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2일 인천 송도컨벤시아에서 개막된 제4차 로잔대회의 공식 문서인 ‘서울선언문’이 전격 공개됐다. 선언문이 미리 공개된 것에 대해 주최 측은 지난 23일 “확정된 안이 아니”라고 했다. 그러나 ‘성경의 무오성’과 ‘동성애’를 죄로 규정하는 등의 내용이 들어있는 것으로 확인돼 그동안 논란이 됐던 문제들에 대해 로잔 측의 확고한 입장의 윤곽이 어느 정도 드러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서문을 시작으로 총 7개 항의 본문과 결론으로 구성된 ‘서울선언문’에서 먼저 눈에 띄는 부분이 본문 두 번째 항인 ‘성경’이다. 선언문은 “우리는 성경이 구약과 신약 66권으로 구성된 신적 영감과 하나님의 숨결이 담긴 기록물인 하나님의 말씀임을 확언한다”며 “성경은 하나님의 자기 계시이므로 교회의 성경은 하나님의 택한 백성을 모으고 다스리는 권위를 가지고 있으며 오류가 없다”고 했다.
이 문제는 로잔대회 초기부터 정체성과 관련해 논란이 됐던 사안으로 지난 3차 대회 이후 그리스도의 유일성과 성경의 권위에 대한 이견이 노출됐다. 이를 우려해 국내 복음주의 신학자들도 대회 직전에 모여 “‘성경의 무오성’, ‘예수 그리스도의 유일성’을 강조하는 내용의 선언이 있어야 한다”는 견해를 밝혔던 것이다. 이 내용이 선언문에 들어가는 건 복음주의 권 안에서 대립해 왔던 로잔의 ‘성경의 무오성’ 논란에 종지부를 찍겠다는 의지로 평가된다.
공개된 선언문은 ‘성 정체성에 대한 기독교적 이해’를 다룬 ‘인간’ 항에서 “우리는 섹슈얼리티(sexuality, 성적 지향성)에 대한 왜곡을 탄식한다. 우리는 개인이 우리의 창조성과 무관하게 젠더를 결정할 수 있다는 개념을 거부한다”고 했다. 아울러 “생물학적 성(sex)과 성별(gender)은 구별될 수 있지만, 분리할 수 없다. 남성성과 여성성은 인간 창조의 고유한 사실로서, 문화권에서 남성과 여성을 구분할 때 표현하는 사실”이라며 ”또한, 우리는 성별 유동성(gender fluidity, 상황과 경험에 따라 성 정체성이나 성별 표현이 유동적이라는 주장)이라는 개념도 거부한다”고 밝혔다.
이어 “우리는 동성 파트너십을 성경적으로 유효한 결혼으로 정의하려는 교회 내 모든 시도를 애통해 한다”며 “일부 기독교 교단과 지역 교회가 문화의 요구에 굴복하여 그러한 관계를 결혼으로 성별한다고 주장하는 것을 슬퍼한다”고 했다. 이는 미국연합감리교회와 미국장로교, 서구 유럽의 여러 교회가 동성애 목사 안수를 허용하는 등 동성애를 옹호하는 풍조가 기독교 내에 확산하고 있는 현실에 대한 지적과 함께 완곡한 거부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선언문에서 특히 주목되는 건 “동성애를 죄”라고 규정한 부분이다. ‘동성 성관계에 대한 기독교적 이해’ 부분에서 “동성 간의 성관계에 대한 성경의 모든 언급은, 하나님께서 그러한 행위를 성에 대한 자신의 의도를 위반하고 창조주의 선한 설계를 왜곡하는 것으로 간주하므로 그것이 죄악이라는 피할 수 없는 결론에 이르게 한다”고 했다. 이는 그간 로잔이 동성애 확산에 침묵해 왔다는 비판에 대해 성경에 입각해 분명한 선을 그은 것으로 평가되는 대목이다.
동성애 문제와 관련해 교회와 공동체 안에서의 차별을 지적하고 잘못을 인정한 것도 있다. “우리는 교회 안팎에서 많은 사람이 동성 간의 매력을 경험하며, 어떤 사람들에게는 이것이 유일하거나 지배적인 매력이라는 것을 인지한다” “우리는 동성에게 매력을 느끼는 기독교인들이 무지와 편견으로 인해 많은 지역 교회에서 도전에 직면하며, 그 결과 기독교 공동체 내에서 차별과 불의를 겪어왔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다”라고 한 부분이다.
이 부분은 성경이 죄로 규정한 동성애를 배격하되 동성애자를 혐오하거나 차별하는 행위에 대해 지적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하지만 받아들이기에 따라 차후에 논란이 될 소지가 없지 않아 보인다. 특히 동성애에 대한 기독교인들의 무지와 편견을 지적한 부분은 동성애를 반대하는 이들의 행동에 문제가 있다는 뜻으로 확대해 해석될 소지마저 있어 보인다. 최종 선언문에서는 한층 다듬어진 표현이 담겨야 할 것이다.
또 “교회 안팎에서 많은 사람이 동성 간의 매력을 경험하며, 어떤 사람들에게는 이것이 유일하거나 지배적인 매력이라는 것을 인지한다”고 한 부분도 검토가 필요하다. 문맥으로 볼 때 동성애자들을 이해하고 관용의 마음을 품어야 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겠으나 한편으론 배격 일변도의 반동성애 활동에 대한 일침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
통상적으로 ‘선언문’은 대회 폐막 직전에 발표되는 게 관례다. 대회 기간 중 다뤄진 의제를 한데 모아 종합적인 결론을 내 그 대회의 방향성과 성격과 성과를 보여주는데 목표를 두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개막 당일 로잔 홈페이지에 공개됐던 ‘서울선언문’이 지난 23일 갑자기 비공개 처리되는 일이 발생했다. 이에 대해 주최 측은 홈페이지에 ‘선언문’이 미리 공개된 것에 대해 “직원 실수”라고 해명하면서 대회 마지막 날 공개하겠다고 밝혔다.
대회 초반에 ‘선언문’이 노출됨으로써 이를 보도하는 과정에서 일부 혼선이 빚어진 건 사실이다. 하지만 대회 개막 첫날에 공개된 ‘선언문’이 최종본은 아니더라도 담길 내용의 윤곽이 드러남으로써 인천 로잔대회의 방향성이 어디에 있는지를 보여줬다. 골격이 크게 달라질 일은 없을 것이다.
복음주의 권 안에서 논란이 됐던 ‘성경의 무오성’과 ‘동성애’를 죄로 규정한 내용이 ‘서울선언문’에 담긴다면 이번 로잔대회에 쏠렸던 일각의 걱정이 기우였음을 증명하는 기회가 될 것이다. 다만 WCC의 ‘통전적’ 선교와 빼닮아 비판을 받았던 ‘총체적’ 선교와 국회가 추진 중인 ‘포괄적 차별금지법’에 대한 언급은 반드시 보완이 필요한 점이다. 대회 기간 중 이런 문제에 대해 토의가 충분히 이뤄져 제4차 로잔대회를 계기로 그간의 오해를 불식하고 복음 확장을 위해 새롭게 도약하는 전기가 마련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