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영화 <악마와의 토크쇼>에 대한 스포일러를 일부 포함하고 있습니다.
심야 토크쇼를 진행하는 잭은 방송인으로서 정상의 자리에 서고 싶다는 야망을 품고 있습니다. 하지만 시청률은 갈수록 저조해지고, 초조해진 그는 시청률 대박을 터뜨릴 요량으로 특별한 방송을 기획합니다. 악마에게 빙의된 것으로 알려진 소녀를 게스트로 출연시켜 악마와 대화를 해보겠다는 것이죠. 이를 위해 악마와 소통했다는 초심리학 박사, 영혼을 불러낸다는 영매, 초자연현상의 속임수를 밝혀내는 전문가 등이 함께 출연합니다. 당초 기획대로 소녀에게 빙의했다는 악마를 녹화 현장에 불러들여 잭과 대화를 나누자 시청률은 솟구칩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초자연적인 현상들이 일어나고, 난장판이 된 스튜디오에서는 참극이 벌어집니다.
미디어, 욕망, 그리고 악마
오컬트 공포물의 외피를 입고 있을 뿐 실상은 풍자물인 이 영화는 미디어의 악마성을 꼬집습니다. 쇼가 시작되자 이상한 현상들이 나타나고 공포감에 사람들은 동요하지만, 시청률에 목을 맨 잭과 프로듀서는 오히려 흥분하며 쇼를 강행합니다. 시청률 1위를 달성하겠다는 야망에 사로잡힌 잭은 자신의 소원을 이루기 위해서 비밀사교집단에 아내를 제물로 바칠 정도였죠. 그런 점에서 매들린은 악마와도 같은 미디어 시대의 희생양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미디어의 수혜자 잭 또한 악마라고 할 수 있겠죠.
현장에서 벌어진 기괴한 참극을 녹화한 영상에는 ‘이루어졌도다’라는 자막이 나타나고, 이는 잭의 욕망이 실현되었음을 암시합니다. 잭뿐만 아니라 쇼의 출연자들 모두 욕망에 사로잡힌 자들인데요. 초심리학 박사는 악마에게 빙의되었다는 소녀를 딸처럼 여기며 돌보는 듯했지만, 결국 자신이 유명해지기 위해 소녀를 활용했을 뿐입니다. 게다가 잭과의 관계 또한 의심스럽죠. 영매는 가족을 잃은 방청객의 슬픔에 공감하는 것 같지만, 자신의 공연을 홍보하는데 여념이 없습니다. 물욕이 강한 이는 악마가 자신을 위협하자 살려달라며 수표를 제시하죠. 이렇듯 영화는 인간의 욕망이야말로 악마가 아니겠냐고 관객에게 넌지시 이야기합니다.
당신이 보고 있는 것은 진실인가
초자연적 현상들이 속임수임을 밝히려는 전문가는 최면술 시범을 통해 방청객들은 물론 시청자들까지 속입니다. 이 장면은 마치 미디어가 우리 모두를 최면에 걸고 있지 않냐며 따져 묻는 것 같습니다. 영화는 토크쇼 녹화본을 컬러 화면으로, 무대 뒤 상황을 흑백 화면으로 대조시킴으로 무대 뒤의 상황이 표상하는 진짜 현실이란 총천연색이 아님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의뭉스럽게도 이 영화는 페이크 다큐멘터리(다큐멘터리의 형식을 빌어 허구의 상황을 실제 상황처럼 가공한 영화)와 파운드 푸티지(우연히 발견, 회수된 출처 불명의 영상)의 형식을 차용함으로써 ‘미디어가 당신의 눈에 보여주는 것이 과연 진실일까?’라는 문제를 제기합니다.
마치 관객을 바라보듯 계속해서 정면을 응시하는 소녀는 관객에게 질문하는 것 같습니다. 당신이 보고 있는 것이 진실이 맞냐고 말이죠. 자극적인 컨텐츠에 열광하는 현대인들에게 그 컨텐츠가 진실인지는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그런 점에서 미디어는 우리를 기만합니다. 마치 악마처럼 말이죠.
누가 악마인가
영화 속 악마는 제법 강력합니다. 십자가 목걸이를 들이대며 제압을 시도하지만 되려 무기력하게 목이 꺾여 죽게 될 정도니까요. 기독교 측에서 불쾌하게 볼 수도 있을 법하지만, 따지고 보면 예수님의 제자들도 귀신을 쫓는 데 실패하기도 했으니(마태복음 17:14-20) 너그럽게 대할 일입니다. 어떤 이들은 악마, 귀신, 이런 것들이 활개 치는 모습을 그려낸 오컬트 영화를 왜 기독교인들이 보냐며 반대의 목소리를 내기도 합니다. 기독교 신앙을 훼손할 수 있다는 것이죠. 하지만 그까짓 오컬트 영화 때문에 신앙이 흔들린다면 그건 부실한 교회 교육을 탓할 일입니다. 교회가 기독교 신앙을 충실하게 교육했다면 기우에 머물 일이죠. 어떤 이들은 공포감이 정서에 유익하지 않다며 오컬트물을 반대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정말로 공포스러운 것은 영화 속 악마의 힘이나 음산함이 아니라, 폭력적이고 속물적이며 진실 따위는 개의치 않는 미디어의 속성일 겁니다. 아내를 죽여서라도 원하는 바를 이루려는 인간의 욕망이 이런 류의 오컬트 영화보다 훨씬 공포스럽지 않을까요.
SNS시대의 악마성
영화 속 난장판은 오늘날 SNS의 풍경을 떠올리게 합니다. 시청률과 유명세에 목을 매는 인간군상들은 ‘조회수’와 ‘좋아요’에 집착하는 소위 ‘인플루언서’들을 연상시킵니다. 진실이 무엇인지보다 자극적인지 아닌지를 중요하게 여기는 작금의 세태를 표상하죠. SNS속 광경들이 온전히 사실일까요? 현대인은 SNS를 통해 자신이 얼마나 행복한지를 마치 경쟁하듯 뽐냅니다. 실제로 자신이 행복한지 여부와는 별개로 말이죠. SNS를 통해 서로를 속이고 자신도 속습니다. 마치 이 영화가 페이크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능청스럽게 관객에게 거짓말을 하는 것처럼 말이죠.
영화의 말미에서 잭은 TV를 끄라며 화면을 향해 외치는데요. 이 장면은 영화의 메시지를 함축적으로 담고 있는 것 같습니다. ‘보이는 것에 현혹되지 말라’는 것이죠.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며 보이지 않는 것에 진실이 담겨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를 기만하는 미디어야말로 악마가 아닐런지요.
“우리는 보이는 것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을 바라봅니다. 보이는 것은 잠깐이지만,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하기 때문입니다.” (고린도후서 4:18 / 새번역)
노재원 목사는 현재 <사랑하는 우리교회>(예장 합동)에서 청년 및 청소년 사역을 담당하고 있으며, 유튜브 채널 <아는 만큼 보이는 성경>을 통해 기독교와 대중문화에 대한 사유를 대중과 공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