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창국 교수(백석대 실천신학)가 최근 복음과 도시 홈페이지에 ‘사랑과 변화를 위한 지식’이라는 제목의 글을 게재했다.
최 교수는 “탁월한 교육학자 파커 팔머는 지식에 대한 여러 이미지들에 대한 고찰을 통하여 교육의 의미를 재조명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인식의 주체와 대상 그리고 그들 간의 관계에 대해 인식론이 제공해 주는 이미지들은 교육받는 개인의 사고방식뿐 아니라 행동 방식에도 형성적 영향을 끼친다”며 “그는 지식의 양태는 곧 삶의 양태가 되는 것으로 보았다. 그는 지식을 묘사하는 데 사용하는 핵심 단어들인 ‘사실(fact), 이론(theory), 객관적(objective), 실재(reality)를 관찰함으로써 지식의 인식론적이고 윤리적 이미지들을 밝혀 준다”고 했다.
이어 “팔머는 현대 지식의 실패는 윤리의 실패, 즉 적용의 실패가 아니라, 인식의 실패 즉, 앎 자체의 실패라고 지적한다”며 “팔머는 이러한 현대 지식의 이미지들은 하나님을 불신하고 배제 시켰던 지식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말한다. 즉,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인간은 본래 사랑의 형상대로 창조되었지만, 타락으로 말미암아 서로 지배하고 통제하는 왜곡된 형상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팔머는 현대 지식의 이미지들의 오류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객관주의로부터 진리로’ 나아가야 한다고 제안한다”며 “팔머가 지적하는 객관주의는 ‘소외된 인식 방식’을 의미한다. 객관주의는 인식 주체와 인식 대상을 예리하게 구분하는 데서 시작한다. 이러한 객관주의는 인식 대상은 인식 주체와 별개로 독립적으로 존재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객관주의는 교육 행위를 사실의 권위에만 의존하는 가르침만을 가치 있게 여긴다. 이러한 교육 행위는 객관화된 사실에만 가치를 부여하고 배우는 자는 단지 객관화된 사실만을 피동적으로 받아들이거나 모방한다”며 “이러한 객관주의는 엄밀한 의미에서 배우는 자들이 진리에 대한 내적이고 영적 감각의 인도를 받으며 능동적으로 배우는 법을 모르는 사람들로 형성시킨다”고 했다.
이어 “객관주의는 교육은 배우는 사람들에게 자기 삶의 형성적 영향력을 소외시킨다”며 “교육은 단지 사실에 대한 인식이 아니라 사람들의 자아관과 세계관에 형성적 영향력을 주어야 한다. 더욱이 기독교 교육은 단지 어떤 내용이나 사실을 인지하는 교육이 아니라 영적 형성에 목적이 있어야 한다. 교육 행위를 통하여 영적 시각에서 보다 더 깊고 넓은 자기 반응적 삶과 관계로 인도되어야 한다”고 했다.
또한 “교육은 인식의 주체와 인식의 대상을 분리시키는 객관적 실체들에 대한 메시지가 아니라 교육이 전달해야 할 메시지는 ‘진리’이어야 한다”며 “진리 안에서 무언가를 아는 것은 우리가 인식의 대상의 삶으로 들어가며, 그것에게도 우리 자신의 삶으로 들어오도록 허락하는 것이다. 때문에 진정한 앎은 인식 주체와 그 대상을 하나로 결합시킨다. 교육에서 전달해야 할 메시지인 진리에는 우리 모두가 추구하고 있는 그 본래 형상, 즉 우리가 그 안에서 창조되었던 공동체의 형상이 담겨져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진리를 향해 교육한다는 것은 사실이나 이론이나 객관적 실재를 논할 필요가 없다는 의미는 아니”라며 “교육이 객관적 실재를 파악하는 것만을 그 목적으로 삼을 수는 없다. 교육은 반드시 인식의 주체에게 인식 대상과 상호의존적인 관계를 맺도록 이끌어져야 한다. 이러한 교육관은 진정한 인식의 의미를 일깨운다”고 했다.
최 교수는 “팔머의 관점은 인간은 하나님, 다른 인간, 그리고 자연과 본질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라며 “팔머가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인간의 초월성과 관계성은 인간의 가장 깊은 존재의 터전임과 동시에 기초이다. 이 기초 위에 모든 가르침의 행위가 이루어지며 기독교적 가르침은 바로 이를 드러내 주고 경험하게 하는 행위이다. 이를 등한히 할 경우 인간은 교육으로 인하여 오히려 파멸을 경험한다”고 했다.
이어 “팔머는 교육의 영성 또는 초월성을 간과할 때 이성주의로 흐르게 됨을 지적한다”며 이성 중심의 기독교 교육은 교육의 터전이 되는 인식론에도 심각한 폐해를 끼친다. 팔머에 따르면, 이러한 교육은 진리를 추구함에 있어서 그 동기는 사랑이 아니라 철저하게 호기심과 통제(curiosity and control)로 대치되고, 이로 인해 이용이나 조작(manipulation)과 같은 가치들이 주된 목적이 되었다”고 했다.
더불어 “그는 이러한 교육 철학 안에서 지식이 인간의 변화의 수단이 아니라 이용과 착취, 이기적 목적 달성의 수단이 되었다고 지적한다”며 “그는 인간은 진리를 듣고 순종하기 위해서 지식을 갖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미리 결정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진리로 나아갈 수 있는 오류와 위험성이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는 교육은 앎을 추구하는데, 그 앎은 반드시 사랑의 행위를 수반해야 한다고 말한다”고 했다.
그는 “팔머의 인식론은 안다는 것은 사랑하는 것이다. 진리는 하나의 인격체로서 우리에게 다가와야 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진리를 알고자 하는 욕구만이 아니라 진리를 올바로 다가가는 모습까지도 포함되어야 한다”며 “진리는 결코 호기심을 충족시키는 대상이거나 정복의 대상이 아니라 만남과 대화, 그리고 순종의 인격체이다. 그러므로 기독교적 교육은 단지 어떤 것에 대한 객관성을 증명해 보이는 것으로 만족하는 것에서 벗어나서 감성과 공동체, 그리고 초월성까지 이끄는 교육이 되어야 한다”고 했다.
이어 “지식의 성경적 시각은 감정, 행동과 함께 인식적 의미의 지식을 포함하는 성스러운 것이다. 지식은 알려진 사람이나 물체와 함께 하려는 개인적 헌신이나 의도를 의미하는 물리적 차원을 포함한다”며 “예를 들면, 하나님을 안다는 의미는 하나님에 대한 사랑, 순종, 믿음의 반응을 구체화하는 것이다. 성경적 지식은 하나님의 선포에 상관적, 경험적, 반사적 앎의 방법과 관계된다. 팔머는 성경적 지식은 자유하게 하는 지식이며 사랑의 삶으로 이끄는 지식”이라고 했다.
최 교수는 “사랑의 관심과 관련된 것이 바로 이 지식이다. 신약에는 지식이나 진리가 반드시 사랑과 연관되어 있다”며 “따라서 교육은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 다른 사람들, 피조물들의 사랑으로 어떻게 인도할 수 있는가에 목적을 두어야 한다”고 했다.
또 “나아가 팔머는 오늘날의 가르침이 인간 자신의 변화보다는 지적 증식의 형태로 이루어지고 있다고 말한다”며 “가르침이 기술이나 과정에 제한되는 한 결코 가르침의 주체인 인간의 변화를 기대 할 수 없다. 가르침의 주체는 과목이나 지식이 아닌 인간 자체”라고 했다.
아울러 “우리는 가르침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가져야 한다. 가르침의 새로운 패러다임의 전환이 요구된다”며 “기술이나 과정으로서의 가르침이 아니라, 인간과 분리된 가르침이 아닌 인간의 변화가 동반된 가르침이어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