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흑 속에서 멸망하고 있는 이들에게 진리와 복음을 전하는 것은 이제 우리들 모두가 함께 감당해야 할 사명이다. 물론 하나님께서 그를 사랑하시사 다시 일으켜 주시겠지만, 우리들 가운데서 많은 선교사들이 구름처럼 일어나기 를 바란다. 우리가 아직 젊을 때, 건강할 때, 우리의 가장 중요한 부분을 하나님께 뜨겁게 바쳐야한다. 그렇지 못하면 우리 인생에서 마지막 잎사귀 하나가 바람에 떨고 있을 때 남모르는 후회와 슬픔이 가슴을 적시게 될 것이다. 사실 하루하루 생활이 너무 바쁘다. 특히 믿는 사람으로서 더욱이 한국인의 피가 흐르는 우리 교포들로서는 게으를 리 없다. 모두 바쁘다. 그런데 잠깐 생각해 본다. 덜 중요하고 더 중요한 것을 구별하고 보다 귀한 것 때문에 바빠야 하지 않을까 하고 말이다. 언젠가는 분명히 ‘그날’이 오는 데 가장 귀하고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밝히 드러날 것이다. 성경은 이렇게 말한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 6:33).
림권택 – 못된 한 사람의 이야기
주님은 극심한 십자가 형극 중에도 아버지 되신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주님이 어떻게 십자가의 고난을 승리로 이끌었을까요? 참을성이 많아서요? 아닙니다. 인내심이 강해서요? 아닙니다. 우리와 본질적으로 다른 분이라서요? 아닙니다. 주님은 그 극한의 한계상황을 “아버지여!”라고 부름으로써 이긴 것입니다. 우리도 고난당할 때 “아버지!”라고 부르면 그때 하나님께서 주시는 위로와 능력,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아버지!”라고 읊조리면 천국이 보이고, 하나님이 우리를 향해 미소 짓고 계심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전적으로 아버지의 뜻에 복종하기만 하면 타인을 용서하는 능력도 받고, 자신의 마음도 치유될 수 있을 것입니다. 주님의 모든 삶은 인간구원에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주님은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셨고, 사셨으며 죽으셨던 것입니다. 주님의 모든 일거수일투족이 인간구원과 연결되어 있음을 알 때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주님의 탄생도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함입니다.
정학진 – 내가 목마르다
거듭나는 과정은 이렇게 서서히 이루어지는지도 모른다. 그리스도를 믿는 것은 가장 인간스럽게 사는 것이다. 나는 지금 한 인간으로 돌아가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다. 가난한 사람의 행복은 이렇게 욕심 없는 기도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새벽기도가 끝나면 모두 돌아가고 아침 햇살이 창문으로 들어와 비출 때, 교회 안을 살펴보면 군데군데 마룻바닥에 눈물 자국이 얼룩져 있고 그 눈물은 모두가 얼어 있었다. 권정생의 많은 작품에서 발견되는 인생은 이렇게 정의할 수 있겠다. 그것은 “자신의 길을 뚜벅뚜벅 걸어가면서 주어진 본분에 최선을 다하고 그 가운데 선택의 갈림길에 섰을 때 스스로 결단하는 것”이다. 권정생은 건강의 한계로 인해 선택할 수 있는 폭이 넓은 삶을 살 수 없었다. 하지만 자유인으로의 삶을 선택하고 자신의 삶에 충실하였다.
홍인표 – 정생, 어그러진 삶의 산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