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한국인 첫 노벨 문학상 수상, 빛과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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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한강 씨가 올해 노벨 문학상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한강 씨의 올해 노벨 문학상 수상은 아시아 여성 최초이자 한국인 최초라는 점에서 한국 문학의 저력을 전 세계에 떨친 자랑스러운 쾌거가 아닐 수 없다.

올해로 124년을 맞은 노벨상은 모두의 예상을 보란 듯이 비껴가고 있다. 문학상의 경우도 여성 작가에게 돌아갈 거라는 설이 나돌긴 했으나 한강 씨는 주요 후보로 거론되지 않아 발표 후 전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한국의 50대 젊은 여성 작가의 노벨 문학상 수상이 그동안의 관행을 깨는 신선한 파격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뜻이다.

소설가 한강은 ‘소년이 온다’, ‘채식주의자’ 등의 소설로 세계적 인지도를 쌓아 영국이 주는 권위 있는 문학상인 맨부커상과 프랑스 메디치상을 잇따라 수상했다. 이미 국제적인 문학상을 휩쓸며 상당한 명성을 쌓은 한강 씨가 당초 노벨 문학상 유력 후보군에서 빠졌던 건 아시아 국가, 그중에서도 서구 문학계에서 변방으로 취급되던 한국 작가라는 점 때문일 것이다.

한강 작가의 노벨 문학상 수상으로 국내 서점가가 때아닌 호황을 맞은 모습이다. 한강이 쓴 주요 소설집 판매가 수상 직전 대비 2240배나 증가하는 등 ‘신드롬’ 현상을 일으키고 있다. 특히 ‘소년이 온다’와 ‘채식주의자’는 수상 다음 날 각각 약 3만8000부가 판매되며, 단일 도서(예스24 기준) 일일 최다 판매량을 돌파했다.

그런데 축하와 찬사 일색인 한편에서 우려의 목소리도 들려오고 있다. 한강의 소설에 나오는 주인공의 페미니즘적 성향을 지적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이런 논란에 뉴욕타임즈(NYT)도 “한강 작가의 작품은 무거운 역사적 짐을 다루면서 페미니즘 시각도 담고 있다”고 평가하고 있다.

소설 ‘채식주의자’는 주인공 영혜가 어느 날 꾼 꿈을 계기로 육식을 거부하면서 가족들과 갈등을 빚는 이야기다. 화가인 형부가 처제인 주인공의 알몸에 꽃을 그려 넣고 촬영하며 성행위를 갖는 장면이나 주인공이 식음을 전폐하자 아버지가 억지로 고기를 입에 밀어 넣거나 주인공이 칼로 손목을 그어 정신병원에 입원하는 내용으로 화제가 됐다.

그런데 최근 온라인에 한강 씨의 대표작인 ‘채식주의자’를 읽다가 중도에 포기했다는 이들의 글이 심심찮게 올라오고 있다. 대부분 소설 속에 나오는 주인공을 둘러싼 가족관계 사이에서 벌어지는 성적 묘사를 불편해하는 내용이다.

보수진영에선 언젠가부터 작가 한강 씨를 ‘좌파’로 부르고 있다. 그가 2017년 NYT에 ‘While the U.S. Talks of War, South Korea Shudders(미국이 전쟁을 언급할 때 한국은 몸서리 친다)’라는 제목의 글을 기고한 게 발단이다. 6.25 전쟁을 강대국들의 대리전으로 규정하며 전쟁 중 발생한 ‘노근리 양민 학살 사건’을 거론해 6.25 전쟁의 책임을 북한이 아닌 미국에 물어 논란이 됐다.

이와 관련해 고세진 전 아세아연합신학대학 총장은 본지에 기고한 글에서 “한강의 소설을 보면, 5.18 사건을 편향적으로 다루고, 4.3 폭동의 정체를 호도하였고, 대표적 소설인 ‘채식주의자’에서는 남성과 가족에 대한 감성적 해체와 지성적 파괴를 시도하는 포르노”라고 있다. 이어 “이런 것들을 숙고해 보면 한강이 받은 노벨 문학상은 종북좌파 문학에 대한 축복의 세레모니에 불과한 것”이라고 비판의 날을 세웠다.

한강 씨의 노벨 문학상 수상 소식이 전해진 후 그의 소설을 경기도교육청이 청소년 유해도서로 지정했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한동안 벌집을 쑤신 듯 시끄러웠다. 본지가 경기도교육청 측에 확인한 결과 교육청이 폐기를 권고한 게 아니라 해당 학교 도서관 위원회가 소설 속에 나오는 선정적인 내용을 문제 삼아 청소년 유해도서로 지정해 폐기한 것으로 밝혀졌다.

다만 경기도교육청은 “특정 도서를 쓴 작가가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해서, 해당 도서를 읽도록 장려하거나 권장할 계획이 없으며 현행대로 각 학교 도서관 위원회에 청소년 유해 도서에 대한 감시와 관리를 자율적으로 맡길 예정”이라는 입장이다.

사실 소설을 읽거나 드라마를 볼 때 현실이 오버랩되고 이를 주관화하는 건 종종 있는 일이다. 그만큼 작품 세계에 깊이 몰입한 증거일 것이다. 한강 씨의 작품 가운데 유독 그런 요소들이 많아 평가 또한 극단적으로 나뉘는 경향이 있다. 이를테면 6.25 전쟁과 4.3사건, 5.18 등 시대적 아픔을 소재로 한 내용이다.

소설가 한강 씨가 자신의 작품 속에서 그린 시대적 아픔과 갈등은 작가의 역사관과 가치관과 동일할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그가 외국 언론에 기고한 글이 역사적 편향성 논란에 불을 지펴 비판을 받은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그의 소설 모두를 같은 부류를 묶는 건 생각해 볼 문제다.

소설은 허구에 스토리적 요소를 가미해 현실로 보이게끔 꾸민 창작물이지 결코 사실일 수 없다. 작가의 이념과 생각이 작품에 투영됐다고 그 소설이 다큐멘터리가 될 순 없다. 다만 작가가 작품 속에서 의도하는 방향, 즉 이념 편향성에 대해선 독자들이 깨어있는 양심으로 걸러낼 필요가 있다.

한강 씨의 노벨 문학상 수상은 미지에 가까웠던 한국 문학을 전 세계에 알리는 전환점이 된 일대 사건이다. 하지만 한국인 작가의 노벨 문학상 수상이 처음이자 마지막이 되지 않도록, 앞으로 더 훌륭한 작가를 많이 배출할 수 있는 풍토를 조성하는 것 또한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