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안창호 인권위원장이 먼저 해야 할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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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인권위원회 제10대 위원장에 안창호 전 헌법재판소 재판관이 취임했다. 지난 6일 취임한 안 위원장은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 국회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포괄적 차별금지법’ 및 동성애 반대 입장을 분명히 밝혀 그동안 지나치게 성적지향에 편중됐다는 비판을 받아온 국가인권위 활동에 균형추를 맞출 인물로 기대된다.

안 위원장은 국회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차별금지법’ 제정에 반대하는 견해를 분명히 밝힘으로써 야당 의원들의 집중 공격을 받았다. 그는 “소수자 인권을 보호하되 다수자 인권이 침해되지 않아야 한다”며 ‘차별금지법’이 공산주의 혁명에 이용될 우려가 있고, 에이즈 등 질병 확산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는 점을 반대하는 이유로 들었다.

야당 의원들이 유엔의 권고 사례를 들어 ‘차별금지법’이 제정되지 않으면 인권 후진국이 된다며 쓴소리를 내자 안 위원장은 “인권을 다루는 최고 규범은 헌법”이라며 “(유엔의) 권고에 대해선 민주적 논의를 거쳐 합리적 결론을 내야 하며, 외국의 권고를 무조건 따라야 하는 건 아니”라는 소신을 밝혔다. 그의 발언 요지는 유엔의 권고를 무시하자는 게 아니라 심사숙고가 필요하며, 헌법에 적용될 수 있는 합당한 근거를 찾아야 한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안 위원장의 기독교 신앙관도 도마 위에 올랐다. 그가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신 ‘창조론’을 믿는다“는 입장을 밝히자 야당 의원들의 질타가 벌떼처럼 쏟아졌다. 더불어민주당 김성회 의원은 안 위원장을 향해 “무자격 보수 기독교 텔레반주의자”라고 했고, 개혁신당의 천하람 의원은 “특정 종교에 대한 강한 신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국가인권위원장을 맡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라고 했다.

그런데 야당 의원들의 이런 질타성 발언은 아무리 안 위원장이 밝힌 견해가 성에 차지 않는다 하더라도 적절하다 할 수 없다. 국가인권위원장의 자격을 따지는 청문회 자리에서 기독교 신앙이 문제가 되는 나라는 공산 독재국가나 이슬람 국가밖에 없을 것이다. 기독교 신앙이 투철하다는 이유로 국회의원이 후보자에게 폄하성 발언을 쏟아내는 건 아무리 면책특권이 있는 국회의원이라도 인격 모독에 해당한다.

이날 청문회에서 김 의원이 언급한 ‘탈레반’은 어린이와 여성들까지 무참하게 살해하기로 유명한 잔혹한 이슬람 테러집단이다. 그가 안 위원장을 이런 테러집단에 비유한 건 안 위원장이 기독교 근본주의자라는 뜻이고 기독교 근본주의나 이슬람 근본주의나 차이가 없다는 의미로 귀결된다.

그런데 안 위원장이 기독교인으로서 ‘창조론’을 믿는 신앙을 가졌다고 해서 이슬람 테러리스트들에 비교당할 하등에 이유가 없다. 그의 말대로라면 하나님의 창조신앙을 인정하는 기독교인은 모두 ‘텔레반’과 같은 잔혹 테러집단이란 이란 뜻인데 단순히 ‘언어 유희’로 넘길 수준이 아닌 기독교 공동체 전체에 대한 심각한 폄훼 수준이다.

이런 발언은 한 김 의원의 과거 이력이 화제다. 그는 미국 장로교(PCUSA) 소속의 샌프란시스코 신학대학에서 목회학 석사(M.Div) 학위를 받고 한때 교회 전도사로 활동한 경력이 있다. 그의 정치 이력이 어떠하든 신학교를 나와 전도사 경력을 가진 이가 독실한 기독교인으로 헌법재판소 재판관을 지낸 원로를 어떻게 ‘탈레반’에 비유할 수 있는지 정상적인 사고로는 도무지 이해가 안 된다.

“특정 종교에 대한 신념이 강한 이가 국가인권위원장을 맡는 게 매우 위험하다”고 한 천하람 의원의 발언도 문제다. 이는 성경을 성경 그대로 믿는 사람은 공직자로서 위험하고 적절치 않다는 뜻으로 연결된다. 기독교 신앙을 가진 사람이 공직자에 임명되는 게 적절치 않다는 국회의원의 발언은 신앙의 자유와 가치를 명시한 헌법에 정면으로 위배된다고 볼 수 있다.

야당 의원들의 이런 질타는 안 위원장이 인권위가 그동안 해온 편향적 인권 활동에 실질적인 변화를 꾀할 인물이란 걸 간파했기 때문일 것이다. 간혹 청문회장에 나온 후보자 중에는 쏟아지는 의원들의 공격을 우선 피하고 보자는 식으로 적당히 돌려 말하거나 평소 소신과는 다른 견해를 밝히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그런데 안 위원장은 청문회장에서 자신의 소신을 조금도 굽히지 않아 이런 이들과 확실히 대비됐다.

안 위원장이 야당의 쏟아지는 비판에도 ‘차별금지법’ 제정에 반대한다고 꿋꿋이 소신을 밝힌 것이 동성애를 옹호하는 진보진영의 입장에선 받아들이기 매우 힘든 불편한 상황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제 국가인권위가 자기들 손아귀에서 벗어났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지난 21대 국회에서 발의된 ‘차별금지법’과 ‘평등법’은 발의로 그쳤으나 교계는 22대 국회에서 절대 다수 의석을 차지한 민주당과 야당이 언제든 힘으로 밀어붙일 가능성에 대비하고 있다. 이런 시점에서 차별금지법에 반대한다고 나선 인권위원장의 등장은 교계로선 천군만마를 얻은 격이다.

국가인권위는 지난 김대중 정부 시절인 지난 2001년 11월 25일 설립된 이후 2006년 ‘차별금지법’ 제정 권고에 이어 ‘평등법’ 제정 촉구 국가인권위원장 성명을 발표하는 등 수차례에 걸쳐 국회에 ‘차별금지법’ 제정 압력을 행사해 왔다. 그러나 이런 인권위의 활동이 성 소수자들의 인권에 편중된 나머지 대다수 국민의 역차별을 조장하고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비판에 직면한 것이 사실이다.

교계와 대다수 국민이 안창호 신임 국가인권위장에게 기대하는 것도 이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인권의 편향성을 바로잡아 국민을 위한 보편적 인권, 즉 치우침이 없는 인권의 중심을 잡는 게 안 위원장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