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하나님께서 계속 변덕스러우시다면, 계속 이랬다저랬다 하신다면, 우리는 하나님을 믿을 수 있을까요? 결코 그럴 수 없습니다. 그가 변하신다면, 신실하지 못하고 신뢰할 수 없이 불안하다면 믿음의 모든 근거는 와해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로 했다가 안 하시기로 했다가 하신다면, 우리는 어떻게 믿음과 구원에 확신을 논할 수 있을까요? 하나님께서 변함없이 신실하시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믿고 의지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모든 믿음과 소망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불변성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께서는 동일한 본질을 소유하시되, 구별되는 세 위격으로 존재하십니다. 이 모든 게 완전히 이해가 될까요? 수학적 개념이 이성적이고 합리적이라 생각 하는 우리로서는 무한하신 하나님의 신비로운 존재 방식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습니다. 유한은 무한을 다 포용할 수 없듯이, 우리의 제한된 이성으로는 삼위 하나님에 대해 온전히 이해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이를 겸손히 인정해야 합니다.
정찬도 – 다음세대를 위한 교리특강
목회자는 우리 예수님처럼 관계에 능한 자가 되어야 한다. 남녀노소 빈부귀천을 막론하고 모두가 좋아하고 따르는 사람, 누구나 다 관계하기에 편한 사람이 되도록 우리 자신을 잘 다듬어가야 하겠다. AI가 세상을 지배하며 인간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는 것 같지만 관계는 증대시켜주지 못한다. 이런 저런 이유로 나와 관계가 끊어진 사람이 있는가? 더 이상 관계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 있는가? 은혜를 배반하고 나를 떠나 버린 사람이 있는가? 자존심 다 버리고 먼저 찾아가라, 만나라, 필요한 것을 채워주라. 주님께서 우리를 대하신 것처럼 행하라. 그리할 때 천하보다 귀한 한 사람 그를 얻게 될 것이다.
최상태 – 흩어지는 목회
크리스천들은 하나님이 죄인들을 포기하지 않으신다는 메시지를 전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 파수꾼의 임무를 다하고 있습니까? “만약 우리가 회개의 문을 닫는다면, 사람들에게 회개를 하라고 촉구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그 사람들로 하여금 죄 용서를 받을 수 있는 딱 한 개뿐인 그 은혜의 문을 닫는 것이 된다”(참고. 사도행전 20:26-27).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 책임을 물으실 것입니다. 사역자와 크리스천은 사람들에게 인정받으려 하기보다는, 예레미야와 같이 먼저 하나님께 순종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자기 자신을 볼 때, 다른 사역자나 크리스천을 볼 때, 하나님의 안경으로 보고, 세상 안경으로는 보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어떤 사람을 인정하고, 기뻐하셨습니까? 예레미야처럼, 바울처럼, 하나님께 순종하는 자였습니다. 사역자 또는 크리스천이 세상적으로는 그 성과가 F학점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온전히 순종했다면, 하나님의 평가는 분명히 A학점일 것입니다. 하나님은 성과보다 순종을 더 중요하게 여기십니다.
한용현 – 예레미야·에스겔·다니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