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을 선교적 시각으로 보기(4) 출애굽의 참된 의미

선교
출애굽기 4장 22~23절, 출애굽기 6장 6~7절

피에트로 파올레티(Pietro Paoletti)의 이집트 장자의 죽음(1838-1839)

성경: 출 4:22~23, 출 6:6~7 제목: 출애굽의 참된 의미

출애굽기를 생각할 때 가장 중요한 질문은 ‘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건져내시려는 것일까?’이다. 여러분은 이 질문에 대해 무엇이라고 답할 수 있겠나? 이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하는 것이 이 시간 우리가 생각해 보고자 하는 메시지의 핵심이다. 그래서 오늘의 주제는 ‘출애굽의 참된 의미가 무엇인가?’라는 것이다. 이 질문에 대하여 우리는 두 가지로 답할 수 있는데, 이것이 선교와 어떤 관련이 있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첫째,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구하려 하시는 이유는 당신의 백성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예배하게 하기 위함이었다는 것이다. 오늘 본문 출애굽기 4장 22~23절에서 ‘너는 바로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이스라엘은 내 아들 장자라 내가 네게 이르기를 내 아들을 보내주어 나를 섬기게 하라 하여도 네가 보내주기를 거절하니 내가 네 아들 네 장자를 죽이리라 하셨다 하라 하시니라’고 했는데, 이는 하나님이 모세를 통해 바로에게 전하라는 메시지의 내용인 것이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구하시려는 목적은 하나님을 섬기게 하기 위함이었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섬기다’는 말은 단순히 ‘봉사하다’는 의미가 아니라, ‘예배하다’라는 의미이다. 그래서 영어 성경에도 이를 ‘worship’으로 표현한 것을 본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구하신 목적은 단순히 그들의 종살이에서 구출하기 위함이 아니라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함이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하나님을 마땅히 예배해야 할 당신의 백성들임에도 불구하고 그간 오랫동안 애굽의 굴레에서 예배하지 못했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그들은 잘못된 주인에게 사로잡혀 노예 생활을 해 왔었기 때문에 이제부터라도 올바른 주인이신 하나님께로 돌아가서 자유롭게 그분을 예배하는 백성으로 삼고자 하시려는 것이다.

특히 오늘 본문을 보면 하나님은 그들을 가리켜 ‘내 아들, 내 장자’라는 표현을 하고 있다. 이는 하나님과 그들과의 관계를 부자 관계로 명시한 최초의 구절이라 할 수 있겠다.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장자의 위치와 신분이 얼마나 중요한지 여러분은 잘 알 것이다. 장자는 기업의 첫 열매라는 뜻이며, 하나님은 장자에게만 언약을 계승하셨던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들을 ‘내 아들, 내 장자’라고 호칭함으로 당신의 첫 열매로서 언약의 대상이 되게 하셨다. 그리고 이스라엘은 하나님 이외에 누구의 지배하에 둘 수 없기에 바로에게 내리는 마지막 재앙으로 그의 장자를 치신 것이다. 바로에게 장자의 재앙을 내리심으로써 하나님은 그분의 장자인 이스라엘을 놓아주셨다는 말이다. 특히 여기서 ‘하나님의 장자’와 ‘바로의 장자’라고 서로 대조한 것이 놀라운 표현이라 할 수 있겠다.

이런 면에서 이미 세상 가운데서 영적으로 출애굽 한 우리들은 영적인 이스라엘이며, 영적으로 하나님의 장자인 것이다. 그러므로 이 죄악의 세상으로부터 출애굽 한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목적은 하나님을 영원토록 예배하는 데 있다는 사실이다. 더 나아가서 동시에 이 땅에 아직도 하나님을 알지 못하여 예배하지 못하는 뭇 백성들과 종족들에게도 하나님을 예배하게 하기 위한 선교적 책임이 우리에게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여기서 출애굽기는 분명하게 우리에게 선교적 사명을 일깨워 주고 있는 것이다.

이스라엘을 출애굽 시킨 두 번째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하나님은 신실하신 언약의 하나님이심을 믿게 하시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두 번째 본문인 출애굽기 6장 6~7절은 다음과 같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기를 나는 여호와라 내가 애굽 사람의 무거운 짐 밑에서 너희를 빼내며 그들의 노역에서 너희를 건지며 편 팔과 여러 큰 심판들로써 너희를 속량하여 너희를 내 백성으로 삼고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리니 나는 애굽 사람의 무거운 짐 밑에서 너희를 빼낸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인 줄 너희가 알지라’ 아멘.

그렇다. 하나님은 언약의 하나님이시고 당신의 백성들을 속량하시고 그들과 언약을 맺으시는 분이시다. 그 언약의 내용은 본문 그대로 ‘너희를 내 백성으로 삼고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신다’는 것이다. 일찍이 하나님은 창세기에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언약을 맺으셨고 그들을 통하여 만민이 복을 얻게 될 것이라고 약속하셨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후손인 이스라엘이 사백 년이나 넘게 애굽의 무거운 굴레 하에서 고통을 겪어왔다. 그러므로 이 안타까운 고통의 신음소리를 들으신 하나님은 당신이 친히 하신 약속을 잊지 않으시고 이제 이스라엘에게 그 언약을 기억하여 실현하시려는 것이다. 그들을 애굽의 노예에서 구원하시려고 작정하셨단 말이다.

그래서 출애굽기 2장 24~25절에서 ‘하나님이 그들의 고통 소리를 들으시고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세운 그의 언약을 기억하사 하나님이 이스라엘 자손을 돌보셨고 하나님이 그들을 기억하셨더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여기서 하나님이 ‘기억하셨다’는 말을 두 번이나 연속하여 말씀하셨다. 이 말은 일정 기간 잊어버렸다가 갑자기 생각났다는 그런 의미가 아니라, 이미 행동으로 취할 것을 의도적으로 마음에 오래 두고 있었던 것을 이제 드러내어 실천에 옮긴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의 학정 하에서 부르짖고 고통을 당하고 있는 것을 보시고, 그들의 조상인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맺은 언약을 마음에 두셨다가 이제 드러내신 것이다. 이처럼 하나님은 언약 이행에 신실한 분임을 우리는 알아야 할 것이다.

이제 우리는 언약과 선교의 서로 깊은 관계를 생각해 볼 수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세우신 언약은 이후의 시내산에서의 모세의 언약과 이어서 다윗의 언약, 그리고 그의 후손인 예수 그리스도의 언약과 이어지면서 서로 깊은 연관 관계를 갖기 때문이다. 결국엔 이 그리스도의 언약 때문에 우리는 구속의 은혜를 받을 수 있는 근거가 되고, 더 나아가서 이 언약으로 말미암아 온 세상과 열방을 구원하는 토대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언약과 선교의 깊은 상관관계가 있는 것이다. 결국 우리가 선교적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이 언약이 있기 때문이라는 말이다.

오늘 말씀에서 우리는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출애굽 시킨 참된 이유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고, 이와 함께 선교적 사명과 관련하여 살펴보았다. 그 이유는 첫째로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함이었고, 둘째로는 하나님의 언약에 대한 신실한 이행 때문이었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아직도 이 땅에서 하나님을 예배하지 못하고 있는 뭇 백성들과 영혼들을 구원하고, 나아가서 하나님의 신실하신 언약의 백성들로 삼아야 할 선교적 책임이 우리에게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김영휘 목사/선교사

[말씀묵상기도]
1. 오늘도 살아계신 하나님을 예배하지 못하는 영혼과 민족들에게 기도하고 전도하게 하소서.
2. 하나님의 언약대로 지금도 주님께로 돌아와 복을 받아야 할 열방들을 향해 우리가 언약의 실천과 언약을 확산시키는 제사장들이 되게 하소서.

김영휘 목사/선교사
KWMA 운영이사
시니어선교한국 실행위원
서울남교회 은퇴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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