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적인 설교가 더욱 발전하기 위해서는 구조까지도 성경적이어야 한다. 우리는 가장 성경적인 구조, 가장 성경을 잘 드러내고 본문에 순종하는 구조, 그리고 하나님께서 성경을 통해 보여 주신 설교의 구조를 찾아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성경적으로 전하려는 수사적 노력을 계속해야 한다. 말씀을 맡은 사역자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며 이처럼 최선의 준비로 하나님께서 일하실 수 있게 해야 한다. 설교를 위한 수사적 노력은 하나님께서 설교자에게 맡겨 주신 책임이다. 설교자는 그 책임을 다하기까지 힘과 열정을 쏟아부어야 한다. 분명 본문으로부터 설교로 다리를 연결하는 구조화는 어려운 작업이다. 하지만 자신의 부족을 절감할지라도 성경적인 설교를 위한 노력을 소홀히 하지 말고 최선의 결과를 나타내야 한다.
윤용현 – 더욱 큰 확신으로
아우구스티누스(Aurelius Augustinus; 354~430)는 354년 북아프리카 타가스테에서 태어났다. 그는 젊은 시절에 방탕 생활을 하여 32세까지는 도덕적으로 방종했다. 청년 때부터 마니교에 빠져 예수를 안 믿었는데, 진설한 신자인 그의 어머니 모니카는 아들의 회개를 위하여 눈물을 흘리며 계속 기도했다. 그가 이탈리아에서 수사학 교사로 있을 때, 밀라노에서 성 암브로시우스의 설교를 듣고 마음에 감동하였고, 또 이집트의 수도사 성 안토니의 이야기를 듣고는 자기도 그렇게 살아야겠다고 마음이 회심하기 시작하다가, 어느 날 정원에서 “성경을 퍼 보아라.”라는 어린이들의 노랫소리에 성경을 퍼 읽으니 로마서 13장 13-14절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과 술취하지 말며 음란과 호색하지 말며 쟁투와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였다.
엄두섭 – 좁은 길로 간 사람들
넌 내가 두 번 만들었단다. 한 번은 말씀으로, 한 번은 십자가로. 그러니까 넌 두 번 태어난 셈이야. 내가 죽음으로 넌 생명을 얻었고, 내가 나무에 달려 저주받음으로 넌 하늘의 복을 받은 존귀한 내 자녀가 되었지. 이 세상을 창조하기 이전부터. 아니 ‘이전’이라는 시간이 존재하기도 전부터 나는 널 선택했어. 넌 네 삶의 열매가 금방 보이지 않을 때마다 위태롭다고 느낄 수 있겠지만, 너를 지탱하는 건 인간관계도, 성과도, 성공이라는 열매도 아니야. 세상을 창조한 순간부터 너의 삶을 인도하고 있는 나란다. 네가 서 있는 곳은 모래가 아니라 반석이야. 내게 열매는 네 성취가 아니라 네 모습 그 자체란다. 그러니 오늘은 짐을 내려놓고 깊게 잠들렴. 아직 세상은 새벽의 시간이야. 이 어둠이 더 짙어질지, 기다리던 해가 떠올라 아침을 맞을지 짐작하기 어려운 시간에 네가 빛을 새겨 주렴. 모든 것이 명료해지는 빛을. 그렇게 되면 세상의 눈물은 기쁨이 되고, 절망이 바뀌어 소망이 되며, 따뜻한 사랑이 고통을 감싸 주어서 세상에 감사와 행복이 더 불어날 거야. 내 나라의 샬롬이 너를 통해 퍼지기를 나는 꿈꾼단다.
이정식 – 하나님의 밤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