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은 민주주의 회복을 통한 협치를 간절히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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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헌일 박사(신생명나무교회 목사, 한국공공정책개발연구원장)
장헌일 목사

지금 한국 정치는 여야 간 소통 부족과 협치 실종으로 인한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 이는 국정 운영의 비효율성을 초래하고 사회통합을 저해하며 국민의 정치 불신을 키우는 주요 원인이 되어 국제경쟁력을 약화시키게 된다.

극단적 분열 사회에서는 다수제가 정상적으로 작동할 수 없으며 협의제만이 지속가능한 민주주의 체제를 가져다주는 현실적 대안이라고 정치학자 아렌드 레이프하트(Arend Lijphart) 교수는 주장했다.

학계에서는 협치를 거버넌스(governance)로 여야가 협력적으로 정치하라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여야 협치의 대표적 모델은 협의제(consociationalism)다.

여야 협치의 대표적 사례로 영국 보수당이 노동당 정책을 수용한 버츠컬리즘(Butskellism)과 노동당이 보수당 정책을 계승한 블레처리즘(Blatcherism)이다.

버츠컬리즘은 보수당 처칠 정부와 노동당 애틀리 정부에서 각각 재무장관을 지낸 래브 버틀러와 휴 게이츠컬에서 비롯됐다. 처칠 정부는 애틀리 정부의 복지국가와 국가계획경제 정책을 수용했다.

이런 배경에는 사회 안정과 사회 서비스를 강조하는 복지국가에 대한 국민적 기대와 공산주의 확산 방지를 위한 전후 정치·경제적 상황이 있었다. 보수당과 노동당 모두 과도한 복지비용, 고물가와 고임금 해소를 위한 사회경제 개혁에 노력을 쏟았으나 이 과정에서 고복지·고비용·저효율, 그리고 근로의욕 상실을 뜻하는 영국병은 심화되었고 버츠컬리즘은 1979년 보수당 대처 정부의 등장으로 막을 내렸다.

블레처리즘은 영국 총리였던 토니 블레어와 마거릿 대처의 이름에서 유래했다. 대처 정부는 포괄적 복지를 정부·사회·개인의 특성에 부합한 선택적 복지정책으로 전환해 시장경제에 대한 정부 개입 축소, 전후 국영화된 기업들의 민영화, 그리고 유연한 노동시장 정책을 폈다. 18년 동안의 노력으로 영국병은 치유되기 시작했다.

1997년 집권한 노동당의 블레어 정부는 대처리즘의 폐기보다는 계승·보완하는 실용주의적 노선을 채택했다. 과거 노동당의 포괄적 복지정책으로 회귀하지 않고 ‘일하는 복지’ 정책을 추진했다.

버츠컬리즘과 블레처리즘은 여야 협치를 통해 그 시대의 당면 과제를 해결했다는 공통점이 있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협치는 대통령이든 국회든 헌정 가치와 민주성 합리성에 벗어날 수는 없기 때문에 소수가 다수를 인정하고, 또 다수도 소수를 인정해야 협치는 실현되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초저출생·초고령화 사회로 진입하면서 세금을 부담할 청년인구는 감소한 반면 의료서비스와 연금을 받는 고령인구 증가로 세대 간 불평등이 우려된다.

사회 양극화를 비롯한 다양한 기울어진 운동장을 지속가능한 정책을 통해 세대와 계층 간 공정성 확보를 위해 민주주의 회복을 통한 협치가 절실한 이유다.

국민에게 신뢰와 희망을 주는 대한민국호를 위해 대통령과 국회 모두 오직 국민을 바라보며 국민에게 희망을 주는 협치의 깃발을 흔들어야 한다.

22대 국회는 상생과 협치를 통해 초저출생 문제 극복과 약자를 위한 정치, 민생 속으로 뛰어드는 국회가 되어야 한다. 특별히 한국교회와 성도들은 기독 의원들이 국회에 파송한 ‘화평의 전도사’의 사명을 잘 감당 할 수 있도록 그 어느 때보다 간절히 기도하며 응원해야 한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 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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