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민족이 일제강점기에서 해방된 날인 광복절 79주년을 맞아 교계가 각종 행사로 그 뜻을 기리고 있다. 연합기관들도 8.15를 전후해 각기 기념예배를 드리고 침체 일로에 있는 한국교회의 회복과 교회에 부과된 사회적 책임을 감당하기 위해 온 힘을 기울이는 모습이다.
79년 전 광복절이 오늘 한국교회에 주는 특별한 의미가 있다. 우선 영적 암흑과 공허 속에 방황하던 우리 민족에게 하나님의 구원역사를 보여준 날이란 점이다.
시간을 되돌려 봐도 8.15 광복은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라는 말밖에는 달리 표현할 길이 없다. 오직 하나님이 아무 대가 없이 우리 민족을 일제의 무단통치에서 벗어나게 하셨으며, 내 힘과 노력, 의지와 상관없는 하나님의 전적인 은총의 결과인 것이다.
일제강점기에 누군가는 독립운동에 투신해 일제와 맞서고 또 누군가는 하나님이 구원하실 것을 믿고 간절히 기도했을 것이다. 그렇다고 8.15 광복이 한국교회가 애쓰고 노력해서 얻은 결과라고 말할 수 있을까. 한국교회 지도자들이 끝까지 일제의 우상숭배 강요에 저항하며 복음의 정도를 걸어 얻은 공로는 더더욱 아닐 것이다.
일제강점기에 한국교회 지도자들 가운데는 주기철 목사처럼 우상숭배 강요를 거부하고 순교한 사람도 있었지만, 그보다 많은 이들이 일제에 엎드려 부역하며 배교했다. 유일신 하나님 신앙을 버리고 목숨을 부지한 이들은 8.15해방 후에도 자신의 죄과를 숨기고 한국교회 안에서 지도자 행세를 했다.
갑자기 찾아온 8.15 광복에 이들은 자신이 일제강점기에 저지른 추악한 죄과를 철저히 회개하지도, 뉘우치지도 않은 채 한국 교계를 활보했다. 만약 당시 교회 지도자들이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 숭배한 죄를 낱낱이 공개적으로 회개하고 새로 출발했더라면 대한예수교장로회가 고신, 기장, 합동, 통합 등으로 분열하는 일도, 6.25와 같은 동족상잔의 전쟁도 일어나지 않았을지 모른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한국교회를 사랑하시고 넘치게 축복하셨다. 8.15해방과 6.25 전란을 거치면서 70년대에 불어온 부흥기의 바람이 분열의 상처마저 아물게 했다. 그 정점은 아무래도 1974년 서울 여의도광장에서 있었던 빌리그래함 목사의 전도집회였을 것이다.
한국교회는 그동안 교회 성장에 모든 걸 걸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정도다. 온 국민이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직업의 귀천 없이 밤낮없이 일했던 것과 너무나 흡사하게 목회자와 성도들이 ‘성장’이라는 목표를 향해 줄달음쳐왔다. 그 결과 웅장한 예배당이 곳곳에 세워지고 주일마다 몰려드는 승용차로 교회 주변에 주차 전쟁이 벌어지는 기현상이 나타났다.
문제는 한국교회의 양적 성장이 한국경제의 고도 성장기와 정확히 반비례하는 흐름이었다는 점이다. 제3공화국의 ‘경제개발 5개년 계획’ 때까지만 해도 가난과 싸우며 열심히 교회에 나와 기도하며 가득 찼던 예배당이 국민소득 1만 불을 돌파하면서 차츰 빈자리가 보이기 시작했다. 60~70년대엔 더운 여름에 선풍기 한 대도 없이 맨바닥에 무릎 꿇고 몇 시간씩 예배드려도 은혜와 감사가 넘쳤지만, 지금은 냉난방시스템에 엘리베이터, 넓은 주차시설을 갖춘 화려한 교회가 아닌 작고 볼품없는 교회는 아예 외면하는 현실이 되고 말았다.
오늘 한국교회는 성장 지상주의가 남긴 어두운 그림자에 덮여있다. 부유한 사람은 더 부유해지고 가난한 사람은 더욱 가난해지는 ‘부익부 빈익빈’(富益富貧益貧) 현상이 한국교회를 영적 혼동 상태로 몰아가는 것이다.
한국교회가 침체기를 넘어 본격적인 하락기에 접어든 원인 중에 코로나19 팬데믹이 중요한 변수로 작용했음을 부인할 수는 없다. 하지만 청년이 교회를 등지고 교회학교가 문을 닫는 현상의 모든 책임을 팬데믹에 떠넘길 순 없을 것이다.
초대 한국교회에 임한 성령의 역사를 거론할 때 1907년 평양대부흥운동이 첫손가락에 꼽히는 데 이견이 없다. 하지만 대부흥운동이 일어난 지 불과 3년 만에 한·일 강제병합으로 나라를 일제에 빼앗기는 비운을 맞은 사실은 잊고 있다. 지금 한국교회에 ‘어게인 1974’를 외치며 그때 그 시절로 되돌아가기를 소망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하지만 영적 부흥 뒤에 고난이 예비되 있다는 사실은 모르는 것 같다.
8.15 광복은 단순히 잃었던 나라를 되찾았다는 역사적 사실에 그치지 않는다. 어떤 의미에선 그 날을 기점으로 이 땅에서 전제주의가 끝나고 자유민주주의의 옷을 갈아입은 게 더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고 할 수 있다.
일제강점기가 자유와 인권, 국권이 박탈된 정치 외교적 암흑기였다면 지금 한국교회는 동성애와 젠더, 낙태로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조롱하는 세상과 싸우고 있다. 이런 때에 물질이 가져다준 풍요로 인해 깊이 잠들었던 영적 나태에서 깨어나지 않으면 한국교회는 영적 암흑기에서 살아남을 수 없게 될 것이다. 이것이 8.15 광복, 빛을 회복하신 하나님이 한국교회에 주시는 미션(Mission)임을 깨닫는 8.15 광복절이 되기를 바란다.