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로새서는 4장밖에 안 되는 짧은 서신인데 그 안에 “함께”라는 단어가 14번이나 나온다. 바울은 각처에서 전도하여 교회를 설립했는데, 후에 그 교회들이 안고 있는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편지들을 보냈다. 그는 영적 자녀들을 위한 애틋한 애정과 사랑을 가지고 편지했는데, 어떤 때는 그 사랑이 얼마나 컸던지 눈물을 흘리면서 편지를 썼다. “내가 마음에 큰 눌림과 걱정이 있어 많은 눈물로 너희에게 썼노니, 이는 너희로 근심하게 하려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내가 너희를 향하여 넘치는 사랑이 있음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함이라” (고후 2:4).
1세기 이방인 성도들에게 주어졌던 교훈의 말씀이 21세기 한국교회의 성도들에게도 유효함을 깨닫게 한다. 골로새교회는 사도 바울이 개척한 교회는 아니지만, 자유롭지 못한 감옥에 있던 바울은 이방인이었다가 구원받은 골로새의 그리스도인들이 잘못된 철학, 유대교의 의식주의, 천사 숭배, 금욕주의 등 여러 영적인 문제와 도전에 대해 한 땀 한 땀 애정을 담아 편지할 정도로 각별하게 사랑하는 교회였다. 당면한 문제들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골로새의 그리스도인들에게 방향과 해결책을 제시한 것처럼, 한국교회도 하나님의 각별한 은혜와 에바브라와 같은 하나님의 사람들에 의해 세워졌지만, 여러 영적인 도전과 문제들 속에서 방향을 잃고 위험에 처해있다는 점에서 저자 홍성철 소장(세계복음화문제연구소)은 골로새교회의 상황으로 적용하여 해결책을 제시한 책을 집필하게 되었다.
저자는 책 속에서 “골로새서는 4장밖에 안 되는 짧은 서신인데 그 안에 ‘함께’라는 단어가 자그마치 14번이나 나온다. 그 단어는 신약성경에서뿐 아니라 기독교 신앙에서 참으로 중요하다. 중요하지 않다면 한글 신약성경에서 463번이나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이렇게 많이 나온 ‘함께’를 원어인 헬라어로 보면 한 단어가 아니라 여러 단어인데, 곧 순, 메타, 프로스, 파라 등이다”고 했다.
이어 “그리스도인들의 교제는 언제나 이중적인데 아래로는 다른 사람과 나누는 교제이고 위로는 주님과 나누는 교제이다. 바울 사도는 골로새서 1장 7절에서 이렇게 언급했다: ‘이와 같이 우리와 함께 종된 사랑하는 에바브라...’. 바울 사도와 에바브라는 ‘함께’ 종이 되었다! 다시 말해서, 그 둘은 손과 발이 같이 함께 사역하고 함께 감옥에 들어가고 함께 삶을 나누는 그래서 떼래야 뗄 수 없는 관계였다. 그들은 어떤 의미에서는 부부 관계보다 더 깊은 사랑의 관계를 누렸다”고 했다.
그러면서 “주님과의 교제는 어땠는가? 바울의 증언이다: ‘너희가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되고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느니라’(골 2:12).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가 죽으실 때 함께 죽었으며, 그 분이 부활하셨을 때 함께 부활했다는 것이다. 그런 교제보다 더 가깝고 친밀한 교제는 있을 수 없다. 그분의 죽음이 그들의 죽음이고, 그분의 부활이 그들의 부활이라니 둘이 아니라 하나였다”고 했다.
끝으로 저자는 “바울 사도는 골로새서를 기록하면서 세 가지 교제를 제시했는데, 모두 ‘함께’라는 간단한 단어로 묘사했다. 첫째는 아래로 다른 그리스도인들이 나누는 교제였다. 둘째는 위로 그리스도와 나누는 교제였다. 셋째는 육신의 한계를 초월한 영적 교제였다. 그런 교제들이 가능한 것은 바울 사도가 주님에게 이끌리어 셋째 하늘에 갔던 경험 때문이었는데 그런 교제를 ‘함께’라는 전치사로 묘사했다. 작지만 얼마나 놀라운 단어인가!”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