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것이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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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기성 박사(웨슬리언교회지도자협의회 대표회장)

양기성 박사

200여년 전 찰스 다윈에 의해 진화론이 등장하더니, 그것도 유행을 타는지 지금 유신진화론이 나타나 이것이 옳으니 저것이 옳으니 창조론에 대비하여 말이 많다. 유신진화론자들은 어떻게 하든지 자신들의 주장을 종교, 문화, 자연과학에서 세계관의 중심이 되도록 진력을 다하고 있다. 잘못 던진 주사위의 낭패를 스스로 바라보며, 어찌 할 수 없이 밀어붙여 자신에게 유리한 것처럼 분위기를 조장하고 있는 듯한 모습이다.

 

세상은 진화론에 기울어 있지 않다. 수세기를 통해 학교에서 진화론을 가르치고 있긴 하지만, 배운 학생들 스스로가 이성과 양심에 의한 신념들을 가지고 있어서, 진화론을 따르는 자들도 있지만, 대부분 그대로 믿고 있지는 않다. 대신 타협하려는 입장으로 일부는 유신진화론을 대타 이론으로 꺼내들어 기독교 학자들도 이런 논리에 편승하여 진화론을 은근히 지지하고 있기도 하지만 대체로 진화론을 그대로 믿지는 않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한 리서치가 있다. 유발 하라리(Yuval Harari)가 2012년 갤럽 여론조사를 소개했는데, 이 조사를 보면, 비록 진화론 교육을 받았지만, 모두가 다 진화론자가 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에 의하면, 미국인 15%는 인간은 자연적 존재로 출발, 진화했다고 믿는다. 이는 자연주의자들이 주로 하는 말로서 진화론주의자들의 지지를 받는 내용이다. 32%가 인간초기부터 수백만년에 걸쳐 진화했을 가능성이 있지만, 신이 이 사건 전체를 지휘했다고 믿는다. 이는 유신진화론주의자들이 주장하는 내용을 뒷받침 하는 입장이다. 하나님이 진화를 주도하고 지금도 진화 가운데 인간이 있다는 말이다. 그리고, 46%가 성경 그대로의 신이 지난 1만년 동안의 어느 시점에 지금 형태의 인간을 창조했다고 믿는다는 것이다. 미국 학사학위 소지자들 중, 14%만이 인간은 신의 감독하에 진화했다고 믿고 있는 반면, 46%는 성경의 창조론을 믿는다 한다. 이처럼 비율로 본다면 창조론이 훨씬 높다. 이 내용만 보아도 지난 수백년 동안 진화론을 학교에서 가르쳤어도 수긍, 또는 전적으로 동의하지 않고 있는 상황임을 알 수 있다.

아직도 문제는 어느 때, 언제 창조했느냐는 것인데, 이는 성경 전체 정신에 대한 신앙고백으로, 믿음의 자세로 답할 수밖에 없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느니라” 그대로 믿는 믿음이 하나님의 창조를 이해하는 첫 걸음이다. 정확한 년대기적 때는 아무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그의 거룩하심과, 선하시고, 의롭고, 진실하신 성품으로 인간을 창조했다는 것에 창조의 의미가 있기 때문에 굳이 시간적 어느 때를 알려하거나, 말하고자 하면 이는 이미 성경에서 벗어난 세속학문의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대부분의 이단들이 그렇듯이 때를 강조하는데, 그것은 신학이 이미 인간학이 되었음을 말한다. 진화론자들은 그 때를 즐겨말하는 습관들이 있다. 수억년 전에 빅뱅이 있었고, 이때 원자나 분자가 발생, 그 후 규소, 탄소가 있었으며, 아메바도 그 시기 정도에 출현했다 한다. 수십만년 전에 생물체가 등장, 원숭이 같은 동물도 나타나게 되었고, 7만년 전에는 가장 인간모습을 한 유인원이 등장하게 되었는데, 사고하는 과정을 통해 오늘날의 인간모습으로 진화했다는 것 같은 것이다. 인류학자들은 이를 인지혁명(A cognitive revolution)이라 부르기도 한다. 여기서 보듯이 진화론자들이 말하는 우주탄생 시기나 인간출현의 시기 등은 모두 동상이몽자들의 주장으로서 증명될 수도 없고, 알 수도 없다. 그러니 누가 진화론을 100% 믿겠는가? 그런데, 그런 진화론에 이름 하나 덧붙여 좀 완화된 진화론을 말하려 한 것이 유신진화론이라 할 수 있다. 위의 리서치에서 말한 바와 같이 미국인 유신진화론자들이 32%나 돼, 진화론에서 유신진화론으로 현대인들의 관심이 옮겨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진화론보다 좀 완화된 내용이어서 페센티지가 높은데, 이 역시 성경의 창조론에 도전적 입장이어서 크리스찬들이 늘 우려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이럴 즈음, 목회자들이나 신학자들은 비록 세속 학문이지만 시대적 정신의 흐름에 대한 관심을 가져야 한다. 진화론자들이, 학교에서 교육하고 있음에도, 너무 터무니 없이 신학을 같다 붙여 유신진화론을 말하고 있는데도, 그것이 무엇인지, 왜 그런 학문의 이론들이 나왔는지 알지 못하고 있다. 오늘날의 신학은 어떤 면에서 신학이 인간에게 유익한 학문인지 그 목적과 가치를 분명히 알고 교인들이나 학생들에게 가르쳐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않는다. 이것이 문제다. 인간은 무식의 지배를 받고 살아서는 안 된다. 무식하면 고통스럽다.

우리가 믿는 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의 십자가에 이르기 위해서는 창조론 신앙을 기반으로 하여 하나님의 계시적 사건에 대한 믿음의 길을 가야 한다. 확실하게 말하자면, 창조론을 거역하는 진화론이나 유신진화론이 성경정신과 신앙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것이다. 이 과정을 넘어야 믿음의 길로 들어설 수 있는데, 넘으려는 지적, 영적상황 속에 유신진화론이 나타나 창조론에 의심을 갖게 하고 있다. 유신진화론이 발목을 잡는 것이다. 진화론이나 유신진화론이 그 너머에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의 모습, 구원의 능력을 못보게 하고 있는 것이다. 유신진화론이 그렇게 하고 있다. 그래서 크리스찬들은 유신진화론을 왜 제거해야 하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있게 된다.

유신진화론자들의 주장들이 안타깝기도 하지만, 시대가 어떻게 돌아가고 미래는 어떻게 펼쳐질 것인가에 대한 안목이 목회자들에게 전혀 없어 답답하게 보인다. 지금은 정보화 시대로서, 논문, 책, 과학적 리서치, 인터넷 등을 통해 진화론이나 유신진화론이 무엇이 문제이며, 선택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인지 아닌지 잘 설명을 해주고 있다. 신앙의 본질과 가치를 막고 있는 진화론이나 유신진화론을 넘어 어서 빨리 예수 그리스도의 인류에 대한 사랑의 십자가를 바라보며 나아가는 신앙을 가지도록 목회자들이 세계신학의 흐름에 대해서 공부를 좀 할 필요가 있다. 평신도들의 지적 수준이 그 어느 때보다 높은 시기이기에 이러한 연구의 자세는 더욱 필요한 것임을 느낀다.

펜은 칼보다 무섭다(The pen is mightier than sword).

#양기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