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보칼럼⑱] 국군이 된 독립유공자(2)

오피니언·칼럼
국가보훈과 국립묘지(12)
국가유공자 제2묘역에 있는 김홍일 장군의 묘

서울 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는 육군소장 애국지사 권준, 육군중장 애국지사 이준식이라고 새겨진 비석이 있다. 권준 장군은 신흥무관학교를 졸업하고 의열단을 조직했다. 황포군관학교를 수료하고 중국군에 있다가 임시정부 내무차장을 맡았다. 광복 후 49년 육군 대령으로 초대 수도경비사령관, 제50보병 사단장을 지냈다.

이준식 장군은 만주의 독립군 단체 정의부, 국민부에서 활동하다가 중국군에 복무하다 임시정부 광복군 제1지대장 사령부 참모를 했다. 49년 육군대령으로 제3보병사단장, 육군참모부장, 제5관구 사령관을 역임했다.

또한 광복군 출신 박기성(육군준장), 박영순(육군 소장), 안춘생(육군 소장), 중국군 출신 박시창(육군 소장), 광복군 중국군 출신 유해준(육군 소장), 최원재(육군준장), 독립군 출신 오광선(육군 준장) 등의 묘소가 독립유공자 묘역에 있다.

국가유공자 제2묘역에는 김홍일 장군, 이범석 장군의 묘소가 있다. 김홍일 장군은 1926년 중국국민혁명군에 입대하여 지휘관으로 북벌과 중일전쟁에 참전하였다. 상해 병공창 군기처 주임으로 있으면서 이봉창 의거와 윤봉길 의거에 폭탄을 제공했다.

1940년 광복군이 창설되자 총사령부 참모장을 맡았다. 광복 후 국군 최초로 육군준장으로 임관하여 시흥지구전투 사령관으로 한강방어선 전투를 지휘하였고 제1군장으로 반격의 계기를 마련하였다. 중국군 소장과 국군의 중장을 합쳐서 5성 장군으로 불린다.

이범석 장군은 북로군정서(총사령관 김하진) 연성대장으로 청산리 전투에 참가하였고 광복군 제2지대장을 맡았다. 1948년 8월 대한민국 초대 국무총리 겸 국방부 장관에 임명되었다.

장군 제1묘역에는 아홉 분의 독립유공자가 안장되어 있다. 고시복 장군은 황포군관학교를 졸업하고 한인애국단, 중국군, 광복군에서 활동하고, 육사 제2기로 박정희 장군, 한신 장군과 동기이며 춘천대첩에서 6사단 참모장으로 활약했으며, 전설의 6사단 7연대장과 9사단 30연대장으로 혁혁한 전과를 세웠다.

전성호 장군은 만주와 연해주 등에서 독립운동을 했으며, 제1사단 12연대장으로 개성전투에서 부상을 입었고, 1950년 9월 영덕지구전투에서 전사했다. 김용관 장군(해군 소장)은 광복군 출신으로 6.25전쟁에 참전하고 주월 한국군 부사령관으로 작전 부사령관을 역임하였다. 민영구 장군(해군 소장)은 광복군 출신으로 해군본부 작전참모부장, 해군사관학교 교장을 지냈다.

장흥 장군(육군 소장)은 광복군에서 활약하고 초대 헌병사령관과 국방부 병무과장을 역임하였다. 정희섭 장군(육군 준장)은 광복군 출신으로 제3육군병원장(광주), 제2대 의무사령관, 노동청장, 보건사회부 장관을 역임하였다. 최용덕 장군(공군 중장)은 중국군과 광복군 출신으로 초대 국방부 차관, 공군 참모총장, 체신부 장관을 역임하였다.

한철 장군(육군 준장)은 오산중학교 재학 중 3.1운동에 참가하여 옥고를 치른 뒤 남만주에서 활약하다가 광복 후 6.25전쟁에 참전하였다. 황종갑 장군(육군 소장)은 비밀결사대를 조직하여 활동하였고 6.25에 참전하고 제2군단 부사령관을 지냈다.

독립유공자 가운데는 장병묘역에 안장되거나 위패로 봉안된 분도 있다. 윤대여 소령은 낙양군관학교를 졸업하고 민족혁명당 공작원으로 활동하였고 광복 후 왜관 경찰서장으로 재직하다가 육군소위로 임관하여 1950년 6월 26일 의정부에서 전사하였다.

광복군 출신 이의명 중령은 1950년 6월 27일 서울에서 전사하였다. 그는 청산리전투의 참모장 이장녕 선생의 차남이다. 하루건너 전사한 이들은 장병묘역 33묘역에 안장되어 있다. 1950년 7월 29일 경북 예천에서 전사한 광복군 출신 김영남 소령의 묘소가 여기에 있다.

제54묘역에는 광복군 출신 이건국 대령의 묘소가 있다. 1951년 1월 7일 가평전투에서 전사했다. 조개욱 중령은 1945년 경기 경찰부장에 있다가 육군에 입대하여 1950년 7월 5일 대전에서 전사했다. 1949년 12월 지리산 공비토벌전투에서 전사한 선우기 대위와 1950년 6월 25일 전사한 박영진 대위, 이 세분은 서울 현충원에 위패로 봉안되어 있다.

이순신 장군의 12대손 이붕해 선생은 광복군 참모장으로 활약하다가 육군 장교로 1950년 6월 28일 옹진전투에서 전사했다. 광복군 유격대장 출신 장철부 중령은 1950년 8월 4일 청송전투에서 부상을 입고 대대지휘소가 점령되기 직전 포로가 되는 불명예를 피하려고 권총으로 자결했다. 경북 청도에서 독립운동을 하던 최순찬 선생은 육군 이병으로 입대하여 1950년 12월 7일 남원에서 전사했다. 이 세분은 대전 현충원에 안장되어 있다.

군복을 수차례 바꿔 입은 분도 있다. 채원개 장군은 대한제국군대, 조선보병대, 신흥무관학교 교관, 독립군, 중국군, 광복군으로 활약하다가 국군에 투신하여 제2사단장을 지냈다.

이범희 목사

뜨거운 가슴으로 빼앗긴 나라를 찾기 위해서 조국에 목숨을 맡겼던 분들이 또다시 대한민국을 지켜내기 위해서 조국에 목숨을 맡기고 최전선에서 용감하게 싸우다 전사하신, 독립과 호국의 영웅들을 우리는 잊지 말고 기억해야 될 것이다. 뜨거운 태양이 작열하는 8월에 나라 사랑의 뜨거운 마음을 바치신 이 분들을 다시 한번 추모하고 현충원에서 만나보자.

이범희 목사(6.25역사기억연대 부대표, 6.25역사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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