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체의 시각에서 본 “유대인 문제”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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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균진 소장(연세대학교 명예교수, 한국신학아카데미 원장)
한국신학아카데미 원장인 김균진 박사 ©한국신학아카데미

유럽에서 “유대인 문제”는 오랜 역사적 뿌리를 가지고 있다. 그 뿌리는 로마제국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이방 민족”에 의해 지배당하는 것을 최대의 치욕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그들은 끝까지 로마 제국의 지배를 거부했다. 예수님 당시의 “젤롯 당원들”(열심당원들)은 그 대표적 인물이었다. 그러므로 유대인들은 로마 제국의 지배자들에게 미움과 증오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중 주후 135년 유대인들의 제2차 반 로마 제국 반란이 실패로 끝나면서, 제국의 하드리아누스 황제는 모든 유대인들을 그들의 땅(오늘의 팔레스타인)에서 유럽 각지로 추방하고, 재입국을 엄격히 금지하였다. 그 때부터 시작하여 1948년 5월 팔레스타 땅으로 돌아온 유대인들이 이스라엘 정부를 선언할 때까지, 그들은 세계 각지에 흩어져 “나라가 없는 민족”, “자기 땅이 없는 민족”으로 살았고, 세계 도처에서 미움과 질투와 학대와 추방과 학살을 당하였다. 우리 모두 잘 아는 바와 같이, 히틀러 나치 치하에서는 600만 명이나 되는 유대인들이 독가스실에서 죽임을 당하였다.

이 같은 역사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독일 정치인들이 과거의 범죄에 대해 이스라엘에게 거듭 잘못했다고 용서를 빌지만, 독일 극우파는 “반유대인주의”(Antisemitismus)를 계속 주장하고 있다. 필자가 중학교 국어 교과서에서 읽었던 것으로 기억하는 “스크루지 이야기”도 유대인을 “돈 밖에 모르는” “인간 말종”으로 소개하고 있다.

지금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에서 일어나고 있는 하마스에 대한 이스라엘의 공격은, 사실상 하마스의 테러로 인해 시작되었다. 1000명 이상의 민간인을 죽이고, 200명 이상의 민간인들, 심지어 임신부와 어린 유아들까지 인질로 삼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 각국의 많은 사람들은 전쟁에 대한 모든 책임이 이스라엘에게 있는 것처럼 외치며, 일방적으로 이스라엘에게 전쟁 중단을 요구하고 있다. 이스라엘이 전쟁을 중단하는 순간, 하마스는 또다시 이스라엘을 공격할 준비를 시작할 것이라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그들은 시위할 때마다 이렇게 외치면서 이스라엘 민족을 도살장으로 끌고 가야 할 “희생양”으로 몰아가고 있다. 이 같은 현상의 배후에는 세계 많은 민족들 사이에 지금도 숨어 있는 “반유대인주의”, 곧 “유대인 문제”가 숨어 있다고 생각된다.

이 같은 “유대인 문제”는 세계 선진국 대열에 진입했다고 하는 우리 한국인들, 특히 그리스도인들도 알고 있어야 할 문제라고 생각된다. 기독교는 유대교에서 파생된 종교로, 유대교의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유대인의 문제”에 대해 자신의 입장을 가져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또 “유대인 문제”는 성격상 세계 각지에 있는 “한국인들의 문제”와 동일하기 때문이다. 일본의 “조센징 문제”는 한국판 “유대인 문제”라고 말할 수 있다.

마르크스는 그의 문헌 “유대인 문제에 관해”(Zur Judenfrage)에서, “유대인 문제”에 대한 책임이 유대인들 자신의 종교적, 민족적 폐쇄주의와 경제주의에 있다고 유대인들을 비판한다. 그러나 나의 생각에 의하면, 유대인 문제의 근본 원인은 세계 각 민족의 민족주의적 배타성과 폐쇄성, 권력자들의 권력욕, 유대인들의 지적, 경제적 우수성에 대한 질투, 근본적으로 인간의 이기주의에 있다고 생각된다.

“무신론자”, “반기독자”(Antichrist)로 알려진 니체는 “유대인 문제”에 관해 놀라운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의 이야기를 소개함으로써 “유대인 문제”에 대한 우리 자신의 입장을 확실히 하는 것은 물론, “조센징 문제”를 위시한 세계 각지의 “인종차별주의” 문제에 대한 우리의 생각을 정돈하는 데 기여하고 싶다. 아래 내용은 니체의 “인간적인, 아주 인간적인”(Menschliches Allzu Menschliches)이란 제목의 문헌 제8장에 기록된 것을 필자가 첨삭한 것이다.

이른바 “유대인 문제”는 서로에게 적대감을 가진 “민족적 국가들 내에서만” 일어난다. 자기 민족의 정치적 통일성과 “피의 순수성”을 지키기 위해 다른 민족들을 배타해야 한다는 정신으로 말미암아 “유대인의 문제”를 위시한 다양한 형태의 인종차별주의가 발생한다. 그러나 유대인들이 보이는 뛰어난 우수한 지성과 활동 능력, 오랜 역사를 통해 축적된 “정신과 의지의 자본”으로 인해 유대인들이 질투의 대상이 되는 것도 그 원인이다.

어떤 민족 안에 힘든 일이 일어날 때, 그 민족은 자기 땅에 살고 있는 다른 인종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그들을 희생양으로 삼는 것이 역사의 오랜 법칙이다. 유럽의 민족들도 이 법칙을 벗어나지 못한다. 그들은 유대인들을 그들 자신의 “모든 공공적인 어려운 문제들과 내적인 문제들에 대한 희생양으로 삼아 도살장으로 끌고 간다.” 그러나 민족들의 폐쇄성이 깨어지고 유럽인들의 “강력한 혼합 인종”이 형성될 때, 유대인들도 다른 민족들과 마찬가지로 한 구성원으로서 유용하고 바람직한 존재로 인정될 수 있을 것이다.

어떤 사람은 주장하기를, 유대인들은 “질이 나쁜” 인종이라고 비난한다. 그러나 “나쁜 질”은 유대인들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민족, 모든 사람에게 있다. 유대인들에게만 “완전한 질”을 가진 인종으로 기대하는 것, 곧 “유대인들에게 예외를 요구하는 것은 잔인한 일이다.” 그것은 유대인들에 대한 증오와 배척과 대량 학살로 발전하기 때문이다.

우리 유럽인들로 말미암아 유대인들은 “모든 민족들 가운데 가장 고통스러운 역사”를 지니고 있다. 우리는 유대인들 덕분에 세계사에서 “가장 고귀한 사람(그리스도)을 가지며, 가장 순수한 현자(스피노자)를 가지며, 세계의 가장 힘 있는 책(성서, 필자)과 가장 영향력 있는 도덕법(Sittengesetz)”을 갖게 되었다. 나아가 중세기에 아시아인들이 유럽을 위협할 때, 유럽인들의 “지성과 정신적 독립성의 기치”를 지키고, 아시아로부터 유럽을 방어한 사람들은 자유로운 유대인 사상가들과 학자들과 의사들이었다. 그들의 노력으로 말미암아 “세계에 대한 자연적이며 이성에 일치하는 비신화적 설명이 다시 승리할 수 있었고, 고대 그리스-로마의 지성과 우리를 결합하는 문화의 고리가 깨어지지 않고 유지되었다”고 니체는 유대인들의 역사적 업적을 찬양한다.

한 마디로 니체는 반유대인주의(Antisemitismus)를 반대한다. 반유대인주의는 인종차별주의의 한 형태이다. 따라서 반유대인주의는 세계의 모든 약소민족들에 대한 인종차별주의로 발전할 수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일본의 “조센징 차별주의”, 서구 백인들의 “유색인종 차별주의”이다. 기독교는 반유대인주의를 위시한 모든 종류의 인종차별주의, 인간차별주의를 거부하고, 모든 인간과 인종이 그 존엄성을 인정받는 사회를 이루고자 노력해야 한다. 모든 인간, 모든 인종은 동일한 “하나님의 자녀들”이요,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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