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민족, 한글, 한글성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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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재 박사(한신대학교 명예교수, 한국신학아카데미 자문위원)

10월에 우리 스스로에게 묻는 3가지 근본질문

김경재 박사

하늘이 높고 청명한 가을의 중간 10월에 중요한 두 가지 기념일이 있다. 하나는 10월 3일 개천절이요, 다른 하나는 10월 9일 한글날이다. 오늘 칼럼은 한민족과 한글과 한글성경을 마음에 두면서 그 셋의 상호 관련적 의미를 한국 문화신학적 관점에서 되새김하려는 것이다.

10월을 맞이하여 우리 스스로 자신에게 묻는 질문은 다음 3가지이다. (i) 한민족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 민족은 어디에서 왔으며, 동북아시아 대륙의 끝머리에 자리 잡고서 어떤 특징 때문에 중국의 대륙적 중화민족이나 러시아의 슬라브 민족에게 흡수당해 없어지지 않고 끈질긴 5천 년의 독특한 민족으로서 생명을 이어가는가? (ii) 조선왕조 500년의 기간 중 최고의 문화적 산물일 뿐만 아니라 5000년 역사 기간을 통틀어 보더라도 놀랍고 위대한 ‘한글창제’의 문화적 업적물이 지닌 가치와 의미를 우리가 충분히 인지하고 있는가? (iii) 성경의 한글번역은 기독교 경전으로서만이 아니라, 한민족과 한글의 발전에 어떤 의미를 가지며 영향을 끼칠 것인가?

한민족의 뿌리와 그 성격의 양면성

우리 한민족의 뿌리와 그 연원은 어디로부터 온 것인가? 우리 한민족이 5,000년의 유구한 역사를 생각 없이 쉽게 말하지만, 인구가 뜸했던 그 옛날에 한민족이 하늘에서 백두산 일대로 하강한 민족은 아닐 것이다. 우리 민족의 유래, 역사, 혈통, 체질, 언어, 풍속 등 문화인류학적 연구가 학문적으로 집대성되던 중요한 결실은 고려대학교의 민족문화연구소가 간행한 6권으로 된 『한국문화사대계』 제1권인 <민족 -국가사>(1964년 초판)가 결정적 공헌을 하였다.

위에서 언급한 연구내용을 요약소개는 짧은 지면에서 불가능하므로 관심 있는 독자들의 참고 자료로서 소개하는데 그친다. 다만 연구 결과 학계의 공통적인 견해는 이렇다. 5000-6000년 전쯤, 지금 중동지역 곧 메소포타미아 고대 도시국가로서 유명한 수메르와 바빌론 지역에 살던 일군의 무리가, 해 뜨는 동쪽을 향하여 서서히 이동해 왔고, 몽골 초원과 만주 지역 곧 현대 중국 동북삼성(東北三省)에 흩어져 살았다. 그중에서도 제3세기 경에 쓰인 중국 고서(古書) 삼국지(三國志)에 동이족(東夷族)이라고 불리운 독특한 일군의 무리들이 우리 한민족의 뿌리인 셈이다. 이들이 고조선, 고구려, 발해국의 주류세력이며 한민족 혈통 속에 흐르는 대륙성 기질 곧 호탕하고 용감하고 정의를 추구하는 민족성 기질의 뿌리가 된다.

고대 중국인이 남긴 고서(古書) 중에 위에서 언급한 『삼국지』와 다른 책으로서 『산해경(山海經)』이 있다. 그 고서 안에는 중국 본토민 밖 주위 여러 고대 민족과 국가들의 생활 습속, 종교 신화, 심성체질 등을 논하고 있는데, 그 『산해경』안에 동이족의 기질과 풍속을 말하는 중요한 두 가지 언급 내용을 함석헌은 그의 『뜻으로 보 한국 역사』(86-90쪽)에서 중요시하여 주목하고 있다. ‘다투지 않은 착함’(互讓否爭)과 허리엔 검을 차고 말 타고 달리면서도 활 쏘는 ‘용감, 날쌤과 자존심’이라는 성품 묘사에 주목하였다. 이처럼 한민족 초기 조상들의 품성 묘사에는 얼른 생각하면 모순 충돌되는 듯한 두 면이 있다. 착함과 날쌤, 어짊과 용맹, 평화 추구와 무기 사용 등 양면적 심성이다.

오늘날 2024년 현재, 남북한에 각각 국가를 형성하고 UN에 동시 가입한(1991.9.18.) 두 개의 국가가 엄존하는데, 서로를 인정하지 않고 으르렁거리면서, 민족이 공멸할 수도 있는 위험한 전쟁 장난을 애국심 미명 아래 계속하고 있다. 호양, 착함, 양보, 어짊, 평화 추구 정신은 사라지고 거칠고 사나운 성격이 한반도 남쪽 한국이나 북쪽 조선공화국에서 횡횡하고 있다. 이래도 되는 것인가? ‘홍익인간’을 내세우면서 개천절을 수백 번 지낸들 무슨 소용이 있는가? 우리가 누구인지 잠시 정신없이 달리는 길을 멈추고 다시 생각해야 하는 10월이 된 것이다.

헌법은 모든 법의 근거이자 뿌리이며 국가의 정체성을 밝힌다. 그런데, 대한민국의 헌법 제3조, 제4조, 제5조는 상호충돌하는 모순된 내용을 그대로 방치하고 있다. 헌법 제3조는 영토 규정인데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이다. 헌법 제4조는 “대한민국은 통일을 지향하며,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정책을 수립하고 이를 추진한다”이다. 헌법 제5조 제1항은 “대한민국은 국제평화의 유지에 노력하고, 침략적 전쟁은 부인한다”라고 명시되어 있다.

돌직구식으로 말하면, 제3조는 한반도 북쪽에 있는 조선공화국이라는 국가의 영토와 부속도서가 남쪽 한국이라는 나라의 영토라는 주장이다. 제4조 핵심은 자유민주주의를 추구하기 때문에 평화통일 정책을 수립ㆍ추진한다는 것이고, 제5조는 UN 헌장을 준수하고 침략전쟁을 부인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현실은 어떠한가? 헌법과 반대되는 현실이다. 이러한 자기모순적 헌법을 가지고서도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남쪽이나 북쪽이나 정치위정자들이 국민을 세뇌하고 통치하는 대로 끌려가며 살고 있는 현실이 우리의 민낯이다. 남과 북이 모두 UN에 가입되어 있고 세계 UN 회원국 200여 국가들이 두 개의 서로 다른 국가가 엄존한다는 사실을 모두 인정하고 있는데도, 당사자인 우리 한민족만 그 현실적 사실을 외면하려 든다. 역사 현실을 직시할 용기가 없는 민족은 미래가 없다.

한글창제는 5천 년 역사에서 최고의 기적이며 미래를 열고 나갈 힘

10월 9일은 한글날로 지정되어 있다. 훈민정음(訓民正音)인 한글은 1443년(세종 25년)에 완성되었는데, 실험을 거쳐 1946년 양력 10월 초순에 반포된 우리 한민족의 가장 큰 경사요 세계에 내놓을 자랑거리이다. 세종대왕은 조선왕조 개국 초기 왕권세습을 둘러싼 골육상쟁의 권력 싸움을 경험하였다. 그래서 전혀 다른 새로운 문화창조의 국가 비전에 뜻을 두게 되었다. 신숙주, 성삼문 등 쟁쟁한 소장학자들을 집현전에 모이게 하여 우리말 곧 백성이 날마다 사용하는 말행위(언어행위)에 걸맞는 우리글 한글을 창제한 것이다.

칼럼을 쓰고 있는 필자의 솔직한 견해를 피력한다면, 조선조 500년 역사는 성리학 등 일부 훌륭한 학문적 업적이 평가되지만, 대체로 정치ㆍ경제ㆍ문화ㆍ사회 측면에서 실패의 역사로 본다. 그 결과 나라를 일본에게 빼앗기고 식민 지배를 당하는 비극과 수모를 초래한 것이다. 그러나, 세종대왕 시절에 창제한 한글창제의 업적 하나만 가지고서라도 능히 500년 이씨조선왕조의 실패 역사를 보상하고도 남음이 있는 일대 거사라고 본다. 암울한 정치 현실을 보면 절망감이 앞서지만, 한글 창제의 민족성과 그 저력을 생각하면 희망을 갖고 한민족 미래의 발전과 성숙을 기대하게 된다.

대도시 큰 서점들, 서울을 예로 들면 누구든지 광화문에 있는 교보문고 서점이나 종각 앞 지하에 있는 영풍문고를 가서 보기 바란다. 거기 넓은 공간에 가득 찬 수만 권의 국내외 명저들이 한글로서 저작되었거나 번역되어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다. 한글과 우리말을 사용하지 못하게 했던 가장 잔인한 일본식민지 지배 36년 기간이 끝나고, 불과 80여 년 만에 서양유럽 문명사회가 종교개혁(1516년) 이후 800년 동안 서서히 이뤄나간 문화적 업적을 한민족은 해방 후 불과 80년 짧은 기간 안에 이루어 낸 것이다. 세계 젊은이들을 열광케 하는 K-팝 문화의 눈부신 발전도 알고 보면 모두가 한글이라는 문자의 힘이 바탕이 되어 이루어지는 것이다.

1940년 경남 안동군에서 발견된 『훈민정음해례본(解例本)』 안에 훈민정음 창제 정신, 철학, 목적, 음운론과 음성학 등을 자세하게 설명되고 있다. 훈민정음 곧 자랑스런 한글창제는 3가지 근본정신 아래서 이뤄진다. 첫째는 민족 ‘자주정신’이요, 둘째는 위민 ‘민본정신’이요, 셋째는 자연과 인간의 존재 방식을 연구하고 적응하는 ‘과학정신’이다.

당시 정치적 문화적 세계 최강국이었던 중국을 바로 옆에 두고 새로운 자기 민족의 문자를 창제 반포한다는 것은 요즘 생각하여도 상상하기도 어려운 용기와 창조적 기백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다. 훈민정음 서문에서 밝힌 대로, 말과 글의 다름 때문에 서민들이 받는 고통을 극복하기 위해서 한글을 창제한다고 선언했다. 진정한 위민 민본정치의 결정체이다. 그리고 당시 알고 있었던 그 시대의 모든 음운론, 발성 원리, 인간 입안의 구조 등을 세밀하게 연구하여 한글 창제가 이뤄졌다는 ‘과학정신’을 우리는 다시 주목해야 한다.

현재 24개 자음과 모음의 조합으로 이뤄지는 한글의 글씨체는 상하좌우, 대각원형 등 자유자재로 표기할 수 있고, 서체도 활자체로부터 춤추는 듯한 흘림체 등 자유로운 변화가 가능하다. 한글이 우리 민족의 힘이요 저력이며 모든 문화예술적 활동의 뿌리다. 더욱이 성경이 한글로 번역됨으로 물고기가 바닷물을 만난 듯 한민족에게 ‘신령과 진리’(pneuma and truth)의 매체(媒體)가 된 것이다. 한글은 하늘이 한민족에게 내려주신 최선의 선물이며, 문화민족으로서 최고의 문화적 창작물인 것이다. 우리는 모두 분열과 증오를 멈추고, 우리가 누구인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갈 것인지, 우리가 지닌 최대 장단점이 무엇인지 다시 성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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