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은 우리가 잘 아는 대로 고대 그리스에서 시작되었다. 사실, 철학이 뭐냐를 말 하고자 하면, 어떤 형태든지 인간들이 하는 사고(생각)를 말한다. 생각을 논리적으로 풀어 학문화 한 것이 철학이다. 사람의 생각하는 내용이 인간존재나 삶에 유익을 제공하는데 가치가 있으면 학문화 될 수 있고, 뿐만 아니라 그런 수준의 생각을 하는 사람을 철학자라 부른다. 반면, 그저 보통 일반적인 형태의 삶에 대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철학자라 부르지 않는다.
이러한 깊이 있고 가치있는 사고를 한 사람들은 고대 그리스인들이었다. 주전 600년 경의 헤라크레이투스(Heraclitus), 탈레스(Thales), 피타고라스(Pythagoras)같은 인물들이다. 이들은 자연의 운동의 법칙, 수학적 원리 등을 발견한 철학자들이었다.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지 못했던 것을 깊이 있게 연구하여 인류 문명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한 철학자들이었다.
철학자 하면, 주전 4세기 역시 그리스인들이었던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에피큐러스, 또는 크세노폰 등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이들은 그들의 선대 철학자들의 관심이었던 자연과학분야 보다 인간의 선이나 행복에 관한 내용을 주로 다루었다. 더 깊게는 인간은 무엇인가, 어떻게 사는 것이 의미있는 일일까에 대해 논한 인물들이었다. 주로 인간 실체나, 도덕을 그들 학문의 주제로 삼았다. 이들은 인간이 인간답게, 그리고 행복하게 사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
1세기에는 로마가 철학의 중심지가 되었다. 시세로(일명 키케로), 신학쪽의 어거스틴 같은 인물들이다. 당시 로마철학의 특징은 그리스 철학자들의 자연과학, 인간존재, 또는 도덕적 내용보다 힘, 물리적 힘을 바탕으로 했다는 것이다. 정치적, 군사적인 힘을 말하며, 나아가 어거스틴은 이 힘의 논리를 신학에 적용하여 하나님의 “절대성”을 강조하는 신학을 하기도 했다.
16세기 즈음에는 철학이 유럽 북부 영국으로 건너갔다. 대표적인 인물이 존 로크(John Locke), 토마스 홉스(Thomas Hobbs)같은 학자들이다. 이들은 당시 인문주의의 활성화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섭리나 계시론 보다, 인간(문)주의(Humanism)로서 인간의 경험이나 합리성을 강조하는 철학을 구사하였다. 인간의 정신을 깨우고, 인간교양을 함양하는 계몽주의(Enlightenment)와 더불어 인문주의의 한 가지인 자유주의(Liberalism)를 주장하였다. 인간의 내면성보다 외향의 현실적 삶의 가치를 중요시한 철학을 한 것이다. 품위 있게 살자는 주의다.
그런 철학 사조가 이번에는 독일로 넘어 오게 되었다. 사실, 그때까지 독일은 영국의 명예혁명(1688)으로 인한 민주주의의 실현이나, 프랑스의 시민혁명(1789-1799)으로 인한 절대군주의 폐해 타파로 인한 시민들의 권리향상과 같은 특별한 세계사적 공헌이 없었다. 대신, 독일은 학문적 혁명으로 인간세계에 공헌했다. 대표적인 것은 임마누엘 칸트와 그의 이성주의 철학이다.
18세기 칸트의 이성주의는 그때까지의 철학적 주제나 방법론에서 색다른 차원이었다. 다른 사조처럼 신학적 관점의 연구에서 떠나 자연주의 철학을 한 것이 특징이다. 인간, 우주만물은 자연적으로 존재하게 되었다는 자연주의 철학이다. 나아가 자연주의를 설명하는 이성을 그의 철학 실체의 도구로 삼았다. 이성으로 철학을 하는 방법론을 제시한 것으로서 그 이성은 모든 철학이나 학문 연구 방법론의 실체였다. 그의 유명한 “순수이성비판”(비판이란 비난이 아닌 연구, 또는 평가방법론을 뜻한다)도 이러한 이성을 바탕으로 한 논리를 중심으로 하여 나온 것이다.
헤겔도 그때까지 해 오던 철학 연구 내용이나 방법론을 달리했다. 그 역시 이성중심의 논리를 중시했는데, 우리가 잘 아는 3단 논법이나, 변증법(Dialectics)도 그로부터 나왔다. 역사를 인간 경험, 도덕, 인식론 차원에서 보다, 정신에서 이해하려 했다. 정신을 형성하는 실체, 그리고 역사운행의 실체는 계시보다 이성임을 말한 것이다(관심이 가는 부분중의 하나는, 전 세계적으로 박사학위 논문 주제나 인용에 있어서 칸트가 1위, 헤겔이 2위 순으로 나타나 있다는 것이다).
그 밖에도, 18세기 후반에서 19세기에 이르기까지 무수한 독일 철학자들이 맹활약했다. 19-20세기의 실존주의 철학의 대가 하이데거, 싸르트르, 그리고 신학계에서 불트만 같은 인물들도 같은 역할을 했다. 평화주의를 외치다 순교한 본 회퍼도 있고, 정치신학자로 유명한 몰트만도 배출했다. 20세기 들어 철학이 프랑스로 넘어가 프랑스인들이 다시 주도하는 시대가 되었지만, 그때 까지만 해도 독일철학의 실존주의나 인식론 등의 영향력은 세계적으로 컸고, 결국, 그들의 철학적, 그리고 신학적 업적들이 인간 사고나 정신사를 이끌어 왔던 것은 틀림없다 할 수 있다.
자유주의의 출현으로 말미암아 독일신학도 정통주의에서 자유주의 신학으로 나뉘어지게 되었다. 슐라이에르마허(Schleiermacher)가 자유주의 신학자의 대표적인 첫 주자로 나타났으며, 동시에 하르낙(Adolf Von Harnack), 리츨(Albrecht Ritschl)같은 학자들도 선두주자로 활약했다. 이들은 성서의 구원론적 관점에서 보다, 헤겔처럼 철학적 관점에서 인간을 분석, 이해하려 한 신학자들이다.
인간심리, 정신, 윤리, 사고방식 차원에서 성경을 이해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자유주의 신학적 성향에 반대한 바르트는 정통주의 신학 회복을 위해 신정통주의(Neo-Orthodox) 신학을 내어 놓기도 했다.
독일은 각성 차원의 계몽주의를 넘어 가장 인간정신 면모를 체계적으로 갖추게 한 학문적 공헌, 즉, 인간정신 의식을 높이고, 무슨 일이든지 바른 사고 속에서 존재를 증명하는 이성주의 철학으로 인간에 대한 새로운 인식의 세계를 창조한 공로가 있다. 또한, 신학계에서 현대신학의 장르를 창시한 역할을 하기도 했지만, 한편 이와는 반대로 신학계에서는 이러한 이성주의적 해석으로 하나님의 섭리나 역사운행의 능력을 격하시킨 관점도 있음을 알아야 할 것이다.
21세기는 프랑스계가 철학을 주도하고 있다. 이들은 칸트나 헤겔이 세웠던 이성주의 마저도 부정하는 해체주의 철학을 했다. 이제는 그 양상을 넘어, 과학이 인간을 지배하는 시대를 인간 스스로가 만들고 있다. 유발 하라리(Yuval Harari)같은 경우, 과학연구는 인간이 신이 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주장하는 시기에까지 와 있다. 그가 “Homo Deus”를 썼는데, 말 그대로 “인간 신”이라는 뜻이다. 앞으로 인간은 어디까지 달려 갈지 자못 궁금하다. 인간이 신으로 진화할 수 있다는 생각은 환상일까 망상일까?
#양기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