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北 비핵화·인권’ 구호 사라진 미국 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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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대선을 3개월여 앞두고 민주당과 공화당이 발표한 정강정책에 ‘북한 비핵화’ ‘북한 인권’문제가 자취를 감추었다. 전문가들은 이것이 대북 원칙의 변화를 의미하는 건 아니라는 해석을 내놓고 있으나 자칫 북한을 핵 보유국으로 용인하고 북한의 참혹한 인권 탄압을 묵인하는 암묵적인 신호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민주당이 지난 18일(현지시간) 공개한 정강정책에는 ‘북한 비핵화’에 대한 언급이 없다. 4년 전인 2020년 대선을 앞두고 발표한 정강정책에 “우리는 (북한) 비핵화라는 장기적인 목표를 진전”이라는 내용이 들어있던 것과 대비되는 부분이다.

지난달 발표한 공화당의 정강정책에는 아예 ‘북한’이라는 단어조차 없다. 미국 우선주의 외교 노선을 표방해온 트럼프 진영에 한반도 안보 문제가 우선순위에 있지 않다는 의미로 해석되는 대목이다.

미국 민주당과 공화당 모두 한미동맹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엔 큰 변화가 없어 보인다. 그렇다고 대선을 앞두고 발표한 정강정책에 ‘북한 비핵화’가 빠진 걸 예삿일로 여길 일은 아니다. 만에 하나 그동안 미국 정부가 고수해온 ‘북한 비핵화’ 원칙이 흔들린다면 한반도 안보 불안으로 직결될 수 있어서다.

민주당 내 인사들은 이런 우려에 선을 긋고 있다. 이것이 곧 대북 정책의 변화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설명이다. 미국 외교 전문가들도 민주당의 새 정강정책에 그동안 지속적으로 강조해 온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를 언급하지 않은 것에 대한 확대 해석을 경계하는 분위기다. 새 정강정책이 주로 국내 현안문제에 집중하다보니 의도치 않게 빠진 것일 뿐 그 자체에 큰 의미를 부여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지난달 발표된 공화당의 정강정책은 민주당보다 더하다. ‘북한 비핵화’에 대한 언급은 물론이고 ‘북한’이란 용어도 찾아 볼 수 없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 또한 공화당의 한반도 외교노선이 달라진 건 아니란 분석이다. 대선을 앞두고 발표한 정강정책은 말 그대로 ‘선거용’ 문서일 뿐 집권 후 정책의 지표로 확대 해석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미국의 정치적 현실은 우리가 체감하는 온도와 차이가 있을 수 있다. 민주당의 경우 대선을 불과 4개월 앞두고 바이든 현 대통령이 중도 사퇴하고 해리스 부통령이 후보 승계를 한 특수 상황을 감안하지 않을 수 없다. 일련의 과정에서 뒤쳐진 인지도와 지지율을 끌어올리기 위해 보다 민감한 현안을 집중 배치하다 보니 동맹국과 관련한 사안이 뒤로 밀린 것이란 해석이 가능하다,

공화당의 전통적인 대북 정책 노선 또한 민주당과 큰 차이가 없다. 다만 트럼프의 대북 접근 방식은 괘를 달리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 시절 미국은 북한의 비핵화 문제를 빅딜을 통한 톱다운 협상으로 해결하려다 실패했다. 트럼프가 대선 유세 연설에서 “북한 김정은은 내 친구”라며 친분을 과시한 것으로 볼 때 재 집권시 이런 방식을 다시 시도할 가능성이 있다.

민주당의 새 정강정책에 ‘북한인권’ 문제가 빠진 건 이례적이다. 현재 민주당 정강에는 북한 인권 문제와 관련해 “인도주의적 지원을 지지하고 북한 정권이 총체적 인권 유린을 중단하도록 압박할 것”"이라는 내용이 들어있다. 그 내용을 뺐다는 점에서 영 개운치 않다.

미국 민주당은 전통적으로 인권을 중시하는 외교 기조를 유지해 온 정당이다. 그런 정당의 새 정강에 ‘북한 인권’ 문제를 언급하지 않은 것이 앞으로 북한의 주민 인권 유린 중단을 위한 노력을 중단하겠다는 뜻은 아닐 것이다. 이 또한 ‘북한 비핵화’문제처럼 재집권에 역점을 준 여당으로서 보다 현실적인 접근으로 보는 게 타당하다.

물론 현재 미국 정치 상황이 ‘북한 비핵화’, ‘북한 인권’ 문제를 시급한 과제로 설정하지 않는다고 이를 소홀히 할 것으로 지레 짐작할 필요는 없다. 오랜 세월 자유 민주주의 토대 위에서 세계 평화와 질서 유지에 공헌해 온 미국이란 거대한 배가 누가 선장이 되든 항로를 급격히 바꾸거나 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양 당이 대선을 앞두고 발표한 정강정책은 정책으로서의 의미보다 당장 선거에서 이기기 위한 정치적 선택일 거란 게 대체적인 평가다. 하지만 이것이 대통령 후보자격으로 미 국민에게 하는 공약이라는 게 문제다. 대선에서 승리한 후보와 집권당이 그 때 다시 중요한 정책적 선택을 보완하겠지만 그렇다고 기본 기조가 달라질 수는 없다.

다시 말하지만 미국의 민주당과 공화당이 ‘북한’ 문제를 언급하지 않은 것이 북한의 핵을 용인하고 인권 탄압을 묵인하겠다는 뜻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북한이 실제 핵을 사용할 것인가 와 상관없이 단지 핵을 보유한 것만으로 한반도에서 힘의 불균형이 초래되고 평화가 위협받는 게 문제다.

이런 대선 정국에서 마치 두 당이 입을 맞추기라도 한 듯 ‘북한 비핵화’와 ‘북한 인권’문제를 주요 정책 목표에서 제외한 건 분명 우리에겐 그리 달갑지 않은 상황 전개다. 우리로서는 누가 집권하든 한반도 안보에 있어 긴밀한 한미 공조와 동맹관계를 다시 꼼꼼히 점검해야 할 시점이다.

이런 때일수록 우리 정부는 어떤 상황이든 미리 대비하고 기민하게 대응해야 할 것이다. 누가 집권하든 대북 정책 기조가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안심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지금까지 한미동맹이 그 버팀목 역할을 충실히 해 왔지만 우리 스스로 대응능력을 갖추는 일에도 소홀해선 안 될 것이다. 힘을 갖추지 못한 채 남에게 의존해 지킬 수 있는 평화는 허상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