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내게 트랜드를 빨리 읽어내는 감각을 주셨다. 그리고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즉시 행동으로 옮기는 추진력도 주셨다. 왜 하나님이 내게 이러한 달란트를 주셨는지 부르심에 답하면서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하나님은 이 모든 달란트를 그분의 뜻을 이루는 데 적절하게 사용하셨다. 이 또한 하나님이 주신 달란트 가운데 하나이고 훗날 그분의 부르심에 합당하게 사용되었다. 1교회 1학교를 외치며 기독교 대안학교 세우기 캠페인을 하면서 이 운동을 10년 전부터 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컸다. 그러나 10년 전부터 했더라면 귀 기울이는 사람도 별로 없었을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나이가 들수록 생에 집착하기보다 다음 세대에 자리를 내주어야 한다. 단지 옆으로 조용히 비켜설 뿐 아니라 인생 최고의 유산을 물려줘야 한다. 그리고 그 유산은 바로 신앙과 교육이다.
감경철 – 내게 포기란 없다
성서학자 윌리엄 바클레이(William Barclay)는 ‘내, 나의, 나의 것’이란 단어들을 가리켜 ‘침략의 대명사’라고 말했다. 왜냐하면 남과 비교해서 내가 조금이라도 부족하면, 우리는 여지없이 자기중심적으로 돌변하기 때문이다. 남과 비교하면 끝이 없다. 늘 불행해진다. 그러나 나누기 시작하면, 남의 기쁨도 나의 기쁨이 되고, 남의 행복이 나의 행복이 된다. 남과 비교하면 할수록 마음은 더욱 힘들어지지만, 타인을 도우면 내가 살아나고, 내가 부요해진다. 그러므로 이제부터 비교를 그만두고 나눔을 실천하자. 그러면 내가 산다! 세상 누구보다도 부요한 자로 살 수 있게 된다. 걸음마를 시작한 아기들을 모아 놓고 5m 정도를 걷게 해 보았다. 그때 어떤 아기는 몇 번을 넘어져도 엄마에게 걸어 왔고, 어떤 아기는 한 번 넘어지더니 다시 일어나질 못했다. 무엇이 중요한 요인이 되었을까? 넘어지더라도 엄마 얼굴을 쳐다보고, 엄마의 격려와 응원을 받은 아기는 몇 번 더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 걸었다. 그러나 한 번 넘어지더라도 땅만 보고 있던 아기는 결승점에 도착하지 못했다고 한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하나님의 얼굴을 찾고 하나님의 응답을 바라본다면, 실패를 경험하고 넘어지더라도 결국 승리하게 된다. 주님이 나의 해답이라는 믿음으로 주님께 시선을 드리면, 주님이 직접 해결하신다.
궁인 – 하나님의 방식
부활 신앙을 잃어버린 가장 큰 원인 중 하나는, 주님께서 부활 승천하신 지 2천 년이 지나도록 다시 오시지 않는다는 바로 그 점이라고 할 수 있다. 그 기다림이, 핍박이 계속되는 동안에는 어떻게든 내부적인 결속의 필요성과 함께 힘을 발휘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핍박이 사라지고 안정화 시대로 접어들면서 모든 것이 서서히 바뀌게 되었다. 주님을 직접 대면했던 사람들이 죽고, 그들로부터 이야기를 전해 들었던 사람들도 죽고, 이제 기독교는 오히려 사회의 지배 세력이 되었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자기도 모르게 생존의 방어 기제를 발동시켜, 자기 삶을 유지하고 보존시키는 쪽으로 더 많은 에너지를 사용하게 되었을 것이다. 그렇게 많은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가 알고 있는 오늘날의 기독교가 자리를 잡게 되었으리라.
김함 – 죽음보다 가까운 “지금 여기”에서의 부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