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세기 이후 고등비평과 첫 번째 역사적 예수 탐구 등장 가운데 저마다 새로운 기독교의 본질을 주장하였고 특별히 하르낙의 기독교의 본질 강연에서 그 절정에 이르렀을 때 기독교의 참된 본질이 무엇인지를 제시하기 위해 저자 헤르만 바빙크는 이 책에서 교주의 가르침을 믿는 다른 종교와 달리, 예수 그리스도를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신앙이 어떻게 유일한 독특한 기독교의 본질이 되고(“기독교의 본질”) 이에 대한 성경적 증거(“그리스도와 기독교”)와 이로부터 기독교 신학이 어떻게 발전되었고 기독교 역사를 형성했는지(『기독교』)에 대해서 설명한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이 진지한 대화를 나누어 보길 권한다.
저자는 책 속에서 “바울과 요한의 기독론을 거부하는 모든 사람이 이러한 무관심을 추구하지는 않는다. 그들은 여전히 그리스도의 이름을 높이 평가하고, 자신들이 그리스도의 인격과 연결되어 있다고 느낀다. 바로 이것이 그들이 하나님의 나라에서 그리스도에게 예외적인 특별한 위치를 부여하려고 노력하는 이유다. 그들은 그리스도에 관한 하나님의 특별계시를 받아들이고, 그리스도는 그의 인격과 사역 안에서 인류의 종교적·윤리적 발전을 위한 지속적인 중요성이 있다고 믿고 있다. 심지어 이 약한 신앙의 형태에서도, 기독교의 기원과 본질에 대한 질문이 결국 그리스도의 인격과 그의 사역에 대한 질문과 동일하다는 사실을 그들의 신앙고백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당신은 그리스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합니까?’ 이 질문이 종교와 신학의 주요한 질문이다. 그리고 주요한 질문으로 유지된다”고 했다.
이어 “루터의 종교개혁 활동이 일어났던 원리는 분명하게 구별될 수 있고 설명될 수 있습니다. 루터는 ‘성령의 조명’을 통해서 바울이 복음 속에서 증거한 하나님의 의는 하나님의 성품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성취하신 의를 의미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서 회심하였습니다. 문제의 핵심은 루터가 이전에 알려지지 않은 새로운 해석으로 로마서 1장 17절에 나타난 하나님의 의에 대한 관점을 제시했느냐 여부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하인리히 데니플레(Henry Denie)는 루터만의 새로운 관점이 아니라는 견해를 반박할 수 없게 보여주었기 때문입니다. 로마교회의 교리와 실천 모두에 따르면, 로마교회의 경건은 항상 다음과 같은 특성을 보입니다”고 했다.
그러면서 “세례 시 받은 은혜를 통하여 인간은 스스로를 하나님의 공동체에 합당한 존재로 만들 수 있고, 초자연적인 선행을 통하여 영원한 구원에 합당한 존재로 자신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로마교에서 성화는 칭의에 선행했고, 인간의 행함은 하나님의 은혜에 선행했고, 공로는 보상에 선행했고, 그리고 윤리는 종교에 선행했습니다. 반면에 루터는 로마교의 이러한 길이 구원과 이에 대한 보장으로 이끌지 못하고, 특별히 바울의 말을 통해 신약에 제시된 복음은 완전히 다른 길을 제시한다는 것을 자신의 회심 경험을 통해 배웠습니다. 복음 안에서, 먼저 그리스도 안에서 인간에게 은혜를 주시고 자신과의 교제에 받아들이시고 그의 부성적인 은혜에 동참하게 하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인간은 오직 이같이 풍성한 선물을 어린아이 같은, 그리고 감사하는 믿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뿐이다”고 했다.
끝으로 저자는 “그리스도교 안에서 자란 모든 사람, 어떤 의미에서 인간이라는 이름을 가진 모든 사람을 하나로 묶고 결속시키는 것은 인간 마음의 영원한 욕구이다. 인류는 그 궤도를 따라 발전할 수 있었고, 인간은 항상 동일하게 유지되었다. 그의 본성은 어디에서나 동일하게 나타나며, 그의 마음은 오직 하나님에 의해서만 만족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인간의 가장 깊은 욕구는 언제나 모든 유한한 존재가 무한하고 영원하신 분 안에 안식한다는 사실로 귀결되기 때문이다. 그분은 공의로우시고 거룩하신 하나님, 죄를 미워하시고 사악함에서 멀리 떨어져 계시는 분으로 생각될 수밖에 없다. 인간에게 위로와 평화가 있으려면, 이 공의롭고 거룩하신 하나님은 또한 죄에 대해 속죄하고 용서해 주시고, 우리를 죄책에서 해방해 주시고, 은혜로 우리를 그분의 자녀로 입양하시는 자비롭고 자비로운 아버지셔야 한다. 그리고 그분은 약속하신 것을 실현하실 수 있고, 세상과 인류를 중생과 성화의 방식으로 하나님의 나라로 재창조하실 수 있는 전능하시고 신실하신 분이어야 한다. 이것은 인간 마음의 지울 수 없는 욕구이며, 건립된 기념물만큼 확고한 역사적 사실로 우리 앞에 서 있는 기독교의 기본 사상이기도 하다. 성부의 사랑과 성자의 은혜, 성령의 교통에 대한 사도적 축도는 의심할 여지없이 공통된 기독교 신앙의 핵심이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