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르트의 이상주의와 니버의 현실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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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기성 박사(웨슬리언교회지도자협의회 대표회장)
양기성 박사

요즈음 세계 속에서 발생하는 정치·사회·문화 문제를 신학적으로 해결하려하고, 이 요구 조건을 영혼에 호소하려는 신학자들을 찾아보기 어렵다. 기독교 신학마저도 모두 좌우파 이념 대립 논쟁에 물들어 있어 옳은 일인지 그른 일인지를 바탕으로 이슈들을 평가하려 하지 않는다. 과연, 신학자들은 오늘의 사회적 문제들에 대해 자신들의 임무를 잘 감당하고 있는지 한번 살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여기에 20세기의 신학사조를 이끌어 온 칼 바르트(Karl Barth, 1886-1968)와 라인홀드 니버(Reinhold Niebuhr, 1892-1971)를 통해서 방법론을 찾아보자. 이 둘은 인류가 가장 비극적 처참한 상황, 즉 1, 2차 세계대전을 겪던 시기에 인간의 성품과 행동, 양심을 신학적으로 잘 그려 낸 인물들이다. 이들을 통해서 21세기 가치관 혼란을 겪고 있는 사회에서 신학자와 목회자들이 해야 할 일들이 무엇인지에 생각해 보자.

칼 바르트는 베른대학고, 베를린대학교, 튜빙겐대학교에서 신학을 하였는데, 그때는 독일의 슐라이에르마허(Schleiermacher)에 의한 자유주의 신학이 주류로 등장하던 때였다. 자유주의 신학의 특징은 교회 내를 중심으로한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론보다, 도덕이나 윤리 또는 인권 같은 사회적 인간 삶에 더 관심을 갖는다. 그는 이러한 자유주의 신학이 주도하는 신학적 분위기에서 학창생활을 했으나, 목회하면서 그들과 결별, 성경중심의 온전한 복음주의적 성향을 갖고 신학과 목회를 하게 되었다. 매우 형이상학적 신학을 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목회하던 곳에서 노동자들을 돕는 일을 하다 매우 불경스런 말을 듣는 경험을 하기도 했다. 당시에도 한때 사회가 공산주의냐 민주주의냐와 같은 이념 대립이 아주 강하게 나타나서, 바르트가 스위스 자팬빌에서 목회할 때, 그를 “빨갱이”로 몰아세운 자들이 있기도 했다. 업주들의 돈 탐욕 때문에 노동자들에 대한 횡포나 착취가 심하자 이를 비난한 것이 빨갱이란 말을 듣게 된 이유다. 그가 스위스 자팬빌에서 11년간 목회할 때 인간들의 다양한 면모를 보게 되었는데, 이 상황을 통해 복음주의 신학으로 하나님의 말씀의 신학(Theology of God’s Word)을 하게 된 것이다.

한편, 라인홀드 니버는 미국 미주리주 엠허스트에서 독일계 부친의 이들로 태어나 이든신학교 (Eden Theological Seminary)를 졸업하고, 코네티컷주의 예일대학교에서 신학을 하였다. 졸업 후, 미 자동차 산업의 맹주 도시인 디트로이트에서 13년간 목회하였다. 여기서, 니버 또한 인간들의 다양한 삶에 대처하는 사고와 행동들을 목격하게 된다. 그곳에서 목회할 때 니버 자신이 노동자들을 위해서 사업주와 문제해결을 위한 대화를 하기도 했다.

그는 뉴욕 유니온 신학교로 옮겨 윤리학 교수로 활동하면서 디트로이트 복음주의 교회에서 경험한 것들을 배경으로 하여 많은 책을 써 냈다. 영국 에딘버러대학교의 기포드(Gifford) 강연에 수차례 초청받아 신학, 인간, 사회 및 정치현안에 대해 강의하기도 했다. 그의 강의는 세계적으로 유명해져 당시 미국 최고 수준의 정치가들이 자문을 구하기도 할 정도였다.

인간과 사회문제 해결 방안에 있어서 바르트는 성경의 하나님 말씀을 중심으로 하자는 이상주의적 입장이었던 반면, 라인홀드 니버는 현실주의에 입각하여 하자는 것이었다. 바르트는 죄의 회개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세상을 변화시켜 가자는 입장이었으나, 니버는 사랑과 윤리로 하자는 입장을 취했다. 사랑과 정의라는 두 실체로 인간 개인의 죄와 사회문제를 풀어가고자 했다는 말이다. 개인은 사랑으로 변화될 수 있으나, 그룹은 에고이즘의 집합체이기 때문에 사랑으로 안되고 정의, 즉 정치나 법같은 힘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현실주의적 주장을 하였다.

두 신학자들 간의 가시돋힌 논쟁이 있었다. 1939년 9월 옛 소비엣연방 공산주의자들이 폴란드를 공격하자 니버는 이에 대한 국제적 차원의 비난을 하였다. 그런데, 바르트는 조용하게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독일의 히틀러가 유럽 근방 국가들을 침략하자 이에 대항하여 바르트가 1934년 5월, 바르멘 선언(Theological Declaration of Barmen)을 하였는데, 소비엣연방 공산주의자들의 폴란드 침략에 대해서는 조용하게 있어서 이에 니버가 바르트를 비난 한 것이다. 신학자는 당연히 소비엣 공산주의자들의 폴란드 침략을 비난해야 하는데 왜 침묵하고 있느냐는 것이다. 이에 바르트는 “ 나는 신학자이지 인류학자가 아니다”라는 말로 응수했다. 니버는 다시 “바르트의 신학은 너무나 종말론적, 즉 개인이나, 사회, 국가가 어려움에 처해 있어도 내세를 위한 기도같은 신앙만 추구한다”며 바르트와 그의 신학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이 두 신학자들의 신학입장이나 성향, 또는 방법론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두 신학자의 입장을 다 불가피하게 수용해야 한다고 본다. 판단의 근거, 또는 근원은 에수 그리스도이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하신 바와 가르침에 의거해야 한다. 예수님은 복음주의적 본질을 가르치셨으며, 동시에 대사회적 책임에 대해서도 가르치셨다. 옳고 그름의 관점에서 보면 둘다 타당한 신학을 했다 할 수 있다.

쉬운 이해를 위해 1970년대의 민중신학을 예로 들어 오늘에 대입한다면, 복음주의자들이 민중신학자들의 기본적 신학운동을 무조건적으로 비난해서는 안 될 일이며, 민중신학자들이 복음주의자들을 또한 무조건 비난해서도 안 된다. 온건한 주제의 신학 범위 내에서 자신들이 하지 못한 사명을 상대방이 한 것으로 보면 합리적으로 이해 할 수 있는 일이다. 신학의 범주를 극단적으로 넓혀서는 안 되지만, 문 걸어 잠그고 울타리치는 자세를 가져서도 안 된다.

세계에는 침략, 전쟁같은 생명이 왔다갔다 하는 절박한 사안에 대해 비평, 또는 평가해야 할 일들이 많다. 방법론으로 바르트처럼 기도로 문제해결을 구할 것인지, 아니면 니버처럼 신학적 비판을 꾸준히 제기해야 하는지 고심의 고지에 서 있는 현실이라 할 수 있다. 세계 신학계가 너무 무기력하게 있는 것 같아서 하는 말인데, 신학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밝히는 말이라도 하면 좋을 것이다.

개신교의 3대 스승 마틴 루터(성자신학), 존 칼빈(성부신학), 존 웨슬리(성령신학)는 개인적인 경건과 사회적인 이웃사랑을 성경말씀 안에서 실천하는 희생적인 지도자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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