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딥페이크’ 성범죄에 노출된 청소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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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의회가 ‘딥페이크’ 불법 합성물 확산에 대응해 교원과 학생을 대상으로 실태조사 및 예방·대응 교육 의무화를 추진하기로 했다. 최근 대학은 물론이고 초중고교에서도 다른 사람의 얼굴을 음란물에 합성하는 ‘딥페이크 성범죄’ 피해가 무차별적으로 번지면서 사회에 커다란 충격을 안기자 ‘디지털 성범죄 예방 및 교육에 관한 조례’를 개정하는 등 법적 대응책 마련에 나선 것이다.

지난 1일 이 조례 개정안을 발의한 국민의힘 소속 이경숙 서울시의원은 “이제 규제만으로 ‘딥페이크’ 성범죄를 막기가 어렵게 된 게 현실”이라며 “실태 파악과 관련 교육 의무화가 필수적”임을 발의 취지를 통해 밝혔다.

‘딥페이크’란 인공 지능(AI) 기술을 이용해 사진이나 영상을 조작하는 행위를 말한다. 최근 생성형 AI 챗GPT 등의 새로운 기술과 기능이 개발되면서 예전에는 그래픽으로 바꿔야 했던 작업도 글자만 쓰면 자동적으로 그림이 그려지는 등 우리 생활을 편리하게 해주는 유익한 기능으로 평가받고 있다.

문제는 이 ‘딥페이크’ 기술이 디지털 성범죄에 악용되고 있는 점이다. 더욱 심각한 건 지난 3년간 경찰에서 수사한 ‘딥페이크’ 성범죄 사건 피해자 10명 중 6명이 미성년자로 밝혀진 데서 보듯이 주로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성범죄의 도구로 활용되는 데 있다.

경찰청 자료에 따르면 2021∼2023년 경찰에 신고된 불법 영상 합성물 범죄 사건 피해자 총 527명 중 10대가 315명으로 60%를 차지했다. 피해 미성년자는 2021년 53명, 2022년 81명에서 2023년 181명으로 2년 만에 무려 3.4배로 늘었다. 특히 주목할 건 이 ‘딥페이크’ 범죄의 피해자뿐 아니라 가해자의 미성년자 비중 또한 눈에 띄게 늘고 있다는 점이다.

‘딥페이크’ 성범죄가 사회적으로 이슈화된 건 텔레그램 등을 통한 피해 사례가 드러나면서부터다. 그런데 자료를 보면 실제 이 문제가 공론화되기 훨씬 전부터 청소년들이 이미 ‘딥페이크’ 성범죄 위험에 노출돼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정부가 좀 더 일찍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선제적 대응에 나섰더라면 지금처럼 피해자가 눈덩이처럼 늘어나지는 않았을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달 27일 국무회의에서 ‘딥페이크 성범죄’에 강력한 경고 메시지를 냈다. 여성가족부도 ‘딥페이크’ 불법 촬영물을 비롯한 디지털 성범죄에 대응해 폭력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한 예산으로 50억7500만 원을 책정하는 등 후속 대책 마련에 나선 모습이다. 그런데 대통령의 경고나 조치가 ‘딥페이크’ 성범죄가 청소년들 사이에서 확산하기 전에 나왔어야 한다는 지적이 있다. SNS 프로필 사진도 무서워 못 쓰겠다는 공포가 학교를 넘어 전국으로 퍼진 후에 나온 정부의 대책이 효과를 낼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별 문제의식 없이 손을 놓고 있기는 국회도 마찬가지였다. 22대 국회 들어 거대 야당이 발의해 통과시킨 각종 법안은 민생과는 거리가 먼 정치적 기 싸움 성격이 짙다. 여야가 국민의 삶을 도외시한다는 비난이 폭주하자 뒤늦게 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딥페이크’ 범죄에 강력한 처벌 규정을 주문하면서 성범죄에 미흡한 현행법을 바꾸기로 한 것이 그나마 국회가 내놓은 대책의 전부라 할 수 있다.

‘딥페이크’ 성범죄가 이 지경으로 확산하기까지 느슨한 처벌 규정도 문제지만 범죄 발생 빈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경찰의 수사 역량에도 문제가 있다. 경찰청 통계를 보면 최근 3년간 허위영상물 범죄 검거율은 2021년 47.4%, 2022년 46.9%, 2023년 51.7%로 절반 수준에 머물러있다. 해외 서버인 텔레그램을 직접 수사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하지만 경찰이 손을 놓고 있는 사이에 억울한 피해자만 는 것이다.

성 착취물 유포의 온상으로 지목된 보안 메신저 텔레그램 법인에 대해 경찰이 지난 2일 처음 내사에 들어갔다. 내사란 입건 전에 범죄 관련 내용을 파악하는 단계로 본 수사와는 거리가 있다. 온갖 성범죄의 ‘무법지대’나 다름없었던 텔레그램에 대한 내사만으로 범죄를 차단하긴 어렵겠지만 범죄 심리를 위축시키는 효과는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전문가들은 얼굴이 알려진 가수나 연예인 등 많은 청소년이 자신의 얼굴이 도용된 음란 합성물이 성범죄에 사용된 사실을 인지하고 큰 충격에 빠지게 되는 것에 우려하고 있다. 청소년 시기에 입은 상처가 성인이 되어서도 평생 트라우마로 따라다니며 우울증에 빠지거나 심하면 자살 충동을 일으킬 수 있다며 피해자의 상담 심리 치료에 관심을 쏟아야 한다고 조언한다.

우리 자녀들이 이런 고통을 당하기까지 기성세대는 무엇을 했나 하는 자괴감이 저절로 들 게 만드는 현실이다. 그 책임은 문제를 방기한 정부와 국회에 있을 것이나 교육계, 종교계 등 청소년들이 건강한 정신과 육체로 성장하도록 돕고 지원을 아끼지 않아야 할 사회 전반의 책임도 가볍지 않다.

정부와 국회는 이제라도 ‘딥페이크’ 성범죄에 대한 예방책과 강력한 처벌을 뒷받침할 법·제도 마련에 나서야 할 것이다. 범죄자는 날아다니는 데 기는 수준의 경찰 수사력으론 범죄를 막을 수 없다. 범죄의 온상이 해외 서버라서 못 막는다는 말에 어느 국민이 수긍하겠나.

이런 때에 서울시의회가 나서서 ‘디지털 성범죄 예방 및 교육 의무화’를 추진하는 건 시의적절하다. 학교에서부터 범죄 예방 교육을 강화하는 것이 범죄 요인을 차단하는 데 효과적일 것이다. 다만 학교 교육에 모든 짐을 지우기에는 지금의 상황이 너무나 위태롭다. 사회의 보호망 밖에서 홀로 고통받았던 피해자들의 정신·육체적 짐을 종교계와 의료계가 분담 또는 협력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국가와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가 이 문제에 관심을 기울인다면 피해자의 고통은 덜어지고, 극악한 범죄가 도사릴 빈틈이 메워지는 효과로 나타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