 질문에 정직하게 긍정적으로 답변할 수 있는 사람이 거의 없는 만큼, 이 질문은 우리를 불편하게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자, 이 문제에는 두 가지 해답이 있다. 첫째는, 우리의 모든 의지를 다해 주 예수님에게 더 가까이 가는 것이다. 둘째는, 우리 대다수의 경우가 그렇듯, 예수님에게 더 가까이 가는 게 어렵다면 주님 앞에서 기다리는 것이다.
폴 웰스 – 그리스도 안에서 성장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