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예술, 복음이 퍼져갈 길 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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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장요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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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제22회 크리스천 아트포럼, ‘기독교 예술의 공공성’ 주제로 열려
2024 제22회 크리스천 아트포럼 참석자 기념 사진. ©아트미션 제공

아트미션(대표 양지희 회장)이 최근 서울 중구 소재 경동교회(담임 임영섭 목사)에서 ‘기독교 예술의 공공성’이라는 주제로 2024 제22회 크리스천 아트포럼을 개최했다.

이날 포럼에는 ▲신국원 박사(총신대 명예교수)가 ‘기독교 예술의 공공성’ ▲정재영 교수(실천신학대 종교사회학)가 ‘기독교의 공공성과 마을공동체 운동’ ▲서성록 교수(안동대 미술학과 명예교수)가 ‘시각 예술의 공동선:이웃과 함께 하는 새로운 노멀’이라는 주제로 각각 발제했다.

기독교 예술의 공적 위치와 기여

2024 제22회 크리스천 아트포럼 진행 사진(왼쪽부터 정재영 교수, 신국원 박사, 서성록 교수) ©아트미션 제공

먼저, 신국원 박사는 “예술의 공공성과 특히 사회적 가치는 논란거리다. 예술은 특별한 재능을 가진 사람이 개인적 비전을 표현하는 것이라는 인식 때문에 공중의 관심 밖에 있다”며 “사회적 주목을 끌 때는 특별한 경우다. 충격적인 작품을 통해서 기성 가치를 흔드는 경우가 그중 하나다. 그것이 공적 자금을 지원받았을 경우 논란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고 했다.

신 박사는 “그리스도인들의 분노를 자아낸 안드레 세라노(Andres Serrano)의 ‘피스 크라이스트 (Piss Christ, 1987)’가 대표적인 예이다. 개별 사안을 넘어서 보수와 진보 진영이 정치-경제적 이해를 놓고 법과 제도를 동원해 격돌하는 ‘문화전쟁’으로 비화되기도 한다”며 “물리적 충돌로 이어질 수도 있다. 문화와 예술은 고상하고 아름답고 좋은 삶의 실현이어야 한다. 과연 예술은 사회에 기여하는 것이 가능한가. 더욱이 기독교 신앙과 세계관에 뿌리를 둔 예술이 공공성을 가질 수 있는가”라고 했다.

그는 “기독교 예술의 공공성에 대한 논의는 근래에 중요해진 공공신학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이 많다”며 “기독교 신앙은 늘 공적 진리였다. 복음은 그리스도인들만 위한 것이 아니다. 공적인 함의가 있다. 하나님은 모든 존재의 창조주이시며 삶의 어느 한 영역도 그의 주권적 통치 아래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분은 교회의 하나님이실 뿐 아니라 예술의 주님이시기도 하다”고 했다.

이어 “공공신학은 사적신학에 대한 반대개념이 아니다. 사적신학은 존재하지 않는다. 공공신학은 공적 삶의 토대에 관해 정치와 경제로부터의 독립되고, 이들보다 더 깊은 심급인 종교적 신앙에 기초한 논의를 지향한다”며 “따라서 민주사회의 종교적 토대를 논의하는 점에서 정치학, 윤리학, 경제학보다 훨씬 깊은 논의를 제공한다. 근본 토대에 관한 논의이다. 마찬가지로 기독교 예술의 논의도 단지 예술의 심미적이거나 기술적이며 현상적인 논의에만 국한시켜서는 안 된다”고 했다.

신 박사는 “기독교 예술의 역사와 특성을 살펴보면 공공성이 부차적인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초기 기독교 예술은 로마사회를 향한 기독교인의 정체성과 소망을 드러내는 방편이었다”며 “중세 교회의예술 사용을 예로 생각해 볼 수 있다. 기독교 예술은 사적 신앙의 사적인 표현이 아니다. 기독교 내에서만 예배에서만 이용되는 것이 아니다. 독일의 퀠른 성당은 시 전역 어디서나 볼 수 있다. 이런 대성당은 건축의 세부적 기획까지 신학적 고려가 들어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교회는 공적 광장 한가운데 있고, 공적 행사의 중심에 예배가 있었으며, 예전에는 다양한 예술이 사용되었다. 음악과 미술, 조각과 건축, 이제는 영상도 중요한 예전의 한 부분”이라며 “부활절과 성탄절 같은 절기는 공휴일일 뿐 아니라 세속화된 형태이긴 하지만 교회당 밖에서도 다양한 예술을 통해 대중에 의해 축하 된다”고 했다.

이어 “기독교 예술은 성경적 비전과 기독교 세계관에 입각한 삶의 이해를 예술적 상상력을 통해 공공의 장에서 행해지는 사회문화적 담론에 참여해 목소리를 내야 한다”며 “물론 예술의 자율성과 진정성을 바로 견지해 예술적 기여에 힘써야 한다. 설교나 간증이 아니다. 기독교 예술은 사적인 동시에 공적이다. 오늘날과 같이 사회통합이 중요한 시대에 기여할 것이 많다. 이는 앞서 언급한 자이더바르트와 개혁주의 미학자들만 아니라 신학자, 사회학자, 예술이론가들이 한 가지로 요청하는 바”라고 덧붙였다.

그는 “창조명령의 범위는 온 땅과 모든 생물을 다스림과 돌봄이다. 타락으로 인해 번영의 길은 달라졌다. 하지만 샬롬을 추구하라는 원래 그대로이다. 세상은 교회의 공동선 추구에 열려 있다”며 “세상과의 협력, 네트워킹, 상호 의존, 제도 설립 같은 체계화가 필요하다. 선조들은 더 어려운 상황에서 산 소망을 품고, ‘아름답고 보람 있고 세상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방식으로’ 공동선을 추구하며 복음을 증거했다. 이 길은 오래된 길”이라고 했다.

이어 “기독교 예술의 공공성 논의는 공동선의 추구가 고함치는 것보다 ‘더 큰 목소리를’ 낸다는 사실 때문에 중요하다. 공동선 추구는 인류의 공통과제다. 근거는 창조의 원리”라며 “모든 인류는 한 창조주 아래 ‘공통의 과제를 함께 맡은 파트너로 창조’되었다. 풍성한 복을 주신 세상을 선하게 관리해 ‘모두의 행복을 촉진’함으로 하나님의 영광의 선포하는 과업이다. 그리스도인만의 일이 아니다. 이 사명은 타락 이후에도 철회되지 않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성경은 세상을 선하고 영원한 곳으로 그리고 있다. 창조 세계를 돌보고 가꾸며 새롭게 할 거룩한 책임을 저버리는 잘못으로 인해 교회의 영향력이 쇠퇴한다”며 “그리스도인들은 그들만의 하위문화에서 살고 있다. 영향력을 발휘하려는 경우도 세상에 대한 반대에 그친다. 불평은 엄청나게 하지만 촛불을 밝히지 않는다. 결국 흑암이 점점 더 깊어진다”고 했다.

또한 “삶의 모든 영역은 구속해야 할 대상이다. 지상명령인 전도는 새로운 창조 세계에 살라는 초대다. 기독교 신앙이 좋은 삶, 탁월한 예술을 낳는다면 사람들이 주목하고 매력을 느낄 것”이라며 “어떤 주제에 관한 탁월한 예술이 언제나 그리스도인들의 것이라면 사람들은 고민하게 된다. 현대인을 물질주의자로 만드는 것도 많은 책들에 있는 유물론적 전제들이다. 인간 삶의 주제들을 기독교적으로 다루는 토스토예프스키, 루이스, 톨킨이 사람들로 하여금 기독교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고 했다. 스크린이 설교하지 않는다고 할 수 없다. 영화, 드라마, 노래는 암시적으로 매혹시킨다. 복음적 삶이 지루할 이유는 없다”고 했다.

아울러 “공동체의 번영과 공공선에 기여하는 문화 돌봄이라는 일반 은혜의 빛 아래서 사는 것을 연습하고 원수를 사랑하기도 배워야 한다. 다양한 문화적 차이를 넘어서 사랑하는 공동체를 이루는 법을 배울수록 ‘우리는 하나님의 좋은 씨앗이 새로운 문화적 생명을 낳는 환경’이 확장된다”며 “특히 소외된 문화의 주변부로 나가야 한다. 문화 돌봄은 복음이 퍼져갈 길을 준비한다. 공동체를 살리고 공공선에 이바지하는 문화 돌봄의 비전과 실천이 한국 사회에도 절실하다”고 했다.

마을공동체 운동의 확산을 위해

두 번째로 발제한 정재영 교수는 “코로나 사태로 인해 한국교회는 매우 큰 어려움을 겪었다. 더 큰 문제는 이러한 고난의 끝이 어디를 향하는지 알 수 없다는 데 있다”며 “교회당을 떠난 사람들 가운데 일부는 여전히 교회에 돌아오지 않고 있으며 교회의 허리 역할을 해야 할 3040세대가 크게 흔들리고 있다”고 했다.

이어 “설령 회복이 된다고 해도 단시일 안에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에 한국 교회는 변화를 대비해야 한다. 그리고 코로나 사태로 인한 위기를 보다 적극적으로 변화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며 “여기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사회에 대한 공적인 책임이다. 이러한 점에서 최근 마을에 대한 교계의 관심이 많아진 것은 일면 환영할 일이다. 사회에서 공신력을 잃어버린 교회가 무엇보다도 자신이 속한 지역사회에서 참된 종교로서의 모습을 보임으로써 신뢰를 회복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나 “이에 대한 우려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특히 지역 활동가들은 마을에 대한 교회의 관심에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교회에게 마을은 그동안 전도의 대상으로 여겨져 왔고, 이러한 관점에서 마을은 교세를 확장하기 위한 대상 이상의 의미를 갖지 못하기 때문”이라며 “결국 마을에 대한 교회의 관심은 전도의 수단이자 방편이라고 여겨지는 것”이라고 했다.

정 교수는 “교회 역시 지역사회 구성원으로서의 교회가 지역을 공동체화 하기 위한 활동에 참여하는 방식으로 전환될 필요가 있다”며 “교회가 참여하는 다양한 마을공동체 운동은 그 자체로 의미를 갖고 그 활동을 통해 결실을 맺을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이어 “그러한 방법 중의 하나는 참여하는 교회가 개별 활동을 하기보다 가능한 대로 많은 교회가 협력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라며 “특정 교회가 지역 공동체 활동에 홀로 참여하기보다는 지역에서 이 일에 관심을 갖고 참여할만한 다른 교회를 물색하여 협력 사업을 벌이는 것이 보다 효과 있는 방법”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여기서 중요한 것은 진정성”이라며 “기독교인으로서 전도에 대한 열정을 가지고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나 주민들을 단순히 전도 대상으로만 여길 것이 아니라 사람 자체 관심을 가지고 지역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며 삶의 조건을 개선시키기 위한 노력을 함께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했다.

또 “다른 하나는 운동의 지속가능성”이라며 “진정성을 갖고 이러한 활동을 장기간 지속하게 될 때 결국 그 진심이 전달되고 교회에 대한 신뢰가 회복되면 자연스럽게 전도의 문도 열리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아울러 “한국교회는 지역에서부터 다시 출발해야 한다. 지역에 대한 관심을 갖고 지역에 대한 공적인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그것은 지역 주민들에게 호감을 사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하나님의 뜻을 실천하기 위함”이라며 “교회는 교회가 속한 지역에 복음을 선포하고 하나님의 정의에 어긋나는 이 땅의 질서를 바로잡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리고 고통에 처한 이웃들에게 선한 사마리아 사람의 마음으로 다가가서 그들을 도와야 한다. 그렇게 하여 좁은 교회의 울타리를 넘어 더 넓은 공동체를 이루어야 한다. 그것이 이 땅에 교회가 존재하는 이유”라고 했다.

공동선에 대해

마지막 세 번째로 발제한 서성록 교수는 “교회와 사회는 불가분의 관계로 우리나라에 기독교가 들어온 이후부터 줄곧 기독교는 사회를 섬기고 선도하는 역할을 해왔다”며 “한국 사회는 그런 기독교에 대해 아낌없이 지지와 축하를 보내주었다. 그것은 우리 사회의 공동선을 추구하는 데에 기독교가 솔선수범했다는 표시이기도 했다”고 했다.

그러나 “기독교가 성장 논리와 이기주의에 한눈을 파는 사이에 그간 사회에서 맡아온 본연의 역할, 특히 지역사회에 기여하며 봉사하는 부분에 소홀하였다”며 “더욱이 코로나 위기를 겪으면서 교회는 사회로부터 쓴소리를 들어야 했다”고 했다.

서 박사는 “어떤 면에서는 ‘마을 만들기’만큼 기독교적 정신을 구체적으로 반영한 예도 없을 것”이라며 “창세기에서 아담을 통하여 에덴동산을 ‘경작하며 지키도록’(창 2:15) 하신 것은 인간이 섬김을 받는 존재가 아니라 섬기도록 창조되었음을 암시한다. 공동체를 회복하는 것은 우리가 외롭고 소외된 개인으로 존재하지 않고 강과 동물과 산과 바다를 창조한 똑같은 창조주가 우리를 창조하셨다는 생각을 회복하게 만든다”고 했다.

이어 “내가 속한 공동체를 돌보지 않는 것은 창조 질서에도 어긋난다. ‘경작하고 지키는 것’은 주로 문화영역을 말할 때 사용하지만 물리적 공간을 말할 때도 해당하는 말”이라며 “이 언급은 마을과 구성원이 무슨 상관이 있는지, 왜 지역에서 우리가 창조성을 발휘해야 하는지, 주민들의 필요와 소통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하는지 설명해 준다”고 했다.

그는 “우리는 마을을 화목한, 창의적 공간으로 전환할 수 있다는 비전을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며 “‘마을 만들기’를 단순히 ‘환경개선’으로 보는 시각도 있지만 보다 근원적으로 그것은 현대인이 놓친 가치와도 연관되어 있다. 인간의 결속과 사회적 교류가 그것인데, 이 두 요소는 우리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고 했다.

이어 “사전적으로 ‘공동선’을 공동의 이익을 위해 봉사하는 것으로 정의한다. 이 정의는 기독교의 역사에서 부동의 상수(常數)로 자리 잡아 왔다”며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그들이 위치하고 있는 문화속으로 들어가라고 하셨다. 그들을 하나의 공동체로서 받아들이시지만, ‘공공선’에 기여하는 방식으로 자신의 독특함을 유지하라고 명하신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거룩한 도성을 소망한다면 우리가 사는 마을을 하나님의 구속적 목적들이 실현되는 장소로 변혁해 가는 일부터 시작해야 하지 않겠는가”라며 “하나님의 사랑은 깨어진 그릇인 우리를 택하셔서 예수님을 통해 새 창조로 함께 창조하도록 초대하신다”고 했다.

서 박사는 “역설적으로 세상의 선을 자라나게 하는 일은 어느 정도 역사에 남지 않는 보편적 행위들에 달려 있다”며 “우리가 이만큼 살아갈 수 있는 이유의 절반은 드러나지 않는 삶을 충실하게 살아낸 사람의 덕분인지 모른다”고 했다.

이어 “사회 속에 선이 자라나고 아름다움이 자라게 하는 것은 관계성에 대한 의식에서 싹튼다”며 “공동체 속에서 모자이크처럼 서로 다른 반짝이는 부분들이 모여 퍼즐을 맞추어가고 이웃을 향해 신실함을 가질 때 우리는 소속감을 느낄 뿐 아니라 보다 우호적인 단계로 나가게 된다. 그런 기대는 언제나 사람들을 기대에 차게 만들고 삶의 활력을 북돋아 준다”고 했다.

아울러 “우리 속에 잠재된 갈망을 확인하고 그 갈망이 우리 심연 깊은 곳을 휘젓게 하는 것, 위대한 선의 일부에 참여하고 싶은 욕망, 공동선이라는 미답의 자원을 활성화시키는 행동은 우리 사회를 한 차원 높이 올려놓을 것”이라며 “미래는 선하고 아름다운 행위를 만들어내는 선하고 아름다운 사고에 달려 있다”고 했다.

2024 제22회 크리스천 아트포럼 진행 사진. ©아트미션 제공

포럼은 이후 광고, 종합토론, 폐회 순서로 모든 일정이 마무리됐다.

한편, 아트미션은 크리스천 아티스트로서 세상이라는 거친 환경 안에서 사랑의 씨앗이 온전히 싹 틔우기까지 서로를 섬기고 돌보는 아름다움의 실천을 함께 고민해 보고자 정기모임을 통해 ‘공동선’을 주제로 담론의 장을 마련했고, 이를 키워드로 ‘그 땅에 싹을 틔울 때까지’(2024.7.17.~22, 갤러리 인사1010)라는 제목으로 전시회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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